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느낌 있다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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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시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아버지가 계신 안방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방문이 닫혀 있음에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느낌, 호랑이 같은 동물이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기를 쓰는 느낌을......
-166쪽

운명을 믿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꿈을 꾸면 언젠가 그 꿈이 내 곁으로 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멀리서 삶을 바라보면 모든 삶의 과정이 마치 누군가의 시험, 또 은총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언젠가 영화를 찍으러 뉴욕으로 다시 오리라 다짐했을 때는 미처 몰랐다. 정말 내가 뉴욕에 영화를 찍으러 가게 될 줄은. 하지만 2006년 <두번째 사랑>을 찍으러 뉴욕에 가게 되었다. 열심히 꿈을 꾸었고 그래서 그 꿈이 내게 와준 것이다. -168쪽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려 하고, 이름을 얻으려 하고, 아름다워지려 하는 이유는 모두 사랑 때문이 아닐까. 돈이 많을수록, 이름을 날릴수록, 아름다울수록 더 멋진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도 결국에는 자신의 짝을 얻기 위한 단순한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면 그 목표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돈 버는 것, 이름을 얻는 것, 아름다워지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돈을 벌다보면 더 큰 욕심이 생기고 이름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욕심에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207~209쪽

나에게 사랑이란,

내 손가락이 저 사람의 손가락에 살짝 닿았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그 사람의 손을 꽉 잡아 놓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을 내 쪽으로 당겨서 깊숙하게 끌어안고 싶다......

이런 마음이다. 더 복잡하고 어렵게 설명할 이유가 없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몸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 그러니까 사랑은 가장 동물적인 것이다. 내게 이것보다 정확하고 솔직한 정의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랑의 감정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저토록 계산적으로 살 수 있을까. 요즘은 다들 건강을 위해 '오가닉 리이프'를 지향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품을 먹고 친환경적으로 만든 제푸을 몸에 걸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우습게도 사랑은 이와 정반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혀 '오가닉'하지 않은 삶이다.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 자연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210~212쪽

그러니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아마 평생 사랑다운 사랑도 해보지 못한 채 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잔뜩 병들어 있을 것이다. 다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 배고프 지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
진짜 사랑은 오가닉한 것이다. 몸과 마음을 열고 느끼는 것이다. 다른 외부 조건들을 잇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212~213쪽

우연히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올 때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다.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낮섦을 느끼는 것이다. 노력해도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초조함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 작은 오해로 크게 실망하고 멀어지는 순간을 견디는 것이 사랑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바로 진짜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은 쉽게 빠져드는 감정인 동시에 어렵게 쌓아가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 사랑이 향수처럼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붉은색 스프레이를 캔버스에 뿌려본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멀리 퍼질 것이라고 믿으면서......-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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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5-28 0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그림도 잘 그리던데 글까지 잘 쓰고. 팔방미남 인가봐요.
인용해주신 구절만 봐도 마음이 끌리는데요?

stella.K 2011-05-28 10: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사람 연기는 잘해서 싫지는 않은데 맡는 배역이 그래서
선뜻 좋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근데 이번에 책 읽으면서 정말 느낌이 좋은 남자란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사랑에 관한 부분에 대해 쓴 거 보고,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지?!
감탄했습니다.
사실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풍의 그림은 아니지만 정말 몰입해서
열심히 그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 거의 다 읽어가는데 아껴읽는 중입니다.
기회되시면 함 읽어 보세요. 좋은 느낌을 받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