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가슴속에서

별들이 사알짝 떠는 것을 알아챘다네.

하지만 안개로 빚은 영혼 속에

오솔길을 잃어버렸다네.

이상의 샘 속에

햇살은 내 날개를 부러뜨리고

고뇌에 찬 슬픔은

추억으로 몸을 적시네.

 

장미란 장미는 모두 하얗다네.

마치 내 고통의 빛깔처럼 하얗다네.

그렇지만 원래가 흰 빛깔은 아니라네.

장미 위로 내리는 눈을 맞았다네.

예전에는 무지개를 갖고 있었다네.

내 영혼 위로도 눈이 내리네.

영혼의 흰 눈은

빛 혹은 그림자 속에 감추어진

입맞춤과 정다운 모습의

눈송이를 지니고 있다네.

 

장미는 눈을 떨쳐버릴 수 있지만

영혼에 눈이 한번 쌓이면 떨굴 수 없고

시간의 발톱은

눈과 함께 수의를 짠다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갈 때면

눈이 녹을까?

후일 더욱 완벽한 장미와

눈이 존재할까?

그리스도가 가르쳐준 대로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할까?

어쩌면 문제 해결은

결코 불가능한 걸까?

 

만약 사랑마저 우리를 배신한다면?

만약 황혼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선과

가까이에서 고동치는 악의

평범한 진리 속에 우리를 결박한다면

누가 우리에게 생명의 자양을 줄 것인가?

 

만약 희망의 불이 꺼져버리고

아수라장이 되면

어떤 횃불이 지상 위의

길들을 밝혀줄 것인가?

 

푸르름이 단순히 몽상이라면

순수를 어리하리야.

사랑의 화살이 없다면

우리네 사랑은 어이하리야.

 

죽음이 그저 죽음에 불과하다면

시인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잠든 사물은 어떻게 될까?

오 희망의 태양이여!

맑은 물! 초생달!

아이들의 가슴!

돌로 만들어진 투박한 영혼!

오늘 나는 가슴속에서

별들이 사알짝 떠는 것을 느꼈다네.

장미란 장미는

내 고통마냥 하얗다네.

                                                 1918년 11월 그라나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사랑의 시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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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3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가슴을 저미게 하시는군요...

stella.K 2004-09-3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강렬함이 느껴지는 시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