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대표 희극선
정진수 엮음 / 연극과인간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로드무비님으로부터 이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 난 이 책의 제목이 '희곡선'인 줄만 알았다. 그도그럴 것이 우리나라 여타의 잘 알려진 희곡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로 묶었으니 희곡집이 맞지 않은가?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니 이것은 '희곡집'이 아니라 '희극집'이었다.

희극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재밌고, 웃기고, 풍자와 해학이 있는 뭐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피상적인 것 말고 그것을 연극으로 형상화 했을 때 어떤 느낌으로 와 닿을까를 생각해 볼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가지 느낌으로 와 닿았다. 7편을 담았으니 일곱색깔 무지개라고나 할까? 어떤 것은 풍자로, 어떤 것은 희극 같은데 비극을, 어떤 것은 묵직한 주제를 각각 말하고 있었다.

먼저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를 보면 우리나라의 출세지향적인 사고가 주인공 김상범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여러가지의 것을 복선으로 깔면서 관객(또는 그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하기 보단 여타 주변의 것 이를테면 양심과 도덕을 묻어두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출세를 지향해 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나타난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또한 <토끼와 포수>는 재혼의 문제를 경쾌한 필치로 재치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1965년도에 초연됐으니만큼 그 시대의 재혼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들이 잘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으니 당시엔 역작으로 인정 받았을지라도 지금은 뭔가 새롭게 씌여져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차범석의 <바람분다, 문 열어라>는 그의 명성 못지않게 커리어의 강점을 잘 살린 작품이 아닐까도 싶다. 그는 방송국의 제작부장과 편성국 국장을 지녔다고 하니 방송국의 생리를 좀 잘 알까. 그래서 등장인물 오영숙의 캐릭터가 교양프로의 MC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페미니즘적 요소와 민주화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이 이 세상을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더불어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나름대로 잘 녹아든 작품이 아닐까 싶다.

윤대성의 <출세기>는 무너져 내린 광산에서 극적으로 구조돼 매스컴을 타고 유명인사가 돼나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을 읽으면서 성경의 탕자의 비유가 자꾸 오버랩되었다. 하지만 매스컴의 단발성과 그것에 이끌려가는 인간 군상을 다루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저 재미만을 추구해서 볼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또한 이강백의 <마르고 닳도록>은 내가 7편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읽었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강백은 내가 속한 드라마팀과 인연이 깊어 그의 작품 <셋>을 팀원들이 연기한 경험이 있다. 그때 그 연극을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도 전작에 못지 않은 강한 흡인력이 있는데 우리나라 애국가를 싸고 50년이란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토록 풍자적으로 잘 다룰수 있을까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작가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만희의 <개띠 위에 용띠>는 정말 재미있다. 연극의 성패에 있어 배우의 연기력, 연출의 연출력도 무시못하지만 내가 희곡을 써 봐서 일까? 등장인물이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어떤 말을 구사할 것이냐는 것은 항상 피해갈 수 없는 고민거리다. 등장인물의 말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가의 말맛은 한마디로 시원하게 끊여낸 북어국맛이라고나 할까?

끝으로 장진의 <아름다운 사인>은 작가로, 연출가로, 영화감독겸 제작자로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하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6명의 자살에 대한 장진 그만의 재치가 잘 녹아든 작품이다.

이렇게 나는 7편의 작품을 읽어 가면서, 우리나라에 희극이란 분야가 그다지 많이 발전되지 않았음을 새롭게 알았다. 해설을 맡은 연극평론가 김미도씨는 그것을 사회의 암울한 배경을 간과하지 않고 있는데, 옛날 우리 광대패들은 삶이 어렵고 척박 할수록 웃음으로 그것을 풀어내기도 했지만, 70년대의 독재와 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정의를 많이 부르짖었던 분야가 있다면 문학 및 예술 방면이 이니었나 싶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타는 듯한 가슴을 삯혀낼 수 없었겠지. 그러다 보니 자연 작품은 어둡고 경직되었던 것 같다. 90년 문화의 시대가 꽃을 피우면서 문화, 예술 방면에 다양한 컨텐츠와 시도들이 돋보이기 시작했고 오늘 날 그것의 발전과 시도들은 가히 눈이 부실 정도다. 그 가운데 웃음이 문화의 한 코드로 자리잡은지는 당근 오래고.

아마도 연극에서 희극적 요소들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갈 것이다. 그것을 지켜 보는 것도 즐거운 기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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