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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넓게하고, 연구는 좁게 시작하라"
조동일 교수의 공부법



[조선일보 김기철 기자]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수험생을 위한 가이드가 아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사망’이 운위대는 시대, 학문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후학(後學)들에게 중진 학자가 말한다.

“공부는 넓게 하고, 연구는 좁게 시작하라.”

“범속한 논문이 많으면 너절한 사람이 된다. 오직 질이 소중하다고 다짐하라.”

국문학자 조동일(66) 계명대 석좌교수가 28일 전국 국어국문학 학술대회에서 학문에 뜻을 둔 젊은이들에게 40여 년 학문인생에서 우러난 ‘공부론’을 펼쳤다. 평생 학교 보직은 말할 것도 없고 학회 임원까지 사양하면서 ‘연구’에만 매달려온 조 교수이기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말이다.

“19세기 실학자 혜강 최한기가 나이별로 중요한 과업을 말한 ‘공부론’이 지금도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조 교수는 “갓 박사학위를 받은 30대는 자리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독한 마음을 먹고 공부하라”며 혜강을 소개했다. 혜강의 공부론은 20대엔 무엇이든지 탐색하고 30대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40대는 세계에서 얻은 바를 자아화하고, 다시 세계화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50대 이후에는 새롭게 개척하지 말고, 이미 이룬 바를 간추려야 한다고 했다.

“40대 이후에도 별다른 업적이 없는 사람은 20대에 공부를 넓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구’는 반드시 좁은 데서 시작해야 ‘공부’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비약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곱씹어보면, 비단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들뿐 아니라, 이제 일생의 길을 설계하려는 이 모두에게 꼭 들어맞는 이야기다. “넓은 데서 놀기나 하고 좁은 데 들어오지 않으면 구경꾼이 될 뿐, 학자는 될 수 없다”는 말 역시 그렇지 않은가.

그는 또 기존 연구를 답습만 하거나 선행 연구를 무조건 치받는 태도에도 경고를 보낸다. “어리석은 쪽에 치우쳐 있으면 기존 연구를 따르면서 더 보태려고 합니다. 똑똑하기만 하면 기존 연구를 우습게 여기고 마구 나무라지요. 둘 다 잘못됐습니다. 처음에는 어리석게 보이다가 똑똑하다는 것을 차차 보여줘야 합니다.” 긴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 10년 단위의 작업을 역저로 내라는 주문도 했다.

요즘의 교수 평가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교수 평가제가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외적 요건만 신경쓰도록 만들어요. 원래 학문은 9명이 놀아도, 1명만 제대로 공부하면 되거든요. 지금은 진정한 학문을 하려는 1명을 나머지 9명과 똑같이 만듭니다.”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작년 9월 이후 그는 계명대에서 ‘세계·지방화시대의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다. “강의 원고를 인터넷에 올리고, 학기가 끝나면 책으로 출간합니다. 앞으로 5년간 10학기 동안 10권을 낼 계획입니다.” 혜강의 ‘공부론’을 적용하자면, “이룬 바를 간추리는” 중이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10월 인도 뉴델리 네루대, 11월 중국 베이징대 발표 등 국내외 학술발표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조 교수는 “누가 평가를 해서 공부한 게 아니라 즐거워서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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