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이재익 장편소설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기회도 좋았지만, 내가 이책을 읽으려고 했던 건 순전히 작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그것도 서점에서 이재익이란 이름이 심심찮게 떠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가 봤더니 공중파 라디오의 PD란다. 이책 말고도 몇권의 책을 더 낸적이 있고, 이미 그의 작품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사람이 한 가지 일도 잘하기 어려운데 PD에 작가에 영화 진출까지! 부럽다 못해 약간 배가 아플려고 한다.ㅋ 

 

책이나 영화나 스릴러는 딱히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작가의 이름이 아니었으면 안 봤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책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으니 말이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느꼈던 건 작가는 모르긴 해도 영화와 만화에 일가견이 있겠다 싶었다. 한마디로 책이 비주얼적이다. 굳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그림이 그려진다. 특히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폭력적 장면이나 비교적 디테일한 섹스 장면은 영화의 지문보다 리얼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여러 종류의 폭력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들 중에 폭력적인 장면이 가장 많이 등장하지요. (중략)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학교 폭력에 대해서요.

 학교 폭력을 보도하는 기사를 보면서 마치 정글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정글보다 더 잔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320~321p)     

나름의 (궁색한)변명 같기도 자조하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 정도 가지고 놀랄 정도는 아니다. 이미 우린 알게 모르게 폭력 장면이나 음란한 장면에 얼마나 많이 길들여져 왔는가. 단지 거슬렸던 건 사실이다. '뭐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작가는 나름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남들이 그런다고 자신까지 그래야 하는 건가? 좀 묻고 싶어졌다. 

 

이 이야기는 지난 해 말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한 스릴러다. 자고 일어나면 뉴스에서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는지라 이런 사건이 있었나? 부끄럽지만 좀 뜨아했다. 주진우 기자는 그때 성폭력에 가담한 자가 44명이라고 했는데, 여기선 41명이다(그래서 제목도 간단 명료하게 41이다). 44명이든 41명이든 명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떻게 이 모든 사람이 무죄로 판결을 받았는지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귀신이 신나락 까먹기 딱 좋은 나라라는 걸 입증한 셈이다. 무법천지란 말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이것 하나로 끝났던 것이 아니다. 익산과 전주에서도 발생 했으며 학교와 경찰, 사법부의 안일한 대처와 어른들이 불합리한 잣대를 들이대 피해자들은 또 한 번 강간을 당해야만 했다(주진우의 전통시사활국 주기자, 333p). 아무튼 이것에 대해 작가는 '이 사건의 가해자들이 누군가로부터 복수를 당한다면?'이란 가정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320p). 이야기를 대하는 작가의 좋은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걸 꼭 스릴러란 장르로 풀어야만 했을까?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스릴러라기 보단 복수극 더 맞는 말 같다.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 않고 조금 조금씩 보여주는 작가의 이야기 푸는 방식도 마음에 들기는 한다. 보고나서 나름 통쾌한 느낌도 든다. 그후 시윤은 어떻게 됐을까? 정태는 또 어떻게 됐을까? 약간의 여운도 괜찮긴 하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이건 너무 익숙한 방법 아닌가? 보고나면 약간은 허탈해지는 것이 여느 영화 보고난 느낌과 별 다르지 않다.

그래. 보고나면 인과응보란 말도 생각나고(복수극이니까), 우리나라 법이 정말 허술하고 있는 자를 위한 법이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은 없구나 회의하게도 되며, 가해자도 가해자지만 그 아이들을 싸고도는 어른의 맹목적인 이기심에 치를 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스릴러 복수극 보다 조금 다른 관점, 다른 장르로 풀었으면 어땠을까? 

 

