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학교 - 고양이에게 배우는 마음공부
잇사이 쵸잔시 지음, 김현용 옮김, 이부현 감수 / 안티쿠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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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읽을 책이 산더미 쌓아놓고 이런 작고, 얉은 책이 눈에 들어올까? 모처에서 잘못 보낸 책이라 돌려보내던가, 받고도 시치미를 뚝 떼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 얉고도 작은 책을 읽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냥 넘어가나 싶어 결국 서평에 대한 양심적인 책무를 다하기로 했다. 

이책은 싸움에 관한 책이다. 싸움하면 얼핏 <손자병법>을 떠올리겠지만, 이런 책도 있었네! 하며 작은 탄성을 질러볼만도 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밑줄긋게 만드는 부분도 많았다.  한마디로, 작은 책의 위력을 톡톡히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대충 그런 것이다. 검술가 쇼켄의 집에 쥐를 퇴치할 고양이를 데려다 놔야겠는데, 다른 날쌔고, 카리스마 있는 고양이를 두고, 하필 살찌고, 늙은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고양이 모양은 그래도 범상치가 않다. 그 고양이는 병법을 아는 고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쇼켄은 그 고양이로부터 병법자의 마음을 전수 받게 되고 그것을 정리한 책이 바로 이책 <고양이 대학교>가 되겠다. 저자의, 늙은 고양이를 통해 병법자의 마음을 설명하게 한다는 발상이 기발하다. 그러면서, 육조단경이니, 노자니, 장자니 하는 동양철학의 온갖 진수들을 다 끌어왔다.  

내용을 보면 그런 말이 있다. 검술을 배우는 자는 먼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쓰지 말라고 한다. 그게 참 모순된 것 같지만 곱씹을만 하고, 제법 비장미까지 느껴진다. 왜 그럴까? 흔히 고양이와 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 늙은 고양이는 특징이 하나가 있다. 다른 여타의 고양이는 쥐를 잡지 못해 아웅다웅 하는데, 이 늙은 고양이는 쥐가 피해 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위엔 쥐가 한 마리도 없다. 쇼켄은 바로 이것을 보고 늙은 고양이에게 한 수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고양이들은 쥐를 잡으려하나 잡지 못하면서, 왜 이 늙은 고양이는 쥐 조차 피해가는가? 그래서 그 주위는 항상 평온하다. 쥐가 고양이를 두려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쥐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를 문다. 결국 힘을 쓰면 상대도 같은 힘을 쓴다는 것인데, 그래가지고는 이기는 싸움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지금까지 어떤 자세로 싸움에 임했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내가 무슨 싸움닭도 아니고. 하지만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불가피하게 싸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렸을 땐 육두문자를 누가 더 얼마나 치열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싸움의 우열과 성패가 좌우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철들고 나서는 그게 제일 낮은 수준에서의 싸움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상대가 어떻게 했는가를 증명하며 될수있으면 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구사하는 싸움의 방법이다. 뭐 그래서 대충 싸움을 잘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여전히 싸움은 내겐 익숙하지도 않으며 썩 유쾌하지도 않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괜찮은 싸움의 기술 하나쯤 읽혀두는 것도 호신을 위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이책은 상당히 통찰적이다.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결국 말하는 것은 한 가지다. 싸움의 가장 높은 경지는 무위가 되는 것이라는 것. 바람이면 바람과 하나가 되고, 물이면 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없다. 이것이 싸우는 자의 가장 높은 경지라는 것이다. 늙은 고양이는 바로 이것을 할 수 있었기에 쥐 조차도 그 주위를 피해갔던 것이다.  그럴 듯하긴 하다.  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건 나를 피해간다.  하지만 이 무위평온한 상태는 또 얼마나 유지하기가 힘든 것인가? 어떻게 미워하는 상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적이 나를 향해 공격해 오는데 피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이걸 너무나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를 가도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 아예 투명인간이려니 한단다. 말하자면 (개)무시한다는 말인데, 무위가 되는 것과 상대를 무시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이책 나름 좋긴한데 다 읽고나면, 그럼 뭐야, 싸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리송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싸움의 기술을 익히는데 처음부터 무위를 익히는 건 좀 재미없지 않을까? 다른 것을 알고 그것을 실험도 해 보고, 재미도 좀 보다가 싫증나면 그때가서 무위를 익혀도 되지 않을까? 물론 처음부터 싸우는데 힘 빼기 싫으면 바로 이 방법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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