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 A Brand New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우니 르콩트
주연 : 김새론, 박도연(2009)

카메라가 한동안 한 여자 아이만을 쫓는다. 바로 앞에 아이의 아버지도 있고, 다른 잡다한 사람들도 있지만, 카메라는 거의 집요하리만큼 여자 아이에게서 떨어질 줄 모른다. 이렇게 약간은 기묘하게 시작되는 영화는, 또 기묘하리만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데가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 스산하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배경 역시 80년대 또는 그 이전을 배경으로 해 다소 퇴락한 느낌도 든다.   

여기 한 여자 이이가 이제 막 자기 아버지에 의해 버림을 받으려고 한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어느 식당에서 아빠를 위해 노래를 불르며 행복한 마지막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왜 버림을 당해야 하는지에 관해선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이 아이는 한 의사와의 면담에서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말 역시 정확하지는 않다. 하긴,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는 부모의 사정이야 굳이 말 안해도 알만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기 아이를 버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영화는 이 버림 받은 아이의 심경을 고아원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것에 있다.  

서러워라, 버림 받는다는 것은! 보통의 성인도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실연을 당하면 슬픔과 아픔에 숨이 턱턱 막힐진데, 이제 세상에 태어난지 9년밖에 되지 않은 조그만 계집 아이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의 그 저항은 얼마만한 것일까?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  조그만 어깨에 지구 전체의 무게를  짊어진 무게와 같은 것이리라.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게 보는 나로 하여금 절절히 느껴지게 만드는 건, 확실히 주인공 진희 역을 맡은 김새론의 연기의 힘일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인정하는 몇 가지 심리적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처럼 사람이 누군가에게로 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심리적 몇 단계를 영화는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그 첫단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리라.  누구도 자신이 자신을 버리기 전까지 진짜 버림받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철저히 믿는 것이도 하고. 낯선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것도 언젠가 여기서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처럼 나는 비록 비천한 고아원에 맡겨졌지만 언젠가 다시 아빠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라는 믿음이 이 아이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외부 환경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너도 별 수 없는 고아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너희와 달라. 내 몸에 손데지 마!' 이렇게 외치며 현실을 인정하기를 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아빠(구원자)에 대한 믿음이 점점 힘을 잃어간다. 영화에서는 고아원에 와서 밥도 먹지 않고 버티던 주인공 진희가 할 수 없이 어두운 부엌으로 들어가 밥솥에 눌어 붙은 누룽지를 눈물과 함께 뜯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눈물 섞인 누룽지를 먹는다는 건 어떤 의밀까? 지금까지 먹지 않고 버틴 건 아빠에 대한 간절한 원망(願望)과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강한 저항이겠지만, 허기진 배를 누룽지로 채우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서 고아원 아이들과도 일정 정도 마음을 열고 사귀기 시작하며, 고아원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자질구레한 일들을 평범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겪게 된다. 이를테면 고아원의 맞언니 예신의 폴폴거리는 연애 감정과 실연에 대한 아픔도 지켜보고, 입양되어 가는 친구의 모습도 봐야했으며, 처음으로 사귄 숙희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여성의 생리도 보게 되며, 새의 죽음도 보게 된다. 이것은 또 어찌보면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 가는 진희의 내면을 에피소드식으로 보여주는 것도 같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한 가지 흐름만을 갖지 않듯, 어린 아이의 마음 역시 천갈래, 만갈래로 나뉠 수 있고, 흩어질 수 있다. 그렇게 잘 적응할 것만 같은 진희도 사실은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몸은 고아원 철창 대문 안에 있어도, 마음은 늘 사랑하는 아빠가 오지 않는다면 찾아라도 가겠다는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탈출도 해 보고, 시위도 하며, 원장에게 떼를 써 보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원하는 것처럼 탈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철창문이 열어 있다고 해서 맘대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이니다. 그때의 절망감은 처음의 저항과는 또 달라서 거친 반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선물로 들어 온 자기 몫의 인형을 발기발기 찢는 것도 부족해, 친구의 인형도 그렇게 망가뜨려 놨으니 말이다.   그것은 극도의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다.

자신은 너무 어려 고아원 철창을 나가 아버지를 찾을 수 없으니, 원장을 시켜 자신이 예전에 살던 집에 아버지가 여전히 살고 계신지, 살고 계신다면 자신을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한다. 원장은 할 수 없이 진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지만, 실제로 진희가 예전에 살았던 그 집을 갔다왔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단지 거기에 아버지가 살지 않으며, 이사 갔다는 말을 담담히 전한다. 그래야 또 진희가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할 테니.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아이는 땅을 미친 듯이 파기 시작한다. 정말 그 땅에 자신을 생매장이라도 할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죽기 위해 판 것이 아니다. 그속에 실제로 눕긴 했지만, 진희의 그 행위는  더 이상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기 위한, 나아가 더 이상 부질 없는 희망에 목숨 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또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던 건, 아이들 사이에 은밀히 행해져 온 화투패 놀이에서 다음 날의 운세를 점치는 행위를 경멸하는 것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진희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어찌보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도 뛰어넘게 되길 바랬던 고아원 철창 대문을, 누군가의 양녀가 됐을 때 가볍게 나갈 수 있는 것을 깨닫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양녀가 되기까지는 바로 되는 것은 아니였다.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진희의 방황과 불안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누군가의 양녀가 되고나서도 불행할건지, 행복할건지를 모르는 진희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엄밀히 얘기해서 인간 누구도 버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을 경험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묵직한 울림으로 전해온다.   

이 이야기는 감독의 자전적 영화라고 한다. 그러니까 감독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아이의 불안한 심리를 사실감있게 묘파한 수작이다. 

주인공 역을 맡은 김새론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김새론은 확실히 연기의 감각을 아는 아이인 것 같다. 가히 연기 천재라는 다코다 페닝을 능가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배우의 연기를 주목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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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6-17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스텔라님 글 많아서 좋아요. 이 영화를 보기에 제 마음이 너무 흘러넘칠듯 차 있어서 늘 패스,패스하곤 했는데 새론양이 흙덮은 스틸컷에는 헉하고 마음이 철렁해져요. 이제 봐도 될 것 같아요. 되게 좋다고 하던데 스텔라님 리뷰는 사실적이라 짐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꼭 볼게요.^^

stella.K 2011-06-17 11:04   좋아요 0 | URL
에효..매일 글을 쓴다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인지도 몰랐어요.
잘 쓰는 것도 아니면서...ㅜ
꼭 보세요. 감독이 나름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저는 보기 좋았어요. 독특하게 찍기도 했구요.^^

hnine 2011-06-17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보고 상당히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 애 이름이 진희였지 맞아, 이러면서 읽어내려 오다보니 그때 기억이 새롭네요.
제목을 '여행자'라고 붙인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특별한 느낌을 영화에 입힐 줄 안 감독은 도대체 누굴까 궁금해하면서 극장을 나왔었지요.

stella.K 2011-06-17 11:48   좋아요 0 | URL
진희가 입고 있는 옷에 눈이 많이 갔어요.
이 리뷰 쓰고 우연히 프레이야님 리뷰를 보다가
감독이 우리랑 생년이 같고, 의상을 전공했다고 하더군요.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의상이 복고적이면서도 현대미를
가지고 있잖아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진희를 위한, 진희에 의한, 진희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그 나머지의 톤을 거의
고루 분배를 했다고 볼 수가 있지요.
마치 화룡정점과 같은 영환거 같습니다.
hnine님의 서재 이미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