자, 떠나기 전에 여행 고수들 얘기 들어볼까

세계 곳곳을 누빈 여행기 5

▲ 1914년 남극대륙 탐험 길에 올랐다가 얼어붙은 바다에 갇힌‘인듀어런스’호 선원들이 온몸으로 배를 끌고 있다. /뜨인돌 제공
여행 계획을 짜느라 달뜬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여름이다. 하지만 여행만큼 여행에 대한 기대감도 우리를 달뜨게 할 수 있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도 그러지 않았던가.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 비행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을 자극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불문학자 김화영은 열광하는 대상의 흔적을 찾고자 ‘알제리 기행’(마음산책)을 떠났다. 김화영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30여년 동안 카뮈 전문가로 살았다. 카뮈가 일생을 관통하는 감성과 사유의 풍경이 되었지만 그의 고향인 알제리로 가는데 반세기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노학자가 되어 알제리에 도착한 그는 가난한 동네 밸쿠르로에서 카뮈의 모습을 찾는다. 하지만 세월은 부질없어 알제리는 독립 후 식민지 시절의 지명을 모두 아랍식 명칭으로 바꿔버렸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을 정작 알제리에서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카뮈가 “봄이면 신들이 내려와 산다”고 했던 티파시에 드디어 섰다. 보지 않고는 안다고 말할 수 없었던 티파시 풍경은 노교수를 한참이나 붙들었다.

불문학자에게 알제리가 그렇듯, 영화 키드에게 뉴욕은 당위다. ‘안녕 뉴욕’(백은하 지음, 씨네21)은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던 저자가 그저 영화가 좋아 뉴욕으로 떠난 영화여행의 산물이다. 간혹 사람들이 영화 키드에게 왜 뉴욕에 왔냐고 묻는다. 언제라도 좋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에단 호크를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라고 대답하는 영화 키드에게 뉴욕은 매일 매일이 여행이다.





나이는 서른 다섯, 성격으로 말하자면 소심하고 겁이 많다.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2’(김남희 지음, 미래M&B)는 저자가 스페인의 ‘카미노데 산티아고’, 즉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던 길을 따라 걷는 순례여행의 기록이다.

1000년 넘게 사람들은 조개껍질을 배낭에 달고, 야곱이 그랬듯 이 길 위에 섰다. 쉬지 않고 하루에 30㎞씩 걸어도 한 달이 걸리는 길이다. 30대 중반의 여자가 벼르고 별러 나섰건만 떠나자마자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

하지만 산티아고로 길을 떠나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베푸는 은혜가 여자에게 이어진다. 기적처럼 지팡이가 생기고, 포도주와 친구도 나타난다. 까탈스런 여자는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연다. 길에서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치유의 힘을 갖는다.


비록 몸은 게을러졌어도 얼마든지 장딴지가 저릿한 여행을 기대할 수 있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홍은택 지음, 한겨레출판)을 읽으면 그렇게 된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생의 후반전을 앞두고 “앞으로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오로지 여행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바쳐” 다녀온 여행을 기록했다.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돌아가는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좀더 생생하게 표현하자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두 번을 왕복해야 하는 거리를 횡단했다. 차 안에서 보는 네모난 세상이 아니라 페달을 돌려 세상을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다.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보고 싶은 것은 미국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에밀 루더, 얀 치홀트 같은 타이포그라피 디자이너의 이름과 스위스 스타일이라는 타이로그래픽 양식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미대 학생이 있었다. 졸업 후에는 ‘시월애’ ‘파이란’ ‘생활의 발견’ ‘오아시스’ ‘나쁜 남자’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등의 영화에서 감각적인 로고타입을 디자인한 박우혁이다. 촉망받는 디자이너는 스위스 스타일에 대한 환상이 자기최면으로 이어지자 스위스 바젤로 떠난다. ‘스위스 디자인 여행’(안그라픽스)은 그가 바젤 대학에서 2년간 공부하며 보고 느낀 바를 담은 비주얼한 여행기다. 하지만 이 책은 젊은 날을 사로잡은 동경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결국 떠남에 대한 동경은 여행을 부르고, 여행에 대한 기대로 여행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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