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끔찍한 직업은 없다
불량직업 잔혹사
토니 로빈슨·데이비드 월콕 지음|신두석 옮김|한숲|359쪽|1만8000원
▲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굴뚝 청소부와 소년 굴뚝 청소부. 굴뚝 연통의 가장 잘록한 부분을 기어 들어갔던 아동들이 얼마나 어렸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숲제공 | |
고대 로마의 연회에 초대된 손님들은 동면쥐라고도 불리는 겨울잠쥐를 내장을 제거하고 벌꿀에 발라 먹었다. 그들은 한 코스의 요리가 끝날 때마다 다음 코스를 위해 배를 꺼지게 하려고 좀 전에 먹은 음식물을 게워 냈다. 이때 손님을 모시고 돌아다니거나 손님이 누워 있는 침대식 의자 밑을 기어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구토물 수거인’이었다.
팔레르모산 포도주와 스테이크, 로마 특유의 생선 발효 양념, 그리고 반쯤 소화된 겨울잠쥐가 뒤범벅되어 역한 냄새가 나는 구토물을 닦는 것이 어땠을 지는 상상에 맡기자. 그나마 구토물 수거인은 지붕 아래에서 로마의 중앙난방장치가 제공하는 따뜻함을 느끼며 호사를 누리기라도 했다.
영국 튜더왕조 시대(1485~1603)에 집행된 처형은 7만건이었다. 참수형이나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형집행인은 여러모로 최악의 직업에 속할 수 밖에 없었다. 신분 또한 최하층이었다. 한번에 ‘깔끔하게’ 목을 베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반쯤 베인 목에서 동맥혈이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숨통을 끊기까지 목을 난도질해야 했다.
반역자의 머리는 런던브리지에 걸렸다. 그런데 썩은 고기를 기다리는 새들이 사람들이 보기도 전에 시체를 쪼아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사형집행인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커민’이라 불리는 1년생 꽃의 씨와 소금을 넣은 커다란 주전자에 잘린 머리를 넣고 살짝 익히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인기 있는 인사가 교수형을 받는 날이면 처형장 주변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보복의 위험마저 있었다. 사형집행인의 의식용 두건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이미 모든 사람들이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했다.
이 책에는 바이킹선 운반인, 갑옷담당종자, 거머리잡이, 변기담당관, 의자가마꾼, 굴뚝청소부, 성냥 제조공 등 영국에 문명이 태동하던 고대에서부터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할
‘최악의 직업’ 60여가지가 모아져 있다. ‘영국 영웅들을 찾아서’ 등의 책을 쓰고, 아동용 TV시리즈도 제작한 저자는 풍부한 자료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얻은 지식을 짧고 명료한 서술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들은 왕이나 장군, 예술가들의 이름으로 가득찬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있지만,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시하고 손가락질한 이들 최악의 직업들이 없었다면 당대의 찬란한 문명 또한 지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촌평마따나 직장에서 비참한 하루를 보내고 막 돌아와 혹사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면 이 책을 꼭 열어 보시길. 역사상 그보다 끔찍한 직업을 가진 무수한 사람들 중에 끼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게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