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혜의 유행유감] 드라마 춘추전국시대

심심할 틈이 어디 있니!
 

▲ '봄의 왈츠'
요즘엔 텔레비전을 너무 추종해 시간만 되면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도 인간관계에 문제를 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안 보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된다.

젊은 세대들의 유행어나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코너를 표방한 일상의 유머를 도통 알아 듣지 못하면 바로 구세대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들도 다른 시선으로 대하면 저마다 각각 정보와 재미의 산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언제나 열광하고 언제나 실망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중독되는 분야는 단연코 드라마다.

불륜이나 불치병, 출생의 비밀이 아니면 텔레비전 앞으로 시청자를 끌어 모으기가 힘들었던 드라마들은 늘 비난 받으며 끝내기가 일쑤였다. 설령 신선한 출발을 했다가도 같은 길을 간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했으며, 그래서 태생자체가 그저 ‘연속극’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소재와 작품성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 중인 세련된 드라마들로 그야말로 안방이 극장이 되었다.

▲ '연애시대'
쿨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 진정한 쿨이라고 말하는 ‘굿바이 솔로’에 이어, 헤어지고 시작하는 이상한 연애이야기 ‘연애시대’, 봄이 오는 길목을 지켰다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 풋풋한 사랑이야기 ‘봄의 왈츠’,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남자와 정의감에 불타는 용감한 여의사이야기라는 조금은 진부한 내용이지만 신들린듯한 양동근의 연기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닥터깽’, 어쩔 수 없는 끌림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초록빛 멜로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등등 귀가 시간을 당겨주는 드라마들이 다양하게 포진해있다.

신선한 내용은 물론 스타급 배우에서 영화감독까지 투입되어 “선남선녀들은 텔레비전 안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일 별로 달콤한 유혹들을 하니 뿌리치기 힘들 지경이다.

▲ '닥터깽'
일단은 얼마 전까지 영화로만 만났던 배우들을 접하는 재미와 현실에서 쓰이는 감칠맛 나는 대사로 무장한 드라마들이 젊은 세대들을 사로 잡고 있다.

예전에는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좁은 텔레비전의 드라마 속으로 다시 돌아가기 싫어했던 배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감각적인 연출은 물론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내용으로 승부하며 나아가 한류스타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스크린의 스타들도 드라마와 영화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공공연한 스케줄이 되었다.

더구나 시청률이라도 높아지면 스타에게는 더욱더 높은 날개를 달아주어 바로 몸값이 달라지고 연기력만 살짝 뒷받침 되어주면 신인배우들에게도 기회의 상자가 될 수 있는 곳이 이즈음의 텔레비전이며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드라마다.

우리도 얼마 전 영화의 조연급 캐스팅을 위해 오디션을 보려고 여자 후보배우들의 명단과 사진을 미리 감독에게 보여줄 일이 있었다. “일일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언니로 나오고요, 화제의 미니시리즈에서 여주인공 동생으로 나오는데 요즘 완전 인기 입니다…” 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텔레비전을 전혀 안보는 감독은 누가 누군지를 도통 모르겠다며 너무 생소하니 알아서 결정을 해달라고 했다. 거기에 “아니 텔레비전을 뉴스랑 스포츠말고 드라마 보기 위해 켜둔단 말이야?” 라는, 구세대가 할 수 있는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서 바로 “이거 왜 이러십니까. 안보면 바보 상사가 되시거든요? 가끔 보시죠…”라고 반박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뉴스에서만 확인하는 시대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어느 한쪽에선 자기가 버린 딸을 며느리로 맞는,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드라마도 고공비행 중이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풍성하고 맛깔스런 드라마 밥상은 받을 만하고 먹을 만하다.

매력남녀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뿐 아니라 ‘스펀지’를 통해 일상의 상식을, ‘솔로몬의 선택’으로 생활의 법률을, ‘진실게임’을 통해 다양한 인생의 사람들을 엿보게 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텔레비전의 역할에 오늘은 ‘유감’이 아니라 그래서 살짝 ‘공감’하는 중이다.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 blog.chosun.com/amsaj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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