이제 우리나라 영상이 수위를 넘었다는 것엔 모든 사람이 공감한다. 엊그제 하필 이책을 읽으면서 모처럼 영화 <완득이>를 보았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완득이를 좋아하는 윤하를 보면서 묘하게도 이책에 나오는 미나와 오버랩이 되는 것을 느꼈다. 미나도 저렇게 윤하같이 해맑았겠지? 그런 미나가 짓밟혔다니. 저 완득이의 윤하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잠시 망상적 젖었다. 그런데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책은 아직 영화화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윤하와 미나를 오버랩 시킬 수가 있을까? 나의 사고체계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좀 놀랐다. 결국 책을 보면서 영화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다른 장면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작가의 저 말이 공감도 납득도 되지 않는다. 폭력적 장면으로서 이 사회의 폭력성을 말한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어야 이 사회의 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건 많은 영화 감독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 들어가야 영화가 된다고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그러니 작가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을 정당화하거나 미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겉표지도 보면 청소년도 함께 봐도될 그런 그림을 하고 있다. 이책이 청소년도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되려면 그런 장면들의 남발이 아니라, 너희의 학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어떻게 할래? 라고 물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레이디 가가가 내한 공연을 갖는다고 했을 때 공연물 심의 위원(?)에서 청소년 유해 공연(?)이란 판정이 났다. 그랬을 때 탈런트 유아인이 무슨 쌍팔년도식 발상이냐고 비판하는(그랬다기 보단 냉소하지 않았을까?) 글을 자신의 미니홈핀지 어디에 올렸다고 한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런 보도는 우리나라 심의 규정이 얼마나 낙후되었는가를 비아냥 거리기 위해 보도된 것처럼 보이는데, 낙후된 면이 없지 않더라도 글쎄 일단 그런 빨간 딱지가 붙여지면 의심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자식가진 부모는 더더욱. 물론 그런다고 우리의 아이들이 그 공연을 안 보겠느냐마는 난 영상의 폭력성이 범죄에 미치는 것을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라 낙후됐더라도 심의위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유아인은 공공의 적이 될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 작품은 장르에 호소하는 이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 법의 허술함, 어른들의 이기심, 학교의 무력함에 촛점을 맞췄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작가가 작품을 위해 나름 많은 자료를 참고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특히 법에 대한 공부를 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허술하고, 강자를 위한 법인가를 보여줬더라면. 그래서 대미를 시윤과 정태의 대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효진 검사와 미나의 이야기나 41명을 다 다룰 수 없어서 그중 차출된 9명 중의 한 사람과의 대결 구도에 힘을 줬더라면 좀 더 신경 쓴 작품이란 평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얼마 전 개봉한 <부러진 화살>을 보라. 그건 이렇다 하게 자극적인 장면이 없으면서도 우리나라 사법부의 문제점을 아주 적절하게 보여줌으로해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아주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작품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또한 난 그 영화를 보면서 결국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이 모든 것의 우위를 차지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난 이 작품을 보면서 웬지 영화화 될거라는 조짐과 함께 재미는 있는데 익숙한 번잡스러움을 또 한 번 보여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인과응보. 41명의 가해자를 무혐의 판정을 받게 해 준 주 변호사가 태도를 바꾼 것이 그 사이 그의 아들이 똑같은 폭력을 당하고 자살을 했다는 점에서 성폭력의 문제는 나의 문제고 내 가족의 문제인 것을 각인시켜 준 것은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것 이전에 우리가 얼마나 내 문제가 아니면 둔감한가는 가해자의 부모와 이 사건이 여론의 촛점이 되면서 비난을 받는 장면에서 묘한 대척점을 이룬다(176p). 분명 가해자의 부모도 자신들의 자식이 그런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저런 놈은 시청 광장에 세워두고 총살시켜야 한다고(어른들은 곧 잘 이렇게 말한다) 길길이 날 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교육 부재의 시대, 법의 정의가 부재인 시대에 그런다고 이 성폭력의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무엇보다 기성 세대의 성문화가 바닥이다 그런 세상에서 제 2, 제3의 밀양 성폭력 사건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피해학생을 오히려 마녀사냥을 해 전학간 학교에서도 발을 못 붙이게 만든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그건 가해학생 못지 않은 잔인한 짓을 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를 신뢰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면 그런 문제는 발도 못 붙이게 오히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했을지 모를 일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 폭행을 당했던 그 여학생은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위에서도 고백했지만 나 같은 벽안의 시민은 그 사건을 너무나 빨리 쉽게 잊었다. 그것을 상기시켜 주기에 이 작품은 그런대로 효과는 있어 보인다. 

