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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성어 - 인생을 움직이는 네 글자의 힘
최영갑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1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펼칠 땐 왜 청춘성어인가 약간은 불만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이미 청춘을 지나쳤 버렸기 때문이다. 저 '청춘'이란 단어를 빼면 부담없이 읽겠는데 왜 앞에 저런 단어 하나 붙여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나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긴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 보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자신의 나이듦을 부정하기 보다 나답게 나이드는 것이 무엇이냐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나이 먹기 싫어 발악한다느니 오해 받는 것 보다 훨씬 나은 것은 아닌가 싶다. 하긴,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내 나이가 그리 많이 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나이가 딱 청춘은 아닐까?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고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뉘라서 젊은이에게 이런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말을 해 주겠는가? 정말 저자가 젊은이들을 사랑하는가 보다 싶다.
나이가 드니 옛 사자성어가 매력적으로 다가 온다. 그래봐야 학창시절 꼴랑 한문이나 국어 시간에 배운 것이 고작인데 이마저도 배우지 않았더라면 사자성어가 이렇게 매력적인 줄 어찌 알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알지못하는 사자성어가 이렇게 많았던가? 놀랍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사자성어는 몇 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외워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지만 외워둘 자신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가 굳은데다 원래부터 외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해하는 건 좋아하면서 외우는 건 싫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될까? 사자성어는 옛 성현들이 살아보고 만들어 낸 고어인만큼 이해는 둘째치고 무조건 죽자고 외워둔다면 어느 순간 나의 삶이나 상황에 적합하게 맞아 떨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젠장. 우린 어쩌자고 그 젊은 날 사자성어 하나 제대로 외워 볼 생각 못하고 토익 점수에 민감하고, 스펙에 목매달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 사랑에 울고, 남 보다 괜찮은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청춘이 되어버린 걸까?
남의 나라 언어는 죽자고 외워 뭐하겠는가? 그래봤자 남의 나라 말일뿐인다. 사자성어는 우리의 인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외워두면 인성교육이 된다. 옛날에 서당에서 학동들이 훈장님이 외워 오라는 것을 못 외울 땐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았다.
나는 학창시절 한문 하나 못 외웠다고 매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 대신 영어나 수학 못해서 매맞은 적은 있다. 왜 그랬을까? 한문 선생님이 인간성이 좋아서? 뭐 그럴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다른 과목에서 얻어 터질 것도 많은데 한문 정도야 중요한 과목은 아니었으니 선생님이 가급적 매를 드는 건 삼가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이 책을 덮을즈음 떠올랐다.
남 보다 조금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가급적 외워 두라고, 외우기 어려우면 손 가까운데 두고 수시로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청춘을 산다면 어떤 사자성어를 금과옥조(오, 사자성어 나온다!)로 삼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종신지우(終身之憂)와 낙양지귀(洛陽紙貴)와 금구계이(金鉤桂餌)를 들겠다.
종신지우란 "죽을 때까지의 걱정"이라는 뜻으로, 평생의 근심이 될만한 일을 걱정하고, 하찮은 일을 가지고 걱정하지는 말라(176p)는 뜻이란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나는 얼마나 하찮은 것이 목숨 걸고, 불안해하며, 불만을 잔뜩 안고 살아왔던가? 큰 일을 이룰 사람은 그 생각하는 바가 다른 법인데 나는 늘 나의 이해관계에 민감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낙양지귀는 직역하면 "낙양의 종이 값이 오르다"란 뜻으로 문장이 좋은 것을 칭찬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즉 저자의 말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남에게 알려질 때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는 말로, 남은 일생을 책임질 10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젊은 시절 대본 쓰는 일에 청춘을 바치고 작년에야 비로소 내 작품을 대학로에 거는 쾌거(!ㅋ)를 이루어 냈다. 그러기까지 거의 2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물론 그 세월 동안 대본만 썼다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안 쓴 세월도 있다. 그렇다면 10, 5,6년만에 올렸다는 말도 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분야에서 욕심을 내 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랬으면 나도 10년 안에 뭔가를 이루지 않았을까? 너무 욕심이 없었다. 하기는 주어지면 열심히 했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세월이 걸렸고, 그것도 그나마 누군가 옆에서 종용했던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직은 청춘이라고, 앞으로 살아 온 세월만큼 살게 될 거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난 10년 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인생을 낭비하며 살 수가 없다.
난 앞으로 이 10년 동안 뭘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한다.
또한 금구계이는 어진 사람의 인품보다 강한 것은 없다(88p~)이란다. 이건 정말 내가 닮고 싶고, 추구하고 싶은 성품이다. 나는 이 험한 세상 나 스스로를 지키키 위해 얼마나 고슴도치를 자처하며 살아 왔던가? 난 이 어진 성품이 가면 갈수록 되질 않는다.
그 보단 사인선사마(射人先射馬)라고, 즉 상대를 쓰러뜨릴 때는 먼저 상대편의 힘이 되는 것을 무너뜨리라(31p)는 말이 눈에 더 들어오니 학문으로 도를 닦을려면 아직도 멀었지 싶다(그도 그럴 것이, 난 벌써 1년 남짓 나의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 하나를 어쩌지 못해 고민 중이니까. 그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성어가 바로 이것이다. 그 사람을 쓰러 트릴 계략으로 그 사람의 힘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는가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난 또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고, 그렇지 않아도 그는 이미 힘이 되는 것을 잃었다. 그런데도 저 성어를 보고 눈이 커지다니. 난 역시 소인배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정말 옛 선현들은 학문으로 도를 닦으려 했다. 물론 분명 열심히 공부하면 출세도 하고 일가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도를 닦은 것은 아니다.
인성교육, 인성교육 말은 많이 하지만 우리나라 인성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젊은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다는 게 참 귀하다.
이렇게 젊은 사람에게만 들려주는 사자성어 말고, 여성에게도 또한 더 나아가 저자의 인생론도 이런 형식을 빌어 들려줬으면 좋겠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