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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 자넷 맥티어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늘 한나 아렌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같은 사람으로 혼동하곤 한다.
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도 난 로자 룩셈부르크를 생각했다. 만일 내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 영화를 본다면 한나 아렌트를 생각 하겠지.
알다시피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 내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시킨 철학자다. 영화는 바로 이것이 나온 전후 배경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전기 영화는 잘해야 본전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봐도 나쁘지 않고, 안 봐도 그다지 섭섭할 것 없는 장르다. 우린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나 아렌트다. 발견한 이상 예의로라도 봐 줘야 한다.

영화가 역시 좀 아쉽긴 하다. 악의 평범성을 발견한 한나 아렌트를 조명하기 위한 거라면 나쁘진 않는데, 악의 평범성을 이해시키기엔 다소 모자라 보인다. 뭐 당연한 것 같긴 하지만. 놀라운 건, 한나 아렌트가 이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당대 학계나 지성계에 주목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차가운 냉대와 비판을 견뎌야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한나가 무엇을 해 주길 바랐던 걸까? 그것은 당시론 듣보잡이거니와 만일 당시의 홀로코스트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나치 독일에 받은 박해와 수모 역시 평범한 것이어서 약화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그녀가 홀로코스트를 옹호하거나 최소한 조용히 있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나가 여자기 때문에 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므로 해서 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아니어도 그 누군가는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의 홀로코스트 이후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민중 대학살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쉬 떨쳐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긴 전범재판이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인데 거기서 악의 평범성을 논한다는 건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런데 비해 한나가 가르치는 대학의 학생들은 그녀를 지지한다. 그 대조가 인상적이다. 뭐든지 그 분야가 발전을 하려면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이런 한나 아렌트의 후학들은 또 악의 평범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을까? 악의 평범성을 너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을지 모를 일이고, 악의 평범성이 있다면 선의 평범성도 있다고 본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영화는 역시 이미지다. 나름 지적인 영화긴 한데 토론하고 논쟁하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배 피우는 장면이 영화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뭐 지성과 흡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담배 피우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긴 한다. 특히 한나가 어찌나 담배를 맛있게 빨아대는지 만일 나도 옆에 담배가 있었다면 끌어 잡아 당겼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들은 얘기지만, 어떤 남자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에 매료되어 청혼을 했다고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인 건지 담배를 안 피우는 나로선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다.
솔직히 그렇게 건강을 부르짖으면서 왜 피우면 피울수록 건강해지는 담배는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나도 분명 피웠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영화의 종반 한나 아렌트가 사람들의 비난과 냉대 속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면서 타이핑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예전엔 담배를 구름과자라고도 했는데 정말 그녀의 책상에 담배와 재떨이 대신 과자 한 봉지 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새우깡. 그리고 어느 광고 문구처럼 “그분의 책상에 새우깡 한 봉지 놔드려야겠어요.”하고 싶다. 빼빼로가 나으려나?
갑자기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언제고 그녀의 평전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