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채로 행복하게 사는 법
나카무라 진이치.콘도 마코토 지음, 김보곤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은 생각 보다 참 놀랍다. 겨우 200 페이지 남짓한 책인데 어쩌면 그리도 많은 통찰을 담아 냈을까? 확실히 노장의 진가가 느껴진다고 할까?

 

사실 올해 나는, 암 환자의 가족이 되면서 이런 류의 책을 의외로 많이 읽게 되었다. 이를테면 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들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 같이 현대 의학의 3대 암 치료법(수술, 방사선, 항암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사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그런 책을 읽겠구나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각도가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죽음에서 바라 본 암'이라고나 할까?

 

보통은 암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해도 역시 '암으로부터의 생환'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이 책은 특이하게도(?) 암과 함께 남은 여생을 잘 사는 법. 잘 죽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획기적이라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70이 넘은 노인 의사다. 더 정확히는 이책은 니카무라 진이치와 콘도 마코토라는 70대와 60대의 일본 의사의 대담집이다.

 

뭐든 그렇듯, 무엇인가를 대할 때 그것이 나이에 따라 달리 보이고, 느껴지듯 암도 역시 연령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가 보다. 만일 이들이 패기 넘치는 의사였다면 어땠을까? 무조건 환자를 낫게하려는 의지만 가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들은 삶의 연륜을 가진 노인들이다(물론 요즘엔 60대를 노인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긴 하지만 대담자인 콘도 마코토는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에 따라 환자를 낫게 하겠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미 오래 전에 깨달았을 것이다.

 

이들도 암의 3대 병원치료는 이미 희망이 없고, 패악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암과 싸우려 하지 말아라. 하다못해 방치하라고까지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네들이 미쳤나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고는 우리가 지금까지 현대의료 행위에 절어서 그런 병에 걸리면 당장 치료해 끝장을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노인암인 경우, 노인이 암 치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본인 스스로나 자손들도 치료를 거부한 채 그저 고통이나 없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런 노인일수록 예후는 더 좋아 살아있는 동안 고통도 덜하며(물론 병원의 3대 치료에서 받는 고통보다 덜하다는 의미겠지), 고통없이 만족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같은 곳에선 암으로 죽고 싶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젊은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 받을 것을 종용 받으며, 그렇게 해서 병원의 먹잇감이 된다고 한다. 그것은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인데, 그런 식으로 병원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변함없이 잘 돌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이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나는 앞서 올해 초, 암 환자의 가족이 되었다고 했다. 그에 따라 나의 암에 걸린 가족은 지금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고, 이제 낫는 것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이상 고통없이 (조금이라도)편안한 임종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고통스러운 항암제를 견뎠고, 지금은 체력이 바닥이 나 더 이상 맞을 수도 없거니와 CT 촬영 검사 결과 암이 더 커진 상태다. 그러니 병원으로서도 더 이상 맞자는 말도 못하고 있다.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될 때까지 의사들은 뭐했나 싶다. 물론 의사들은 자기네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이렇게 돼서 유감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이책에서 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즉 저자는 항암제를 썼다고 환자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며, 암이 커졌다고 해서 반드시 당장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환자 중 한 사람은 암이 커진 상태로 몇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고 했다. 그것은 저자에게서만 발견되는 건 아닌 것이, 매스컴이나 주위에서도 보면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활동할 것 다하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사람을 종종 본다. 그러므로 암은 고통스럽다. 재때 치료를 안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병원이 만든 허위로 유포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이 거짓된 정보에 속아 억울하게 저승길을 재촉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병원 치료를 해서 낫는 사람도 더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00명의 암환자 중 어쩌다 운이 좋아 한 사람 나은 것을 가지고 크게 떠벌리고 나머지 99명이 어떤 고통속에서 죽어가는가는 돌아보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이제 확실히 우린 병원 치료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는 이런 의료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지만 현대 의료를 맹신하는 현대인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의 주인은 자신이란 생각이 없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고, 의사가 알아서 해 주겠거니 한다. 물론 저자가 일본 사람인만큼 자국의 의료 현실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꼭 일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을 말하는 것인 우리나라를 말하는 것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사실 그런 줏대없는 생각은 우리나라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에서 볼 수가 있는데, 주입식 교육에 절은 나머지 대학에서 과 선택도 스스로 못하는 젊은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들이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돼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할 때 병원에 가고 안 가고를 자신이 알아서 선택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과도 선택하지 못하고 무조건 대학에 들어가고 보는 사람들이 병원 역시 그렇지 않을까? 무조건 병원에 들어가 시스템에 의해 치료 받고, 운 좋으면 살아 나오고, 운 나쁘면 병원에서 그야말로 병원사하는 인생이 될 것은 뻔한 것이다.

