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UFO! 사랑해요!

도시가 타락하는 것은 달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나는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어찌하여 달은 지구 가까이에서, 저토록 슬프고 아름다운 얼굴로 지구를 바라보게 된 것일까요. 달의 기원을 몽상하는 일은 세속의 일상을 가로질러 나에게 우주먼지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고 우주거품이라든지, 은하, 블랙홀이라는 말들을 떠오르게 하지요. 그리고 묻게 됩니다. 나는 언제부터 나였을까, 라고.

달은 우리 은하가 만들어질 때 어떤 연유로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 이 별의 일부였는지도 모릅니다. 지구와 한 몸이었던 달 그래서 달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허락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구를 그리워하며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그리움, 그 안타까운 일렁임이 저토록 고교한 빛의 너울로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기고 밤마다 그 물살 속에 달빛의 아이들을 산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달이 가장 부푸는 만월에 일어나는 월식은, 지구와 한 몸이었던 달이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고자 염원하는 신성한 혼례인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달. 그 혼례의 밤이 지구의 그림자 속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금 비껴가야 하는 슬픈 숙명을 지닌 것이라 할지라도.

혹은, 우주를 유랑하는 떠돌이별이었던 달이 우연히 지구 옆을 지나다가 한송이 푸른 꽃인 지구에 매혹되어 영영 지구 곁을 서성거리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서성거림. 우주를 떠돌며 그가 알게 된 다른 모든 은하의 별들에 구전되는 아름다운 노래들을 밤마다 나지막이 불러주면서, 이 푸른 별이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날마다 아름다워지기를 꿈꾸면서, 단지 서성거리면서... ...혹은, 우연히 지나쳐 흐르던 달의 노래를 사모하여 지구가 달을 보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달은 또다른 미지의 은하를 꿈꾸고 지구는 창백하게 떨리는 달의 속눈썹을 단 한번 쓰다듬어줄 수 있기를 꿈꾸고... ...그렇게 두 별의 아득히 비껴선 그리움 때문에 달빛이 저토록 몽롱한 슬픔의 빛을 띠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달이 뜨지 않는 지구의 밤이 그토록 적막한 것인지도. 

어쨌거나 달은, 나라는 존재가 지구별 위의 미미하기 짝이 없는 어떤 공간에 부러져 '삶'이라는 이름의 어떤 호흡을 지속하고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환영입니다.  '우주'라는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심연 속의 나의 목숨이란 우주의 목숨에 비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나를 받아안고 있는 지구의 목숨 또한 우주의 목숨에 비한다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수백억을 헤아리는 은하들 중 자그마하고 평범한 한 은하에 불과한 태양계 속의 작은 별 지구와 달. 바로 이곳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우리의 삶이 얻고자 하는 세속의 것들이 부디 깨끗한 욕망으로 빚어지는 맑은 물 한사발 얻을 수 있기를.

말갛고 슬픈 빛으로 조용히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천공의 눈. 저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세속이 무한한 연민으로 일렁거리게 됩니다. 현란한 도시의 불빛들이 내달려간 욕망의 피뢰침 끝에서 외줄을 타는 슬픈 광대들, 나와 우리가 어디를 향해 삶의 물고를 터야 할 것인지를 되묻게 됩니다. 달은 인간을 향해 쉬이 노여워하지 않습니다. 초승에서 보름으로 다시 그믐으로, 그리하여 달이 뜨지 않는 죽음의 시간을 지나 부활하곤 하는 달은, 자신의 숨결에 성심을 다하며 지구별 위의 인간 역시 가장 낮고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사랑할 것을, 이별을 사랑할 것을 묵언의 기도로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달의 죽음과 부활. 우리가 일상적인 것이라 느끼는 달의 죽음과 부활이 사실은 달의 의지가 이룬 매일의 기적이라는 것을, 내게 주어진 하루분의 생이 죽음을 껴안고 흘러가는 시계추 위에서 아직은 삶 쪽으로 기울어 있는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라느 것을.

달빛에 공명하는 시간을 잃어버리면서 인간의 도시는 타락해 갑니다. 우주의 노스탤지어를 잃어버리면서 인간의 존재방식은 교만해집니다. 달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신성한 원시(原始)를 상실하면서 인간의 꿈은 무지해집니다. 저 달에서 보면 지구 역시 초승에서 보름으로 다시 그믐으로,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고 있겠지요. 매일매일의 기적의 힘으로.

                                                         -김선우, <물밑에 달이 열릴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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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0-14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시인의 글을 여기서 만나니 또 새롭습니다.
오랜만에 저 산문집이나 들춰봐야겠어요 ^^

stella.K 2004-10-14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사실은 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이었죠. 요즘 읽고 있는데 문장이 아주 뛰어나더군요. 어떻게하면 이렇게 쓸 수 있을지...물론 문장을 흉내낼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