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정신이 번쩍 나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스포일러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시길!)

2주 전 어떤 영화를 볼지 딱히 정하지 않고 부랴부랴 올라탔던  4호선 전철 안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내무반 잔혹사'라는 <씨네21>의 특집기사를 읽고 나는 그 즉시 마음을 정했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기로.
그런데 그날은 개봉이 되지 않은 상태라 극장 앞까지 갔다가 허탕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영화를 오늘 오전 조조로 보았다.

내가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첫번째 걸림돌이 '군대' 문제였다. 
내가 군대에서 3년 동안 군인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대학 1학년 때 어느 선배의 부탁으로, 그이 대신 모 서클의 대표가 되어
새마을연수원에서  2박 3일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군인들 비슷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구보도 하고, 침구도 네 귀퉁이 정확하게 접고,
정해진 시간에 배식판에 식사를 하고, 자기 전에 점호도 받고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소등도 해야 했다.
자유시간이 있어 은밀하게 미팅도 이루어지고 거기서  '마이 라이프'라는 이름의 멋진 짝을
만났는데도 나는 그 생활이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정해진 일을 기계적으로 해내는 생활에도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선배의 부탁을 수락한 것인데
후회스러웠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마 대표적인 군 부적응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특별히 고상하고 섬세해서 단체생활을 못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시집가는 딸에게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으로 그저 죽어 지내라고
당부했다는 친정부모들처럼, 신병에게 고참은 그 비슷한 당부를 한다.
까라면 까고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나는 나의 의사에 반하는 타인의 강요를 받아들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뭐를 까라는 거지? 갑자기 궁금하네.

영화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한 점 과장도 감상도 없이 군대 내의 소소한 일상을 그대로 재현, 이렇게 흡인력 있는
영화를 대학졸업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구나 감탄, 또 감탄했다.
야밤에 담당 신병을 깨워 화장실 구석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봉지째 끓인 라면을 건네주고
담배를 피우는 승영이 좋았다.
별다른 인물과  유별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지지부진한 일상 속 작은 오해와 갈등이
갑자기 증폭하여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 군대요, 확장해 보면 인생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물론  자신에 대한 회의와 짜증!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휴가 나와 전화를 걸어온 친구 승영을 만나주고 술을 사주는 태영이의 모습은
바로  오래 전 어느 날 어떤 친구를 대하던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같이 무서운 영화를  최근 나는 본 적이 없다.
사람의 한계, 인간관계의 한계가 그냥 담담하게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군의 문제에 들어가면 그냥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그들(승영과 지훈)을 보라! 두 주인공은 짜증이 날 정도로 나약하고 소심해 보인다.
그런데 그 단호함이라니......

태영 역 하정우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만난 것도 큰 수확!
승영 역의 서장원은 차이밍량 영화 속 단골 주연배우 이강생과도 느낌이 좀 비슷하고,
지훈 역의 윤종빈 감독은 배우를 계속해도 될 정도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사람을 또 한번 놀래켰다.
하정우가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이고 서장원 역시 탤런트 서인석의 아들이라는 사실 또한
내게는 무척 유용한(?) 정보였다. 

 


왼쪽 신병 지훈 역 윤종빈 감독,  오른쪽 담당 고참 승영 역 서장원.

 


왼쪽이 태영 역의  하정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