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누가 이 영화 재미가 너무 없어서 끝까지 보기가 어려운 영화라고 했던 것 같다. 난 귀가 얇은 편이라 그런가 보다고 오랫동안 볼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요즘 영화를 본다면 주로 오래된 영화를 선택해 보는 편인데, 아마 내가 이럴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도 여전히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영화나 무턱대고 보는 것은 아닌지라 재미없으면 보다가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이 영화 딱히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트렸을까? 아무래도 영화는 보는 사람의 취향이라 그 말을 다 믿을 건 못 되는 것 같다. 

 

언뜻 제목만 들으면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고전 SF물쯤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뭐 피비 캐이츠나 소피 마르소가 한창 청춘물에 나왔을 때, 이 영화도 같이 나왔던 것 같다. 단지 그 운명이 달랐을 뿐이다. 그런 청춘스타들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이 영화가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됐을까? 그도 그럴 것이, 감독 에릭 로메르는 프랑소와 튀르포, 쟝 루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쟝 리베트 등 프랑스 신세대 영화 작가들의 등용문이 된 영화 전문지 '까이에 뒤 시네마'가 배출한 감독이라고 한다. 문제는 감독이 기존의 인기 배우를 쓰지 않고 무명 배우를 썼다는 것. 뭐 그게 프랑스에선 문제가 안 됐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가 이 영화를 당시에 수입했을 거라곤 보지 않는다. 참고로 이 영화는 1990년작이다.

 

그렇다면 주인공 역을 맡은 마리 리비에르는 출연 당시 영화 경력이 거의 없거나 짧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연 당해 우울에 빠진 연기를 곧잘 한다. 지나치게 우울해 하는 것을 제외하면 여자의 애정관이 난 마음에 든다.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스웨덴 여자가 그렇지 않던가? 그냥 자기 속을 감추고 남자와 가볍게 만난다고. 거진 대부분의 남녀들이 그랬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에서 모티프를 얻어 실연 당한 이들에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위로하는 영화로도 느껴진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의 눈엔 녹색광선이 보이지만 가볍게 연애를 하는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반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일몰 때 같이 있었던 남자는 주인공이 이제까지 봐왔던 남자들 중 가장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연애 경험이 전무했고. 또 그때 하필 운좋게도 지는 해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웬만해서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던 녹색광선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일몰 광경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감격에 겨워 울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작위적이긴 하지만 20세기 말이었기 때문에 아직 먹어주는 영화 방식이었을 거라는 것. 마치 아마추어가 이태리 바느질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에피소드를 만들어 갔을 영화 같다. 독특한 건 실연딩한 후에  쓰는 여자의 일기 같기도 하다. 날짜와 요일이 자막으로 뜬다. 이렇게 열심히 만든 영화를 뭐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특별한 영화적인 뭔가가 없음에도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은 높은 편이다. 

 

조금 의외였던 건, 패션의 나라라면서 등장인물들이 입고나온 옷들은 수수하다. 물론 뭐 그렇게 패션에 신경 쓸 영화는 아니었던 듯 싶긴한데, 남자들이 입고 나온 옷들은 좀 우스울 정도였다. 그 시절 우리나라 디스코 청바지가 유행했던 것을 생각나게 만든다.  

 

나는 봤던 영화도 다시 보자는 쪽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훗날 다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한 번 보는 것으로 족할 듯.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6-10-02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90년작이라면 오래된 영화네요.

˝이를테면 이 영화는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에서 모티프를 얻어 실연 당한 이들에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위로하는 영화로도 느껴진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의 눈엔 녹색광선이 보이지만 가볍게 연애를 하는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반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 스텔라 님의 멋진 글로 뽑습니다. ㅋ


stella.K 2016-10-02 14:08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역시 언니는 저의 마음의 심층을 아시는군요!^^

근데 영화 보는 것도 일인가 봐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보면 자꾸 보다 깜빡깜빡 졸아요.
이래서 안 보게되는 영화가 있더라구요.
이 영화는 운이 좋았죠. 그래도 제가 끝까지 봐줬으니...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10-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녹색광선 좋죠 ? 저도 이 영화 좋게 보았습니다.

stella.K 2016-10-03 18:00   좋아요 0 | URL
글치 않아도 곰발님은 보셨을까 궁금했는데 보셨군요.
전 재미없다고 해서 겁먹었는데 생각 보다 괜찮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