 

그 한예로, 나의 암에 걸린 가족은 병원에서 손을 턴 상태다(물론 환자가 먼저 더 이상 항암치료를 거부하긴 했지만). 그러자 여기는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이니 요양병원이든 어디든 2차 기관으로 가라고 한다. 시스템이 그렇단다. 우리 때문에 이 병원에 들어와야 할 다른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돈이 안 되는 환자말고 돈 되는 환자를 받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합법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당하는 환자와 그 가족은 좀 어의가 없다. 실연 당하는 연인의 심정이 이에 비할까? 실컷 먹잇감으로 이용하고, 암만 크게 만들어 놓고 자기 할 도리는 다했으니 나가라니? 실연의 상처야 시간 가면 잊는다지만, 이건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문제다. 건강할 땐 몰랐는데 자본주의 패악이란 게 이런 거구나 보통 입맛이 쓴 것이 아니다. 그러니 오죽하면 콘도 마코도는 병원을 가리켜 '예방 의료 센터는 환자 유치 센터'라고 했을까?(하도 그의 독설이 강해 아예 콘도 어록이 있을 정도다. 나중에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병원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방의학' 또는 '건강검진'이란 미명하에 없던 병도 병으로 만들고, 자연스럽게 나이들어 생기는 병을 마치 문제 있는 양 크게 부각을 시켜 입원 내지는 치료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 요즘 이상한 동안 열풍과 나이 보다 젊게 사는 법을 무슨 하나의 미덕인 양 선전하는 매스컴에서 떠드는 것도 한몫한다. 그래서 늙고 병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질 않고 두려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일반인들이 현대의학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 요즘 100세 시대를 노래하는데 장수는 의학이 발달되어서가 아니라 영양과 위생이 좋아져서라는 주위를 환기시킨다. 

 

우리가 암을 두려운 것으로 인식하는 또 다른 요인은 '죽음' 때문일 것이다.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웰빙. 어떻게 잘 살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웰다잉. 어떻게 잘 죽을 것이냐도 중요한데 우린 한번도 이것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암에 걸려 어떻게 잘 죽느냐는 것이다. 자연사가 가장 좋은 것인데 그것은 몇몇 운 좋은 사람이나 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이 책 말고도 다른 책에서도 발견된다. 사실 자본주의는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잘 사는 것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도 물질적으로. 저자는 사람들이 병원을 맹신하는 이유는 이런 죽음을 생각지 않고, 신앙이 없는 탓을 꼽고 있는데 확실히 이건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타 종교기관에서도 이제는 잘 죽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좌 내지는 설교 또는 설법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조심스럽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이제 죽음을 코 앞에든 나의 암에 걸린 가족을 보면서, 신앙을 가진 가족들(거기엔 나도 포함이 된다)이 무작정 환자를 두고 고침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과연 진짜 믿음일까에 회의를 가져 본다. 생각해 보라. 지금 암에 걸린 나의 가족은 처음 치료가 시작이 될 때부터 지금까지 치료란 이름하게 여러 가지 이물질을 몸에 심고, 달고 이건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과연 환자가 이걸 원할까? 차마 물어보질 못했다. 살려니 그것도 감수한다지만 사람이 존엄하게 태어났다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고, 상실에 대한 슬픔을 곱씹는 것이 싫어 그것을 신앙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앙의 힘과 기적으로 낫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할 것인가를 이제는 종교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럴 때 이책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일정 부분 위로가 된다. 

 

노인의 말은 들어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암과 죽음, 현대 의료에 관한 통찰이 상당하다.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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