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는 선(禪) 수행을 돕는 불가의 도구다. 손바닥에 내리치면 ‘착, 착’ 경쾌한 소리를 낸다. 졸음에 겨워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내리치기도 한다. ‘쩍!’ 갈라진 대나무 두 짝이 부딪치며 큰 소리를 내지만 아프진 않다.
그러나 죽비는 잠든 영혼을 번쩍 깨운다.
지난해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치지 않는다(不及)’는 화두로 게으른 영혼을 일깨운 저자(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이번엔 정신이 번쩍 드는 죽비소리 같은 말씀을 가지고 돌아왔다. 조선시대 학자·문인·정치가의 글 속에서 짧은 경구(警句)를 뽑아 해석하고 그 옆에 감상을 달았다. 열두 달 농가월령가를 부르듯 ‘회심(會心)’ ‘경책(警策)’ ‘관물(觀物)’ ‘교유(交遊)’ ‘지신(持身)’ ‘독서(讀書)’ 등 열두 장으로 생각의 갈래를 나눴다.
“옛글을 읽다가 이따금 쾌재의 문장과 만난다. 어떤 때는 너무 기뻐 방 안을 왔다 갔다 한다. 나른하던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마음 속에 새기고 싶어 하나하나 갈무리해 두었다. 기약하지 않았는데 한 권의 책이 되었다.”(책머리에)
조선 선조 때의 정승 이원익과 유성룡은 모두 속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영남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일 수 없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 차라리 천벌을 받지, 차마 속일 수 없는 어리숙한 이원익과 너무도 똘똘해서 속일 수가 없는 유성룡은 각각 병법에서 말하는 ‘덕장(德將)’과 ‘지장(知將)’이다. 무서워서 속이지 못하는 ‘맹장(猛將)’도 있다. 마키아벨리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고 ‘맹장’을 지지했지만 저자는 “유성룡보다 이원익에게 자꾸 정이 간다”(53쪽)고 ‘덕장’의 손을 들어준다.
책을 읽는 법과 좋은 문장에 대한 글을 읽은 뒤 저자는 “마음으로 읽고 뜻으로 보면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금세 드러난다. 속임수로 쓴 글과 진정이 담긴 글은 금방 알 수가 있다”(141쪽)고 말한다. 섬뜩하다. 너는 가짜가 아닌가, 반성을 요구하는 시선이 차갑다. 저자는 ‘가짜’라는 제목을 단 미수 허목의 글에 대해 “나는 가짜는 하지 않겠다. 좀 못생기고 조금 부족해도 펄펄 뛰는 진짜, 살아 숨쉬는 진짜를 하겠다”(175쪽)고 다짐한다.
속 빈 강정에 대한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는 등줄기가 오싹하다. 강정은 겉보기엔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속이 텅 비어 배를 부르게 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렇게 감상을 쓴다. “세상에는 속 빈 강정 같은 사람이 참 많다. 예쁘고 아름다운데 두어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면 머리가 텅 비었다. 내실은 없이 겉꾸미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작은 시련에도 쉽게 부서져서 자취도 없이 스러지고 만다. 식탁만 지저분하게 한다.”(101쪽)
아, 혹시 나는 속 빈 강정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