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박노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박노자,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이때부터> 막말로 < 꼬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되는 시기가 개화기라고 일컬어지는 이책의 화두가 되는 시점일 것이다.

책을 읽다가 독립운동가!만으로 알고있던 개화기의 인사들의 인식과 그들에 대한 다른 정보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개화기는 우리 역사에 골이 깊은 굴욕의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동학농민봉기를  청나라군대에 의해 와해시킨 고종이나, 명성황후 시해사건 ,아관파천... 속터지는 사건들도  줄을 지어있다. 그래서 개화기의 어느 노력들중 그 무엇 하나만이 성공했더라면이란  바램을 간절하게 한다 . 그랬다면  적어도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라는 역사의 한페이지와 그 후의 많은 질곡들도 피해갈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의 이런 바램이 <역사를 통한 현실 인식 그리고 희망>이라는  제언으로 책의 편집자주가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 개화기 열강에 대한 당시의 상황과 인식, 그것이 이 책의 네 가지 틀거리이다.

그런데...! 지상격론이라는 부제와는 다르게 두 사람이 시각을 편지 형식으로 제시하다보니 시각적 차이는 분명하되 논쟁은 없다.  4 개국 열강에 대한 역사관이 온건한 서술로 쓰여져 있고 ,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 갑론을박의 토론이 없다! 그래서 궁금했다. 4편 모두 박노자 교수가 먼저 편지를 쓰고 허동현 교수가 답장을 쓰는 식의 구성인데 순서가 그러하다보니 항상 박노자 교수의 견해 일정부분에 대해 허동현 교수가 반론이나 부연을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그 답장을 본 박교수 또한 할 말이 있었을텐데...그 후편이 궁금하다. 그것이 있어야 격론으로서  단지 역사적 인식의 차이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발전과 발견들이 주는 지적 긴장감을 유지할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푸른역사의 편집자는 두 사람의 논쟁의 소지가 있는 역사해석의 부분을 문제제기 하기보다는
각 교수들 의견의  몇가지 부분들을 명확히 해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차원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일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산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지이 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단지 열강들에 대한 인식 , 그 차이와 오류때문만인가? 물론 그것이 한가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게 그들의 역사적 상황인식 그 중요한 출발점! 그 안엔  국민들에 대한 관념이 더  피상적이었다고 본다, 개화기 지식인들의 국민만들기 , 국가 만들기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원하는 사회변화나 요구는 일정하게 소외되있었다 . 결국 내실없이
꺼꾸로가는 당시 지식인들의 허상과  소외되고 버림받은 백성은 주권없는 국가의 배경이 되고  잘난 세도가, 민란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남의 나라 군대로 제국민을 짋밟는 군주는 당연히 나라를 뺏기게된다 . 이책과 함께 역사의 유용성 올리며  백년전으로 돌아가보려던 나의 결론은 그렇다.

편집자는 백년만에 돌아온 열강쟁패의 시대라 했던가. 글쎄, 반도의 운명을 타고난 우리는 언제나  열강의 시대 속에 살아온 것만 같다. 단지 열강의 나라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나만의 느낌일까. 역사적 사실의 인식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대응하는 현실적 참여의 문제. 어떻게? 얼마나? ..그래서 결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과제가 여전히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노 2005-07-0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비라고 부르시면 조금 곤란한데^^;;

stella.K 2005-07-0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