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궁중 무희의 사랑… 두 소설가 맞붙다

신경숙·김탁환씨, 동일인물 소재로 집필
신씨, 本紙에 ‘푸른눈물’로 연재 영화사 “3년전 영화 계약 맺어”
“작년부터 집필 중이었다 현재 원고지 1500장 써놔”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신경숙씨의 소설 ‘푸른 눈물’이 문단은 물론 문화계 전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왕실의 실존 인물인 궁중 무희 리진(李眞)과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여인의 삶 속에서 벌어진 봉건과 근대의 갈등을 비극적으로 그릴 소설이다.

“신경숙씨와는 3년 전에 이미 영화 계약을 맺었습니다. 내년 초부터 제작에 들어갈 예정으로 프랑스 영화사와도 협의 중입니다.”

한국영화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차승재 싸이더스 FNH 대표는 21일 ‘푸른 눈물’의 영화화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 “원래는 올해 8월 신경숙씨가 단행본을 내면 곧바로 제작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차 대표는 “다른 영화사가 비슷한 소재를 영화로 만든다고 들었다. 원래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을 알면서 뒤를 따른 것이다. 현재로서는 별도로 협의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신경숙씨
공연계도 벌써부터 이 작품을 ‘찜’하고 있다. 정재왈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푸른 눈물’의 소재가 마음에 든다”며 “뮤지컬이 될지 연극이 될지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공연물로 만들어 빠르면 내년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차 대표와 정 이사장에 앞서 이 작품이 막 연재되기 시작한 지난 18일 LJ필름(대표 이승재)측은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와 사랑에 빠져 프랑스로 건너갔다 한국에 돌아와 비운의 삶을 마감한 무희 리심(李心)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고 연합뉴스에 보도됐다. ‘불멸의 이순신’을 쓴 작가 김탁환씨가 계간 ‘세계의문학’에 2회 연재한 후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소설을 영화로 옮긴다는 것. 김씨는 “영화사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손을 잡고 지난해부터 집필에 들어가 현재 200자 원고지 1500장 분량을 써놓았다”고 말했다.

동일 인물이지만 이름이 ‘리진’과 ‘리심’으로 달리 나타나는 것은, 제2대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이폴리트 프랑뎅이 자신의 책 ‘앙 코레’(‘조선에서’·1905년 파리에서 발행)에 ‘Li Tsin’이라고 썼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어에 능통했던 프랑뎅의 표기법을 중국식으로 읽으면 ‘리심’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프랑뎅의 원문을 번역해 ‘프랑스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태학사·2002)을 낸 김성언 교수(동아대)는 ‘이진’이라고 옮겼다.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똑같은 소재를 놓고 서로 달리 쓰는 작가의 소설이 나란히 발표되면서 각각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초유의 문화적 사건이 터진 셈이다. 신경숙씨는 “파리에 간 조선 궁중 무희에 대한 기록의 번역문을 접한 것은 3년 전 문학동네 출판사를 통해서였다”고 밝혔다. “그 번역문에는 ‘이진’이란 이름이었지만, 내 가슴 속에 ‘리진’이란 이름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화 계약금도 받았다. 그 동안 3차례 프랑스에 가서 현지 취재를 했고, 당초 올해 8월 단행본으로 곧장 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 김탁환씨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는 “원래는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출간할 예정이었다”며 “곧 프랑스에 가서 3군데 출판사와 접촉한 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에서 낼 것”이라고 밝혔다.

김탁환씨는 “신경숙씨의 연재가 시작됐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황했지만, 영화사·출판사 등과 상의한 끝에 우리가 뒤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면 곤란하다는 영화사 의견을 받아들여 써놓은 소설을 발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두 작가가 똑같은 인물을 다루는 것이 재미있지 않으냐”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조선의 궁중 무희 이야기는 근년 들어 처음 알려진 것이 아니다. 이진명 프랑스 리옹3대 교수가 그 이야기를 79년 재불 한인 잡지에 발표했고, MBC는 지난 81년 창사특집극 ‘이심의 편력기’(신봉승 극본, 표재순 정문수 연출)를 방영한 적이 있다. 문단과 영화·공연계를 비롯한 우리 문화계는 한동안 ‘리진’붐에 휩싸일 것 같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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