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성의 완전성에 대한 소고 ---------


 


인류 역사상 소위 성인으로 추앙 받는 성인을 보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과 어떤 의문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성인이라는 말은 인격적으로 덕망이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사전적으로 일컫는다
어쨋던 인류문명이 처음 개명한 시대에 사람들이 고스란히 4대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음은
단순히 인격적인 덕망뿐만 아니라 어떤 공로가 가미된 느낌마저 준다


 


예수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인성과 더불어 신성을 가진 최초의 인간?이었고,


 




 


 


석가는 득도하여 생의 가운데에 신성(불성)을 득 하였으며,


 




 


 


공자는 인간답게 살아가는예(禮)의 창시자인 동시에 유교의 창시자이나


예수나 석가만큼은 거룩한 신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우주, 자연을 대상으로한 철학)에서
최초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철학을 열었고
, 옳다는 신념위에 자신의 생명을
두려움 없이 바친 비범한 인격을 가진 철인이었다.


 


 



 


 


다른 점에서 보면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나(다른 이론이 있지만)
그 인성과 신성의 충돌없이 조화로운 합일을 가진 인물로 30대에 십자가에서
죽기 훨씬전에 이미 진리를 설파하였으니,


아주 젊은 나이에 일반인이 꿈꾸기도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신성을 가졌다는 것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공자는 70세 이르러서야 무엇을 하여도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 하였고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초월해서 그것을 받아 들일 때가 70세가 덜된 나이였으며
부처가 득도한 나이가 비록 삼십대 중반이었으나, 득도하였어도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이후 80대에까지 진리를 설파하였었다


 


이런 점에서


20대에 보통 인간이 예수만큼의 높은 인격성을 득할 수 있을까?
인성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서든지 완전성을 가질 수 있는가?
또 있다면 그것이 얼마만큼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었다


 


철학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면서 - 사실 이 문제는
사견임을 전제하여야 하기에 - 이러한 의문점을 넌지시 물어 보았다.


 


친구의 말은 요약하면 이랬다(종교적인 관점을 배제한 채)
학자들간에 예수와 석가의 인성의 완전성에 대체로 별다른 이설이 없다고 한다.
다만, 석가는 35세에 득도하였어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완전해져 간 것 같다고 했다
(돈오점수 지지)
그러나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빼어나게 훌륭한 것은 사실이나 위 두사람의 경지에
미치지 못한 차상의 경지에선 인물이라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보통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대등한 석가를 견주어 보아도 예수처럼
그 젊은 나이에 인성의 완전성에 이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데 공감했다.


 


어쨋건, 아무리 읽어도 새로움을 가져다 주는 성경과 불경은 완전한 인성의 산물이든
신성의 산물이든 간에 참으로 인류의 보배로운 책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과연 그 책속의 말들은 인간의 소리일까? 신의 소리일까?


 


 


(아름다운 하이네의 글 한편 소개)

1.
나는 구약을 재독했다. 참으로 위대한 책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경탄해 마지 않는 것은 그 묘사다
말은 마치 자연의 산물 같다. 수목과 같고, 꽃과 같고 바다와 같고,
별과 같고 인간 그 자신과 같다.
솟아오르고, 흐르고, 번쩍이고, 웃는다. 어째선지 모른다. 왜인지 모른다
어쨌던 여기서는 모든 것이 자연인 것이다. 정말 그야말로 신의 말이다

다른 책은 그저 사람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호머와 같은 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책이긴 하지만 그 묘사는
재주의 산물이다. 그 소재는 성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취한 것이지만,
다만 그 형성 방법이 시적이다. 즉 인간정신의 도가니 속에서 한번 다져진 것이다
우리들의 소위 예술이라고 일컫는 정신적 프로세스(과정)을 거쳐서 정련된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예술의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노우트북의 스타일이며, 이 노우트북 속에는 개개인간의 도움 따위는
일체 빌리지 않고 , 절대 정신이 나날의 사건을 마치 우리들의 세탁물이라고
메모해 두는 식으로 그저 충실하고 면밀하게 적어 놓고 있다
이 스타일을 이러쿵저러쿵 비판한다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우리들의 심정에 미치는 효과만 확인만 하면 충분하다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은 성서속의 그 아름다움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관념으로 규정지으려고 하다가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다
론기노스는 "숭고"라고 말하며, 근세 미학자들은 "천진"이라고 말한다.
아아, 어떠한 판단의 기준도 여기서는 소용 없다는데도 말이다.
.........성서는 신의 말이다!

2.
오직 한사람만이 이 성서의 스타일과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있다
셰익스피어다. 그에게 있어서는 말이 가끔 발가벗고 뛰어나오므로,
우리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셰익셔피어의 작품에는
예술의 옷을 걸치지 않는 알몸뚱이의 진실이 불쑥 나타난다.
다만 그것은 불쑥 순간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예술의 천재가, 아마도 자기의
무력함을 느꼈을 때, 몇순간 그 권능을 자연의 손에 맡겨 두었다가는,
다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일어서서 조각적인 구성과 연기의 묘를 부려보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유태인인 동시에 그리스인이다


* 론기로스 : 신플라톤파의 철학자, 아테네 사람
하이네 :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싯구. 독일시인


 출처:  행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