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우울했던 시절

 레오니드 치프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삶을 다룬 소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민음사)이 번역돼 나왔다.

옛 소련의 의사출신 유대계 작가 레오니드 치프킨(1926-1982)이 쓴 이 소설은 작중 화자(치프킨)가 1975년 겨울 모스크바를 떠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페테르부르크의 집을 찾아가는데서 시작된다.

이어 소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았던 1867년 4월 중순으로 무대를 옮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빚쟁이들을 피해 독일의 휴양도시 바덴바덴으로 떠나던 무렵이다.

바덴바덴에서 보낸 여름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가장 어둡고 우울한 시기였다. 도박과 쌓여가는 빚, 충동적인 분노, 불안정한 강박관념, 비이성적인 질투, 시베리아 유형생활의 후유증,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간질 발작 등으로 얼룩진 시절이었다.

치프킨은 임신 중인 아내의 패물까지 도박으로 날리고 누더기 차림으로 휴양도시를 헤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느꼈을 좌절, 편집증, 몽상적인 환희 등을 그려낸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숭배와 그의 문학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저자는 여행 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과 작가의 생애, 그의 신혼여행과 결혼생활, 헌신적이었던 두 번째 아내, 투르게네프 등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적 삶을 드러낸다.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예민하면서도 충동적이며, 불안정하고 무례하면서도 거만한 인물로 그려진다. 적의에 찬 반유대주의와 반독일주의, 도박에 강박적으로 빠져드는 과정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책에는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주요 작품의 흔적은 물론 투르게네프, 푸슈킨, 벨린스키, 솔제니친 등 러시아 문학사까지 광범위하게 소개된다. 19세기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의 대립, 종교와 사회주의의 대비 등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지성사의 주요 주제들도 다뤄진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소재로 삼았지만 다큐멘터리 소설이나 전기소설과 다르게 사실과 허구를 버무린 독창성,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를 갖고 있다. 수전 손택은 2001년 미국에서 출간된 영문판 서문에 “만일 당신이 러시아 문학의 깊이와 매혹을 경험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택하려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고 적어놓았다.

저자는 1977년 아들 부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일하던 연구소에서 직위를 강등당했다. 이후 가족과 함께 1979년, 1981년 두 차례 이민 비자를 신청했지만 발급받지 못하고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책은 1977-1980년 완성한 책으로 옛 소련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1982년 미국 잡지에 실린데 이어 사후 20년만에 출간됐다.

시인이자 소설가 이장욱이 우리글로 옮겼다. 280쪽. 8천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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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4-26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소개하려던 책인데, stella님이 선수치셨네요.^^

stella.K 2006-04-2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반갑습니다. 그래도 저야 카피해 온 것이니 로쟈님 특유의 책소개를 어찌 따르겠습니까? 로쟈님은 어떻게 소개하실지 궁금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