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법칙 - 나를 천재로 만드는 비밀이야기
김병완 지음 / 아이넷북스(구 북스앤드)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예전에 나는 시나리오 창작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같이 수강했던 한 수강생이 나의 손금을 봐주겠다는 것이다. 한참을 보더니 다짜고짜, 끝까지 못 간다고 너무나 확신있게 외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나중엔 자신도 그렇게 외치듯이 얘기한 게 쑥스러운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렇다고 손금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누구라면 알만한 최고 갑부중 한 사람은 누가 손금을 보더니 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일부러 손바닥을 찢어서 손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노력 여하에 달린 거지 손금이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하듯 하는 것이었다. 

 

아니 누가 뭐랬나? 내가 가야한다면 어디까지 가야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그 갑부처럼 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가기위해 손바닥이라도 찢어서 없는 손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인간의 끝은 죽음 아니면 파멸인 것을 그걸 꼭 가 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수강생은 그러더니 내 옆의 친구를 봐주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 보다 후한 손금을 봐주면서 대체로 좋긴 하지만 대신 몸을 사리고, 조심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는 나와 다르기긴 했다. 좀 대범하고, 뭐든 끝을 보는 스타일이 었으니 그렇게 후한 손금을 봐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또 대체로 그런 캐릭터는 열정이 많아서 뭘 해도 해 내지만, 고집이 세고,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조심하고 스스로를 낮출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나는 끝까지 못 가는 타입이긴 하지만(그 친구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적당히 몸을 사리고, 피해 갈수도 있으니 적어도 세상을 험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이 책엔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천재들'이란 꼬리표를 달았고, 그들은 어찌보면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앞서 말한 일부러 자신의 손금을 만들며까지 최고부자가 되려했던 그 갑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생각하는 것처럼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은 천재들의 천재성을 알고자 해서 읽었던 것은 아니다. 목차에서 보듯이 알만한 유명한 사람들, 특히 작가들의 뭔가 색다른 일면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읽은 것이다. 난 그런 책을 좋아하니까.

 

읽다보니 이 책은 나에게 용기를 줬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작가만 해도 나와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 중 천재 소리를 듣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작품을 생각하면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된다는 건 좀 어리석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렇게 천재 작가들도 원래부터 천재는 아니었으며, 그들 중엔 형편없는 실력의 작가들도 많았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예로들고 있는 브론테 자매인 경우, 우리는 그들이 천재여서 하루 아침에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을 써 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처음엔 미숙하기 짝이 없는 글을 썼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책을 표절하고, 플롯을 베꼈다고 폭로하듯이 말하고 있다(물론 이 책의 저자도 어느 책에선가 본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천재의 의외의 일면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가?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천재들의 범재 같은 이면만을 파헤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무조건,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많이 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주는 천재들이 자기 분야에서 유명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쓰고, 그리며, 발표했는지를 확인 시켜 준다. 예를 들면 역사상 위대한 석학 중 한 사람인 프로이트도 '정신분석학 입문'이란 책을 내고 그 학파를 세우기까지 무려 300편 이상의 논문을 냈다고 전한다. 또한 우리가 고흐의 유명한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600편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고도 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작업량에서 단 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드라마 작가 김수현 씨가 생각난다. 그녀는 노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이 항상 성공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보했으며, 성공하지는 않더라도 고정 팬들에 의에 기꺼이 TV 앞에 앉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도 천재는 아닐까? 

 

이것은 확실히 범재인 나에겐 조금 솔깃한 이야기이긴 하다. 우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주입 되어진 '천재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래서 천재는 타고난, 상위 1%만이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이니 어찌 솔깃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혔으니 게으른 사람이야 핑계가 있어 좋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짓눌려 열등감 내지는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한 예로, 나는 어렸을 때 거의 부모님의 강압으로 피아노를 배웠어야 했는데, 당시 지금은 지휘자지만 당시엔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정명훈씨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명훈씨 같이 되야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을 때 정말 싫었다. 내가 왜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피아노가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를 얘기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꽤 오래도록 정명훈씨와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특히 피아노는 성인이 된 최근까지도 그 악기가 정말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인지 잘 몰랐다. 그렇다면 천재로 만들고 싶어하는 부모부터 읽어 봐야하는 책은 아닐까?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희망도 주지만, 뜨끔하게도 만든다.

저자는 책에서 '임계점'이란 말을 쓰고 있다. 물은 99도씨에서도 끊지 않는다. 딱 100도씨가 되어야 끓는다. 그것을 '임계점'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100도씨까지 자기 열정을 끓게 하지 못한 사람이고, 천재들은 100도씨까지 끓어 발화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일을 어느 지점까지 열을 올렸다 식어버렸던 것일까?

