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쿠바/ 사석원 지음/ 청림출판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읽으나마나 한 신변잡기성 기행문에 물려버린 독자라면 화가 사석원의 쿠바 기행문을 읽고 독서의 입맛을 되찾길 권한다. 순수하고 맑은 웃음을 가진 쿠바인의 얼굴과, 퇴락했지만 고풍스러운 멋을 잃지 않은 수도 아바나의 옛 건물 사진들, 여기에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담아낸 쿠바의 풍경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화가는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의 한 장면, 아바나의 방파제 옆 도로를 달리다 파도를 뒤집어쓴 낡은 자동차 장면에 매료돼 쿠바 여행을 결심한다. 올해 2월 그는 3주간의 쿠바 여행을 떠났다.

화가는 낯설고 가난하지만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쿠바를 예찬한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출입국 관리만 꾹 참고 통과하면 그만. 유서 깊은 호텔 잉그라테라의 청소부 아줌마들이 아침마다 손님들을 꼭 껴안아 준다는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를 정하고, 잠시 택시가 멈춘 틈을 타 차창 밖에서 매춘을 제안하는 청년 때문에 놀라움의 탄성을 지른다.

1982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의 구시가지에서는 가난으로 인해 ‘삶의 슬픔들이 진하게 덧입혀진 건물들’과, 그 건물 속에서 웃음 지으며 비극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보며 숙연해진다.

몸속의 모든 육욕을 부끄러움 없이 불살라내는 살사춤의 매력, 처음 본 사람들과 다음날 만나 다시 놀자는 약속을 지키는 쿠바인들의 인간미도 따뜻하게 그린다.


▲ 플로리다만을 향해 펼쳐진 아바나의 제방 위에서 혼혈 청년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쿠바인들은 가난하되 삶을 즐기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기행문이 지루한 것은 자칫 풍경 묘사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화가는 열두 살 아들을 둔 스물일곱 이혼녀 줄리엣의 고단한 삶, 하루 일하고 하루 놀며 월급 7달러로 사는 줄리엣의 사촌 이고르 이야기 등 풍경 뒤에 숨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채롭게 펼쳐낸다.

화가는 쿠바의 음악을 찬양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듣는 쿠바인들의 노래를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의 노래엔 마치 살코기를 날로 먹는 것 같은 활기와 야성미가 담겨 있다.…소박하고 숨김 없는 관능성이 꿈틀대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때는 기름지고 너무나 달콤하다. 또한 아주 슬프면서 감상에 젖을 때도 있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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