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하얀 거짓말이 피었습니다

진해 벚꽃
김탁환 소설집|민음in|332쪽|1만원

소설가와 지식인은 모두 글쓰기를 통해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서 살아간다. 좋은 소설가는 그럴 듯한 거짓말을 잘 꾸며내야 하고, 옳은 지식인은 그럴 듯한 참말을 논리정연하게 펼쳐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탁환<사진>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면서, 소설가와 지식인의 행복한 결합을 보여준다.

TV 드라마로 성공한 역사 소설 ‘불멸의 이순신’, 한국형 팩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방각본 살인 사건’과 같은 역사추리소설을 통해 김탁환은 한국 문단에서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을 잇는 중간 문학의 견인차로 꼽힌다. 김탁환은 스스로 “지식 소설가를 지향한다”고 밝혀왔다. 가령, 영정조 시대 지식인 집단을 다룬 ‘방각본 살인사건’은 전근대적 인물과 풍속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적 합리성의 산물인 추리 소설 기법으로 그 시대를 형상화한다. 그것은 역사라는 지식의 영토를 소설이라는 상상력의 영토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그의 역사 소설은 실록이나 야담의 소설화가 아니라, 사료에 대한 엄정한 지식에 현대적 허구를 결합시키는 것이란 점에서 ‘다빈치코드’류의 외국 팩션에 맞설 토종 팩션의 경쟁력을 과시한다.


그런데 김탁환이 등단 10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 ‘진해 벚꽃’은 역사소설 모음집이 아니다. 소설 미학의 내적 완성을 지향하는 근대적 예술가 의식이 낳은 단편 소설들을 모았다. 각 작품들마다 주제와 소재는 다르지만,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성장 소설이 완성된다. 폐결핵을 앓던 어린 시절 책읽기에 푹 빠졌던 한 소년이, 아버지의 때이른 죽음을 겪고, 격동의 80년대 대학을 거쳐 소설가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되기까지의 성장사가 각 단편들 속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개인적 체험을 고백한 사소설도 아니고, 386세대의 후일담도 아니다. 소설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소설은 현실을 어떻게 언어로 담아내는가, 소설이란 거짓말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가 소설’에 가깝다. 역사소설가 김탁환의 또 다른 얼굴이자, 진솔한 얼굴을 보여준다. 진해 출신인 작가가 책 제목을 ‘진해 벚꽃’으로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한 작가의 내적(內的) 상처에 핀 흰꽃이 바로 소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글=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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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2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황진이> 읽고나서 처음에 얼굴 궁굼했는데 강연들을때 보고 놀랐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턱수염 있는 남자분이데요. 이제 카이스트로 옮기셨군요. 몇년후에 서울지역 대학으로 상경하시려나...

stella.K 2006-04-2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사람 책 벼르고만 있지 아직 한번도 못 읽어봤답니다. 올해 안에는 꼭 읽어보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