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동물원 - 국어 선생님의 논리로 읽고 상상으로 풀어 쓴 유쾌한 과학 지식의 놀이터 1
김보일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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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저자의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글을 참 쉽게 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러운 것이면서도 본받고 싶은 것이기도 한데,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오랫동안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선생님의 하나 같은 고민은 어떻게 하면 교과 내용을 학생들에게 쉽게 전달하느냐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오늘날 저자의 책을 있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저자가 철학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과 국어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을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생물 그것도 '진화'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난 학교 때 이과계통의 과목을 참 지지리도 못했다. 그래도 생물은 그나마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온 뒤로 새삼 이 나이에 무슨 과학이냐며 스스로 문외한임을 자처하면서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진화의 입장에서 보자면 안 쓰는 몸의 기관은 퇴화한다고, 역시 정신이나 사고도 그쪽으론 퇴화하다 못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살아온 것 같다.

 

지금까지 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편견의 존재라고, 책 또한 어쩔 수 없이 편식을 하게 되더라고 자조 반, 탄식 반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젠 그것에서 한 술 더 떠 그럴수 밖에 없고, 그게 정상이라고 까지 말할 뻔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안 쓰던 근육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활개를 치듯,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또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입술 언저리에서 맴돌던 말이 쏙 들어가버렸다.

이 책은 공히 말하건데, 내가 저자의 읽은 책 중 가장 재밌게 쓴 책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생물이나 과학 선생님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저자는 국어 선생님이다. 국어 선생님이면서 생물 선생님인 양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의 전달 능력은 아무래도 우리말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이 한 수 위는 아닐까? 요즘 통섭도 많이 한다는데 말이다. 이미 저자도 고백했지만, 자신은 과학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밝혔다. 저자는, 여기에 묶인 글들은 치열하고 엄정한 사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루소가 벌처럼 이 식물에서 저 식물로 옮겨 다니며 즐거움을 느꼈듯이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 다니며 과학적 사유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졌던 놀이의 기록 (286p)라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는 어느 한 기간 동안 과학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이 너무 좋아 정리하면서 독자들에게도 전하여 주겠다고 마음으로 이 책을 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정말 한 쳅터 한 쳅터 넘길 때마다 저자는 꼭 누구의 무슨 책에 보면...이라면서 꼭 책과 저자를 밝히고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그것을 대하다 보면 가끔은 나도 어디선가 제목 정도는 알고 있는 책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어머, 그게 이런 내용이었어?'하며 관심을 갖게도 되고, 어쩌면 과학은 어려운 분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요즘 일반인도 쉽게 관심을 가질 법한 소위 말하는 '과학 대중서'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그래서 실제로 과학에 관한 책을 접하게 되는 개기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나 같은 게으름뱅이 독자도 이 책을 통해 아, 정말 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뿌듯함과 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이 책이 갖는 성과는 아닐까 싶다.

 

