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금지된 사랑에 내 순정을 바친다
뼈가 자라기도 전에 뼈가 시린 것을 먼저 알아버린 소녀가 있습니다. 초가을, 실밥이 풀려나가는 소매 끝을 감추며 책가방을 챙기던 철로 주변이 고향입니다. 철로 위에서 춤추기 좋아하던 끝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커서 미스 민이라는 기생이 됩니다.
엊그제 출간된 이현수 씨의 장편 ‘신기생뎐’(문학동네), 그리고 며칠 앞서 나온 송은일 씨의 장편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랜덤하우스중앙), 두 권을 설레는 마음으로 권해 드립니다. 올 가을 한국 문단은 이 두 권의 소설만으로 이미 풍성해진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기가 막히게 좋은, 아니 정말로 혼을 빼놓는 작품들입니다.
지극히 순정한 데다가 대단히 이기적이라면 애인의 조건으로는 최악인 셈입니다. 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대상과 밀착되거나, 아예 대상에 푹 빠져 쓴 소설이 바로 그런 애인을 닮았습니다. 펼쳐든 게 죄입니다. 다른 중요한 일들을 뒤로 미루게 하고 대여섯 시간씩 사람을 붙들어 버리는 소설 말입니다.
‘신기생뎐’은 기생과 기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뭡니까. 룸살롱 호스티스가 한복을 입고 있으면 기생입니까. 요정(料亭)이 기방입니까. 어쨌든 기생은 춤, 노래, 그리고 교태와 순정, 기둥서방을 갖추고 있어야 어쩐지 기생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금도 기생이 있어? 하고 묻지만 않으신다면, 이 소설에는 진짜 기생들의 절절한 풍속과 사연들이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청산가리 같은 문장이 독자를 죽입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명작 고전이 된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을 보면 게리 쿠퍼와 오드리 헵번이 사설탐정인 아빠 몰래 오후마다 파리의 리츠 호텔(이 호텔은 다이애나 공주가 애인과 마지막 저녁을 먹었던 호텔입니다) 14호실에서 데이트를 즐깁니다. 그것을 알게 된 아빠가 엎드려 자는 딸에게 한마디하죠. “엎드려 잠자는 여인의 86%는 비밀 사랑을 하고 있단다.”
기생들도 사랑에 빠지면 엎드려 잡니다. 사내에게 정을 품으면 아직 손님이 있는 술상에서 사내 이름을 부르며 엎어집니다. 금기 중의 금기를 깨는 것이지요.
‘불륜이 아니면 사랑도 아니다―.’ 이것은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60년대식입니다. 지금은 치정과 근친이 아니면 사랑도 아니라고 해야 일부 독자들이나마 돌아봅니다. 그들이 근천스러워서가 아니라 ‘래디컬리 러브홀릭’ 하기 때문입니다.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은 모녀 삼대 모두가 근친 사랑을 하다가 비운의 결말을 맞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양귀비 꽃살문을 전공하는 목공예가 이율희이란 여성입니다. 율희는 모두 두 명의 남자와 사랑을 하는데 그 둘 다 근친의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사실 신화든 인간사든 근친의 유혹보다 처참한 비운을 예고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때 피어난 사랑은 신음을 토할 정도로 귀기 서리게 아름답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죽어도 좋을 만큼요.
기생도, 금융 애널리스트도, 저널리스트도, 작가도 다 서비스업(業)입니다. 고객이 있어야 먹고 사니까요. 그들은 여성성을 먹고 삽니다. 아니 남성적 폭력성을 키워서 그것을 고발하고 먹고 삽니다. 이현수와 송은일의 이번 장편소설은 기생과 여성 목공예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들이 거울로 비추는 남성성이 있습니다. 그것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놓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