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날>은 17세기 마녀사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글쎄.. 영화의
구성상 전반부는 마녀사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하나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노르웨이 한 마을에서 벌어진 한 초로의 여인을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재판에 가담한 엄격한 목사 압살론. 그에겐 젊은 후처
안느가 있다. 이들 부부는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학교를 다니는 아들 마틴이 잠시 집을 다니러 와서는 안느와 사랑에
빠진다. 안느는 마틴을 사랑하면 할수록 남편 압살론이 죽기를 바란다.
그런데 앞서 마녀 재판에서 그렇게도 살기를 바랐던 초로의 여인이 죽으면서 그에 대해
저주를 쏟아 부어서일까? 또는 애정 없는 아내의 독한 말 때문일까 압살론은 아는 사람의 임종 예배를 다녀 온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갑자기 죽고
만다. 한편 손자와 새 며느리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알게된 압살론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새 며느리를 마녀로 몰아 재판에 넘기려 한다.
이 구도를 보면서 감독은 누구를 위한 마녀재판이냐고 묻는 것도 같다. 얼핏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집안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제나 그렇듯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이 영화를 낮게
보는 것이고, 마녀사냥을 통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희생 되었는가를 돌아보게 만들고, 종교의 허울로 압살론이나 그의 두 여인이 보여준 사랑과
동정없음. 사랑은 없고 권력만 있는 종교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영화는 잘 보여준다. 더구나 영화는 누가 마녀인가를 더불어 묻고
있기도 하다. 그건 역시 관객의 몫이다. 전편 <오데트>는 따뜻한
인간애를 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다소 무거우면서 묵시적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잔 다르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한 둘이 아닌가 보다. 내가
처음으로 본 영화는 뤽 베송이 연출한 것을 오래 전 보았고, 얼마 전엔
잉그리트 버그만이 언제 이런 영화에도 나왔나 호기심에 보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는 잔 다르크의 일대기를 다뤘다면, 이 영화는 잔 다르크의 재판
과정에 온전히 포커스를 맞춘다. 더구나 영화는 무성 영화고, 대사는 그다지
많지 않으면서 음악으로 채운 당시로선 꽤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잔 다르크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재판 내용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으니 생략하고, 뭐
그런 독설과 허위로 가득찬 재판에서 신앙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죽어간 어찌보면 순교자 잔 다르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점은
달리해 보면, 그녀는 남자들에 의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골출신의 조그만 소녀가 신앙 하나로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 사실 자체가 남자들로선 꽤나 굴욕적이었을 것이다. 재판 역시 남자로만 이루어져있고 온갖 중상모략이 난립한다. 그중 잔
다르크에게 동정을 보내는 이성적인 남자도 없지는 않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를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연민이 그
나머지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또 뱀 같이 혀를 날름거리며 어서 그녀가 죽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표정이 굉장히 사실적이다.
물론 잔은 화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구차한 목숨 하나 구한다고 있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종신형이다. 그럴 바엔 위증을 한 것을 자백하고 죽어 하나님 품에 안기겠다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대단한 신앙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감독은 종교란 관점에서 인간의 허위 의식을 까발렸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나 루터를 연상케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선 종교을 희화화 하는 경향이 간혹 보이곤 하는데, 그건 안 다루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옛날 영화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드레이어는 영화 철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