솔직히 나의 조카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도 좀 불안해 보인다. 더구나 요즘 부모를 떠나 친구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잘 지내고 있을까?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음이 더 불안해 진다. 우리의 아이들이 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법이나 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책을 읽으니 얼마 전에 읽기를 마친 주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중학교 다닐 때 어린 애를 데려다가 팬티를 벗기고 추행하던 두 놈이 있었다. 한 명은 1년 선배고, 한 명은 동기였다. 매년 명절 때마다 고향에 가면 꼭 물어본다. 그놈들 뭐 하느냐고. 몇 해 전 그 선배가 체포됐다. 안산 발발이로 신문을 큼지막하게 장식했다. 옛날부터 성도착증을 보이더니 원룸을 털고 강간을 일삼는 전국구 범죄자가 된 것이다. 그놈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걸렸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로비해서 번번이 구해냈다. 결국 큰 범죄자를 만든 꼴이 됐다. 동기는 고등학교 때 강간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왔다. 이후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 341~342p)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만들면 자신의 눈에선 피눈물 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자식을 감사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같다지만 이런 문제를 로비하면 죄에 대해 둔감해져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다. 옛날엔 자식이 그러면 창피해서 이사를 가는 부모도 있는데 지금의 부모는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작품의 의도는 좋은데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와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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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0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오랜만에 스텔라이모 글에 댓글 달아보네요. 이 책은 신간 소설을 찾다가 눈여계 봐둔 소설인데 이모가 읽었다고 해서 놀라며 글을 읽었지요. 왠지 이모 취향은 아닌거 같아보아서요.(어쨌든 제가 잘옷 알았던게 아니라서 다행이군요ㅎㅎ)
부러진 화살은 놀랄만한 영화였지요. 웬만한 자극적인 영화보다 훨씬 자극적이었고, 비판적이었어요. 일단은 눈살 찌푸리게 되는 자극적 장면도 없으니 생각거리를 더욱 명확히 던져주었구요. 비주얼적인 소설은 제가 참 원하는 소설인데 어찌 읽을 방법이 없네요. 연이 된다면 만나겠죠ㅎㅎ 그나저나 새삼 이모 리뷰가 대단하다고 느껴요. 길이만 긴것도 아니고 긴 리뷰안에 하고픈 이야기가 옹골차게 뭉쳐있는 리뷰 참 좋아요.

stella.K 2012-05-04 13:45   좋아요 0 | URL
짜슥, 그냥 달라는 말 보다 더 하네.ㅋㅋ
기다려봐. 언제고 시간나면 보내줄게.
근데 뭐, 옹골차게 뭉쳐있다...?
니 마이 컸다!ㅋㅋㅋ
근데 내 리뷰가 오히려 번잡스러웠나 보다.
추천은 영...ㅠㅠ

이진 2012-05-04 19:17   좋아요 0 | URL
음, 달라는 소리로 들렸나요 ㅎㅎㅎ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읽히긴 하는군요.
제가 많이 컸죠?
어른들한테 이런 평가나 하고다니고 말이에요 ㅎㅎ
아니에요, 너무 잘쓰셨는걸요.

해피투게더 나문희씨가 나온 편을 보고 있는데 역시 너무 좋아요.
저, 김영애보다 나문희를 더 좋아하거든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stella.K 2012-05-04 22:25   좋아요 0 | URL
뭐야, 김영앤줄 알았더니 나문희라구?
나문희 다음은 누구야? 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더 없는 거야?ㅎㅎㅎ
니가 마이 큰 것 중에 또 하나가 있는데,
니가 벌써 이모의 책 읽는 취향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지.
그 때문에 보내 준다. 세상에 이런 이모 읎지?ㅋㅋㅋㅋㅋㅋ


이진 2012-05-04 23:38   좋아요 0 | URL
헤헤, 대충은요.
대충은 아마 이럴것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 취향이 있어요.
뭐라고 설명하기는 약간 애매한데 말이죠 ㅎㅎㅎ
저는 연기 잘하는 배우 좋아해요. 김영애와 나문희 둘 다 연기에서는 짱 먹으시고 귀엽고 예쁘기까지 하시잖아요. 또 있다면 저는 바로 박해미를 꼽지요. 어떻게 보면 '거침없이 하이킥'을 아주 감명깊게 봐서 그런거 같기도 하구요.

우와!

아이리시스 2012-05-0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분이 쓴 소설을 읽었는데 비쥬얼 치중이라 문학적인 면은 부족하다 여겼는데, PD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랬는데 뭐랄까, 본인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소설적 영역을 구축해가는 건 좋아보여요. 전에 제가 읽은 건 <카시오페아 공주>랑 <압구정 소년들>이었어요^^ 근데 이후로 엄청 소설이 많이 나왔어요.^^

stella.K 2012-05-07 10:26   좋아요 0 | URL
저도 새로운 소설적 영역이란 말에 동의해요.
문학성은 다소 아쉽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은 알고 있으니.
단지 좀 통찰적 측면이랄까? 그게 좀 아쉽고
익숙한 방식이 아닌 좀 더 다른 측면에서의 이야기의 접근이 아쉽더라는 거죠.
이럴 것 같으면 영화로 보지 소설은 안 보게 될 것 같아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