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펜으로 공찬다” 詩도 소설도 월드컵 바람났

“축구공은 사내들을 위한 관능적인 암컷”
월드컵 출전국 시인들, 국내에 작품실어
축구팬과 결혼 소재 소설 베스트셀러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바람이 문단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 국가의 시인들이 국내 문예지에 월드컵 축시를 발표하고, 문예지에는 월드컵 특집이 실렸다. 축구팬이란 이유로 사랑에 빠진 남녀의 이야기를 쓴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축구를 다룬 시집이 문학상을 받았다.

스페인 명문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의 열렬 여성 팬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어이없는 결혼 생활을 그린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번 주 들어 교보문고 소설 부문 종합 7위에서 3위로 판매순위를 끌어 올리며 월드컵 특수를 즐기고 있다.

특히 주인공 남녀간 사랑의 매개로, 소설 전반부에 비중 있게 소개되는 축구팀 FC 바르셀로나가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영국의 아스날을 꺾고 우승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아내가…’를 낸 문이당출판사의 임성규 사장은 “소설에 등장하는 FC 바르셀로나의 호나우디뉴와 아스날의 앙리가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격돌해 반가웠다”는 말로 월드컵 바람이 소설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또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 본선에 진출한 6개국 시인들이 한국의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여름호의 특집인 ‘시의 문법, 축구의 문법’에 월드컵을 주제로 한 시와 에세이를 실어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 시인들을 비롯, 아르헨티나·일본·멕시코·독일·프랑스의 시인들이 무릎을 치게 하는 시와 에세이를 보내왔다. G조에서 한국과 16강 진출을 다투는 프랑스의 시인 카티 라팽은 축구공을 ‘야성적인 사내들을 위한 관능적인 암컷’에 비유했고, 강력한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에서 시를 보내온 월터 사이베드라는 “프리킥의 벽을 쌓아보지 않았다면 우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라며 삶의 여러 국면을 문학의 녹색 그라운드에 펼쳤다. 개최국 독일의 시인 라인하르트 움바하는 ‘거부하는 사람들’이란 시에서 백 패스가 자살골로 연결되는 불운의 순간을, “긴 패스-아아, 실은 패스도 아닙니다! / 될 대로 되라 하고 무작정 해버린 백 패스”라는 재치 있는 시행(詩行)에 담았다. 이 특집의 총론을 쓴 장석주 시인은 “축구는 신을 잃어버린 20세기 인류가 창안해낸 새로운 형식의 종교”라고 갈파했다.

▲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축구를 다룬 문학작품과 계간지들. 왼쪽부터 계간문예지‘대산문화’, 박현욱 장편소설‘아내가 결혼했다’,‘ 시인세계’여름호, 최영미 시집‘돼지들에게’.
한편 문예계간지인 ‘대산문화’는 일찌감치 지난 봄 호에 ‘문인들의 축구와 나’라는 월드컵 특집을 싣기도 했다. 5년째 동네 조기축구 회원으로 뛰고 있는 문학평론가 서영채 한신대 교수(문예창작과)는 ‘조기축구와 나’라는 글에서 “야, 골대 뒤로 빼”라는 회원들의 무례한(?) 반말에도 화를 내지 않는 이유를, ‘어떤 사념도 끼어들지 않은 순수한 몸의 움직임에 몰입하는’ 매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축구전쟁’이란 소설을 쓴 소설가 김별아씨는 ‘축구처럼 살고 싶다’라는 글에서 “공은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우리의 덧없는 생도 그러하고, 나는 여전히 간절하게 축구처럼 살고 싶다”며 축구를 찬양했다. 소설가 이기호씨는 마감에 쫓기는 소설가의 글쓰기를 인저리 타임에 쫓기는 축구선수들의 심리와 비교하는 코믹한 글을 실었다.

축구 마니아로 잘 알려진 시인 최영미씨의 시집으로 올해 이수문학상을 수상한 ‘돼지들에게’에도 ‘축구시’들이 등장한다. 이수문학상 시 부문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정치와 세태, 인생을 풍자하면서 축구처럼 다양한 소재를 동원하는 재치로 다채로움을 선사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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