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케이트 블란쳇 외 출연 / 기타 제작사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영화의 미덕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음악에 있지 않나 싶다.

두 여자의 심리를 포착하듯 카메라는 그리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없고 내내 불안하고 우울하다. 그것을 받혀주기라도 하듯 음악 역시 그것을 동시에 표현해 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1950년대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이다. 그런 시대에 자유로운 동성애가 가당키나 했겠는가? 그러니 이 두 레즈비언의 불안하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이 언젠가 터져 나올 욕망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틸다 스윈튼과 헷갈리고,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에 나왔던) 캐롤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가히 우아하며, 압도적이다. 비록 사회에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당당하다. 물론 나중에 이것이 그녀의 발목을 잡혀 사랑하는 딸을 이혼한 남편에게 빼앗기는 불운을 겪기도 하지만 사랑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런데 영화 진행이 노련하긴 한데 마지막 엔딩이 왠지 석연치가 않다. 그렇게 끝나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자기 집에 파티가 있으니 오라고 해 놓고 정작 레스토랑에서 남자들 속에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앉아 있으니 말이다. 마치 자신의 애인인 테레즈가 와서 볼 거란 걸 계산에 넣은 듯한 그 표정. 그랬을 때 테레즈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해 주길 바랐던 걸까?

 

이 영화 미덕이 하나가 더 있다. 전자의 미덕은 영화 기술에 관한 거라면 이번엔 인물에 관한 미덕이다. 바로 캐롤!

 

캐롤의 테레즈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통 나 아이를 빼앗기게 될 처지에 놓여는데 법정에서도 당당했다. 남편과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 딸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할 것과 이 때문에 아이를 만날 권한이 박탈이 되어도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와 만날 거라며, 자신의 동성애와 어머니로서의 권한은 별개임을 선포한다. 당당함으로 똘똘뭉쳤다. 선택은 어떤 비난을 무릎쓰고라도 당당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자기 선언 역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우선순위가 결정되고 그것에 따라 운명은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보수적인 사회에서 보잘 것 없는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캐롤이 여느 여성에 비해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위 있는 집 귀부인이라는 정도지 사회나 법을 좌지우지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선택했다. 자신의 아이를. 그것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는 취사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최선으로 하고 그 다음 무엇을 차선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다. 엄마가 된 이상 자신의 불행과 부조리함을 딸에게 짐 지우지 않겠다는 그 선택. 그러므로 그녀가 테레즈를 사랑한 것은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인 것 보다 앞서지 않는다. 물론 테레즈의 입장에선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부적절할지라도)사랑이 전부일 것 같고 그래서 용기를 낼 것 같은데 알고 봤더니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것은 사랑을 운명이나 전부로 보지 말고, 우선으로 놓고 보라는 것이다. 내가 여자에 대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여자는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이다. 자식도 가정도 다 버리고 사랑을 쫓아간 단다. 멋있는얼핏 들으면 멋있는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인생 어느 한 때 있을 수 있는 모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철없을 때나 여자가 힘을 갖지 못했을 때 도피 행각으로 있을 수 있는 행동일 뿐이다. 또한 그것은 여자는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을 반증하려고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보수적이라는 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생각이나 선택을 못하도록 차단한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를 더 옭아매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폭력에 노출된 여자가 계속 그렇게 당하기만 하면 내가 맞을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맞는다고 하지 않는가. 빠져나올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여자는 어떤 시대 어떤 불행과 위기에 처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테레즈는 나이도 어리고 아직 사회경험이 많지 않다. 그런데 비해 캐롤은 나이도 많고, 결혼과 이혼을 통해 좀 더 현실적이 됐다. 캐롤도 한때는 사랑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반대로 정략에 의한 결혼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테레즈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영화라면  말 그대로 진부한 동성애 영화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혼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딸과의 면접교섭권도 확보 됐으며, 그 아이는 또 자라 엄마를 이해해 줄 날이 있을 것이다. 캐롤은 당시엔 딸 때문에 테레즈를 버린 것 같았으나, 이혼하고 넓은 집이 생겼는데 같이 들어와 살지 않겠냐고 권함으로 그녀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앞서 얘기했던 마지막 엔딩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레스토랑에서 고고하게 테레즈를 기다렸던 건 캐롤의 오만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보다는 그 레스토랑 문을 함께 나서기 위한 수순 아니었을까? (열린 결말은 뭔가를 유추해야 해서 피곤하긴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우선 순위를 정할 줄 아는 여자쯤으로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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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10-17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당함. 제가 갖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이것 하나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때가 있어요.
왠지 위축될 때가 있거든요.
어쩌면 주부들이 불륜을 저지르지 않고 살려는 게 그 당당함 때문인지 몰라요.
불륜을 저지르며 살면 당당함을 잃고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야 하거든요.
그런 걸 치르기 싫은 거죠. 도덕적인 이유 때문 다음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은 이유도 바르게 사는 데 한몫을 할 거라고 봅니다.

stella.K 2016-10-17 14: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영화 동성애란 편견만 빼면 꽤 괜찮게 잘 만든 영화예요.
솔직히 그 상황이면 자신이 약점 잡혀서 설설기고
어떻게 할지 몰라했을 텐데 주인공이 아주 대차서 마음에 들더군요.
도덕의 정의 보다 사랑의 정의가 더 앞서고 있구나 싶구요.

근데 이 페이퍼가 무플인 걸 아시고...
고맙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