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밑에서 주워왔다, 번데기 장수 아줌마가 진짜 네 엄마다.

다른 아이들은 소싯적에 이런 놀림을 받고 꺼이꺼이 울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한번도 그런 '장난 같은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주워온 아이를 (잘되라고) 그렇게 심하게 닦달하는 의붓어머니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렇게 했으니 네가 사람구실 하는 거다"라고 짐짓 말꼬리를 감추시지만

그 땐 정말 인정사정 없이 가혹하게 키우셨다.

공부도 그렇고 손님 응대예절이나, 다른 집 방문시 금기사항, 친구들과의 관계 등등

내 삶의 모든 국면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압도했던 

어머니의 그 잔소리와 매질은

어떠한 동심의 기억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악바리 승부근성, 어떤 집에 가서도 소파나 침대에 걸터 앉지 않는 조심성과 자제력,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결코 곁을 주지 않는 냉정함, 결코 반기진 않지만 일단 온 손님에 대한 최고의 예우...

남들이 알고서 보면 참 신기하다 할 만한 성격이 모두 어머니로 인하여 형성됐다.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어린이 소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순식간에 읽어 치웠다.

정말 몇 줄 안되는 이 책을 훑으면서 참 대담하고 제멋대로 썼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소리꾼 엄마 아빠에게 학질을 뗀 꼬마 렝켄은

요정에게 부모님의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각설탕 두조각을 얻는다.

렝켄의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부모님의 키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는 희한한 이 설탕.

마침내 부모님은 땅꼬마가 됐고 렝켄은 그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렝켄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대로 어떤 간섭도 없이 제 멋대로 행동한다.

 

이 대목까지는 정말 통쾌하다. (어른인 내가 이래도 되는건가. 아직도 뭔가 남아있단 말인가.) 

마치 내가 하룻만에 키가 엄청 커서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이 모두 성냥개비만해진 듯 하다.

얼마나 내가 무서울까. 그래도 뭐라고 까불면 발바닥으로 살짝 눌러줘야지.

당하고만 살았던 세월이 서러워서 이젠 나도 큰소리좀 쳐보고 살리라. 

렝켄의 해방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엄마없는 삼일천하는 그 이상 지속될 수 없다.

렝켄은 서서히 무서워졌고 급기야는 요정에게 가서 그 마법을 풀 수 있는 비방을 알려달라고 했다.

결국 꼬마는 부모님 말씀을 안들을 때마다 자기가 절반씩 키가 줄어들 거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을 마술에서 풀어준다.

당연히 그 후론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법이 없었지만, 가끔 매우 힘 들 때가 있었다.

렝켄의 부모님은 그의 고민을 듣고 멋진 해결책을 발견해주신다. 

몸에서 설탕기를 완전히 녹여 없애기 위해 렝켄은 지금도 계속 재주넘기를 하고 있다.  

(미하일 엔데 다운 결말이다.)

 

엄마 아빠한테 불만이 있으면 다 털어놓으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한다면

과연 소원수리가 잘 먹힐까?

선생님이 어쭙잖게 불만을 해결해주겠다고 나설 게 아니라

아이들 마음속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보자

아마 요즘 아이들 불만은 렝켄보다 열배쯤 많을게다. 

잠자코 들어주자. 속엣 얘기 다 끄집어 낼 때까지, 가슴속 까지 후련해지도록 얘기하라고 하자.

할 만큼 했다 싶으면 이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엄마가 너를 정말정말 사랑하신다는 것을 언제 느껴보았니?"

 

쉽게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서른 전후의 어른들에게 물었더니 남자들은 군대가서 화생방 끝나고 어머님은혜 부를 때

대차게 울어봤단다. 그러면서 엄마가 애인보다 훨씬 가깝다는 걸 처음 느꼈다고 한다.

그나마도 여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글쎄요 한다.

어머니 사랑이 크고 중한 것은 애 낳아 키워보니 실감하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장면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마 요즘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란다.

발바닥에 불이 나게 이 학원 저 과외 찾아다니고

매월 수십만원짜리 과외비 대느라 허리가 휘청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도대체 엄마가 왜 저러는지 짜증만 나고

언젠가 마법의 설탕을 한 주먹 집어넣고 말리라 벼르고 있을 거란다.

 

모성애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엄마가 없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알게 해야 한다.

그 지겨운 엄마의 잔소리 없이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면

아이들은 천하의 망나니로 클 것이다.

자식에게 잘해줄 수 밖에 없고

자식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엄마라는 걸 알게 되면

영악한 아이들은 그 관계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모성애를 절감하게 만들 것인가.

이것도 고객감동 마케팅의 일종이다.

엄마가 잔소리하고 두들겨 패도 그게 다 사랑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한다.

그래야 엄마의 말씀이 씨알이 먹히고 애가 제대로 성장한다.

 

자 이제 각도를 달리해서 아이의 생각을 엄마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궁리해보자.

엄마에게 섣불리 이런 얘길 했다간 국물도 없을 거다.

엄마도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잔소리도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효과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잔소리 하기 전에 먼저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아이에게 이 책을 읽히고 나서

렝켄처럼 나도 엄마에게 마법의 설탕을 먹일 생각을 했었노라 인정하게 하자.

엄마가 내게 했던 그 잔소리와 엄마 중심의 생각에 화가 무지무지 났었다는 것을

털어놓도록 한다.

그러나 렝켄처럼 나 역시 엄마가 왜 그렇게 하셨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고

앞으로는 그 말씀을 잘 듣겠다고 다짐도 하게 됐다.

하지만 엄마도 앞으로는 잔소리를 줄여줬으면 좋겠다. 나도 이젠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렇게 짧막하게 쓴 편지를 이 책 갈피에 넣어 엄마에게 선물로 드리게 하는 거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뿐더러

그 부모님들에게도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판에 박힌 어머님 은혜 노래보다

<엄마 나 지금 무지 화났거든>하는 투정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걱정할 건 없다.

사모곡이든, 마법의 설탕 먹이기든

결론은 언제나 어머니의 큰 사랑에 대한 확인이기 때문에.

 

세상에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고 왜곡돼도

단 하나의 파이프 라인만은 건재해야 한다.

어머니와 자식을 잇는 사랑의 통로가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요즘 세상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이 희망의 파이프 안에 아집과 오해의 붉은 녹이 슬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출처:와이즈맨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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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1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안달리는군요... 그렇습니다^^ 옳소!!!

진주 2005-05-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댓글이 안 달리징?

진주 2005-05-1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디터쓰기하니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스텔라님. 읽으면서 스텔라님이 쓴 글인줄 알고 속으로 님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가 싶어 놀랬어요. ^^;;


stella.K 2005-05-1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옳소!!!

진주님/에고 제가 글을 이렇게 잘 쓰면 좋게요? 사실은 이거 제가 잘 아는 분의 블로그에서 퍼온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