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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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맛은 역시 좀 씁쓰름하지 않은가?

나의 출생년도는 58년 개띠 만수산 4인방 보다야 훨씬 뒤에 태어난 사람이긴 하지만, 나 역시 베이붐 세대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 때 우리반은 98명이던가 97명으로 졸업했었다. 한때 99명까지도 갔었고 중간에 전학간 놈이 있어서 끝내 100명을 채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졸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친구 사귀는데는 별재주가 없었다. 그냥 가만 있어도 따라붙는 놈은 따라붙고 떨어져 나갈 놈은 떨어져 나갔다. 유독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쉬는 시간 몇분 동안에도 할 일이 없어 책상 서랍안에 넣어놨던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느려 두 페이지만 읽으면 아쉬운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그 재미없고 따분한 교과서에 눈을 박아야 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엔 어린이 위인전기도 제법 읽어 제꼈던 것 같다. 그때 어린이 위인전기는 요즘의평전과는 달라서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그 사람의 업적을 미화시켜 놓은 게 거진 대부분이다. 묘하게도 난 은희경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꿈을 키우는데 일조한 어린이 위인전기를 떠올렸다.

물론 지금 잘 나간다는, 이 책의 제목식으로 말해보자면 메이저리그의 사람들이 자신이 성공한 요인 중에 어렸을 때 위인전기를 읽어서 많이 읽어서 성공했다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읽었던 위인전기들은 우리가 메이져리그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래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왜 사람들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지 못해 안달일까? 그리고 한쪽에선 그렇게 몰지 못해 안달하는가? 세상엔 성공한 사람보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고, 영어를 기똥차게 잘하는 인간군 보다 영어를 기똥차게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컴퓨터나 자가용을 굴리는 것도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보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도 매스컴은 늘 잘난 놈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길 더 좋아한다.

물론 가끔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댐으로 대중의 동정심을 유발하고 언론이 이렇게 자비심이 있다는 것을 들어내길 서슴치 않은 때도 있기는 하다. 매스컴은 이렇게 극단의 삶을 보여주는 것엔 원만큼 이력이 붙어버린 모양이다.

요는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고, 속물이면서 애처로움을 가진 그러면서도 성공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과 성공이 의미하는 게 뭐지라고 묻는  메이져리그의 사람들에겐 얄짜가 없다. 왜? 특징이 없거든. 그런데 그 사이를 헤집고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특별히 58년 개띠들의 삶은 어떠한가를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작업을 시도했던 것이 이 책이었단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은희경 씨는 참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매스컴의 사각지대 또는 검정과 백색을 조합해 놓은 흑색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잘도 그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본인도 58년에서 약간 비껴난 59년 생이면서 어찌보면 같은 세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조금은 감상에 젖을 법도 한데 작중화자인 김형준의 생각을 빌어 그 시절의 사람들을 잘 조망해 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 소설에 등장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지 않가는지도 모른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성공이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 떠밀면 떠밀리는대로 어떨결에 나이먹고 사는 얼떨리우스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게 인생이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 같다.

만수산 4인방도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흩어지고 헤어지고 헤어졌다간 다시 만나고, 먼저 죽고, 그 죽음을 바라봐줘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모습도 많이 달라졌고. 나는 책의 말미에 다다를수록 전에도 그런 생각을 가끔하지만, 나의 학교 때 같은 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을까를 생각해 보곤한다.

반에서 뿐아니라 전교에서 기고 뛰고 날랐다는 아이들, 난 그들이 한번쯤은 TV나 신문의 한 귀퉁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 있을까? 병이나 사고로 죽은 녀석들도 있겠지. 그들을 다시 만났다고 해서 "와 살아있었네!"하며 와락 끌어 안아줄 친구는 몇명이나 될까? 등등. 암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만들었다. 

인생 별거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작가의 관조적 문체가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시간이 오길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53p) 이런 문체가. 그리고 작중화자가 나를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ㅋㅋ.
 
이 책을 덮으면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따라 갔던 교회 주일학교 교사 였던 어느 여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초여름이 었고 수련회 준비를 했어야 했던 모양인데, "제가요 58년 개띠라서 더위를 유독 많이 타거든요."라고 말했던 그녀. 지금은 50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있겠지.
 
그리고 어쩌면 중학교 때까지 다녔던 단골서점의 펑퍼짐한 체구의 주인아저씨도 그 언저리쯤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는 "인생이 재미가 없어."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그 아저씨가 유독 많이 생각났다. 지금쯤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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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개띠이야기를 개띠해에 읽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감우성과 이준기가 모두 개띠라는 걸 신기해했던 기억이....

stella.K 2006-02-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마태님, 저는 어떻게 쓰면 마태님의 추천을 받아볼 수 있을까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