 

난 그렇게 피아노엔 소질이 없다는 걸 안 부모님은 대신 무용을 시키시려 했었다. 물론 그건 결국 시작도 못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부모님은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비교적 늦게 발견되긴 했지만, 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작가의 꿈은 사춘기가 되면서 막연하게 갖긴 했지만 오래도록 그꿈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랬던 내가 20대 말이 되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나 자신 스스로를 밀어 넣었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것에 관해서 저자는 피카소와 장승업을 비교한 글이 흥미를 끄는데, 천재란 수식어가 두 사람 다 아깝지 않은 예술가임에 틀림없지만, 피카소는 갈수록 유명해졌지만, 장승업은 불운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이나 상황을 고려해 볼 수가 있는데,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킬만한 여러 가지 상황이나 환경이 많았지만 장승업은 그 재능을 강화하고 발전시킬만한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그 길을 나름 찾은 셈이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가장 그야말로 '피 튀기게' 열심히 썼던 것 같다. 비록 그때 나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경쟁하며 나를 발전시켜 나갔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연극 대본 쓰는 일이 없는데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길이의 길고, 짧음을 상관없이 못해도 100편은 족히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여러 이유를 들어 그 일을 임계점까지 끊어 오르게 하지 못하고 어느 지점에서 놔버렸다. 데이비드 베일즈가 그의 책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서 '예술가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완벽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에,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장르가 아니라는 것에, 매번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는 것과 여러 가지 힘든 인간관계과 환경이 주는 의 한계 등 한마디로 슬럼프에 빠져 99도에도 못 미치고 그냥 제물에 식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때 이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공학이나 자기계발류의 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읽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구조는 뭔가의 자극을 받지 않으면 한 없이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하기 싫을 땐 쉬는 것도 좋긴 하지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빨리 훌훌 털어버리고 뭐든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까?  

 

앞서 말한 나와는 다른 캐릭터를 가진 친구 얘기를 잠시 더 하자면, 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나는 간혹 내가 천재라고 생각해."란 말을 해서 약간 놀란 적이 있었다. 내가 왜 놀랐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물론 그 친구의 말을 되새겨보면, 그렇게 생각하리만치 그 친구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란 말로도 들린다.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 확실히 천재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거라고 보는데 저자는 천재가 되는 여러 가지 요건 중 하나로 '담대함'과 '둔감력'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난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을 포함시키고 싶다. 물론 이것은 둔감력에 포함시켜도 될 것도 같다. 책에서 말하는 둔감력은 남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들로부터 어떤 비난이나 칭찬을 받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거인(천재)은 둔감하다"(38p)이다.  또한 자성예언이란 말도 썼는데, 한마디로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던 그대로 된다는 것인데 그 친구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천재 맞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천재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들을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읽고 있노라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천재는 은근과 끈기, 부지런함,  방대한 양의 독서와 작업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책을 인용하며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여느 자기계발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 같다.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천재를 성공과 결부시킨다는 것은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려 한다면 천재의 하양평가는 불가피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천재가 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천재가 되고도 박제가 되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비근한 예로, 톨스토이나 헤밍웨이, 고흐가 천재인 건 맞지만 그들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맞지만 만족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너무 성급하게 천재들의 어느 한 일면만을 보고 쉽게 뭔가로 몰고가는 느낌이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즉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쓴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사회의 폐해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절대 가치가 아닐텐데, 3년 동안 막대한 양의 독서를 했다면서 좀 더 새로운 가치에 관해서는 책을 써 볼 생각은 안 해 봤을까? 3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많은 지식을 담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이 분야에 잘 정리된 보고서를 보는 느낌이지 그 이상의 지성을 담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많은 책을 읽었다고 독자들에게도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각에선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도 생각해 봐야한다고도 말한다. 인간의 허다한 많은 지식이 지성을 깨우지 못한다면, 거시적인 안목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독서를 많이 하고 적게함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내용은 천재가 되라고 해 놓고, 책의 수준은 평범 수준 이상을 넘어가지 않아 보이니 어떤 면에선 좀 아이러니해 보인다. 그냥 유희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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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0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가 되시려고 이 책을 읽지는 않으시겠지요 ^^;;;
어느덧 맞이한 섣달에
아름다운 책 즐거이 누리셔요~

stella.K 2013-12-02 13:59   좋아요 0 | URL
설마요...천재되기가 어디 그렇게 쉽나요?
전 그저 오늘에 만족하는 사람이고 싶어요.ㅋㅋ

아이리시스 2013-12-0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벌써 12월 1일이에요, 달력이 어느새 넘어가서 깜짝 놀랐어요.
새삼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이제야 서서히 뭔가가 아쉬운 기분.

stella.K 2013-12-02 14:03   좋아요 0 | URL
매년 그렇지 않나요?
매년 막달은 후딱 가지만 또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달이기도 해요.
그 다음 달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잖아요.
물론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싫긴 하지만,
나이보다 젊어요란 말로 위로 받고 사니까 그냥 나이 한 살 더 먹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