솔직히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처음엔 책 제목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화론자들은 기독교를 공격하거나 기독교가 믿는 창조론에 배치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거의 자동적으로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자도 밝히기도 했지만 제목이 다소 급진적(?)으로 보여 그렇지 진화를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말대로 과학자가 아닌만큼 그냥 편하게 자신의 읽은 책에 대해 기술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평소 다윈과 진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기독교인이면서 과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비기독교인이면서 똑같이 과학에 대해 문외한이면서 창조론을 비판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무신앙이도 신앙이라고 신앙과 학문은 엄격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기독교 과학자들 중엔 (어느 정도)진화론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비기독교인 중에도 (역시 어느 정도)창조론을 인정하는 과학자도 있을 것이다. 과학을 바라보는 눈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듯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만물을 우리가 어찌 다 알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다윈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과연 기독교와 대립하기 위해 진화론을 말했을까? 모르긴 해도 그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얼핏 그도 기독교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의 이론이 기독교에서 너무 배척을 받으니까 화도 나고 상대적으로 기독교가 편협하다고 느껴져서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다 보니 기독교와 대립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책 중간에 다윈에 대해 언급해 놓은 부분이 있었다. 물론 기독교와 진화론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위트와 유머가 많은 사람인가를 다룬 내용이다. 특히 결혼에 관해. 그는 결혼에 관한 손익계산 즉 대차대조표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결혼하지 않았을 때의 좋은 점과 결혼했을 때의 좋은 점을 비교했나 보다(아무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 뒤 얼마만에 사촌인 엠마를 만나고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정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136~137p). 그것을 읽는 순간 최근 다윈의 러브스토리로 잘 알려진 '찰스와 엠마'라는 책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콧등으로도 보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말이다(독자 평점도 높은 편이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그 책에 소개되어진 또 다른 책에 꽂혀 읽어보고 싶거나 실제로 읽게 된다면 그 책에 대한 성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뭔가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유연한 사고 내지는 방향을 틀게 된다면 그것 역시 책이 갖고 있는 결코 작지 않은 성과다. 그것은 또 의외로 대단한 책이 아니고 이렇게 온갖 재미로 무장해제시키는 책일 수 있다. 그러니 책은 정말 우습게 볼게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는 다윈의 결혼 대차대조표를 소개한 그 쳅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이성 없는 감정은 맹목이고, 감정 없는 이성은 공허하다. 이성이 감성을 인도하고, 감성이 이성을 부축해야 한다는 것! 때론 감성 앞에 이성이 고스란히 무릎을 꿇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다윈은 그렇게 했고, 다행히 행복했다.

                                                                     (137p)  

 

 이것이 어디 다윈의 결혼에만 적용이 되겠는가. 앎을 추구하는 자세도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앎을 추구하는 것도 궁극엔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학문하는 자세, 책 읽는 자세 역시 그래야 한다. 그러려면 저자의 일침을 가하는 쓴소리도 읽어야 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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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3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이렇게 책을 읽다가 그 책에 소개되어진 또 다른 책에 꽂혀 읽어보고 싶거나 실제로 읽게 된다면 그 책에 대한 성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저도 이런 경우가 많아요. 리뷰를 보고 그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댓글에서 주고받다가 언급된 책을 찾아 읽기도 합니다. 또 누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면 그 책이 갑자기 읽고 싶어져 읽죠. 집에 책은 쌓여 있고 전부 읽은 것은 아니라서요. 어떤 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면 읽게 되는 거죠.

2. 137쪽의 인용 문장- 을 보니 인간은 결국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존재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한 문장이 떠오르네요.
인간은 수수께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인간 심리의 책을 즐겨 읽게 돼요.

3. 아, 첫 댓글이라 기분 좋다. ㅋ

stella.K 2012-03-31 17:56   좋아요 0 | URL
1. 그래서 전 <찰스와 엠마>를 읽어볼까 생각중이어요.
2. 그래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잖아요.
마음 끌리는대로 행동하고. 그래서 인간은 요물이라잖아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ㅠ
3. 저도 첫 답글을 언니한테 달아드리게 돼서 좋아요. 주말 잘 보내세요.^^

cyrus 2012-04-0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다윈의 자서전을 읽어봤는데요, 사실 다윈은 애초부터
기독교적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 진화론을 주장한 것도 아니었대요.
오히려 기독교의 창조론에 부합할 수 있는 쪽으로 이론을 구상하려고 했대요.

<찰스와 엠마>는 저도 곧 읽어보려고 해요. 이 책 이외에도 다윈이 생전에 쓴 서간문들을
모은 두 권짜리 서간집도 있어요.^^

stella.K 2012-04-01 18:52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정말 이 책 읽고 '찰스와 엠마'가 확 끌렸어.
그거 읽어보고 괜찮으면 평전도 읽어 볼까 했는데
알아 봤더니 넘 두껍네.ㅠ
근데 서간집도 있었구나. 좋은 정보 고맙.^^
아, 근데 자서전도 있었네. 그건 몰랐어.ㅎ

2012-04-06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6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