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로이’

‘눈이 맞아서’사랑의 도피
어머니 설득으로 전쟁 나서
왕 용기에 감동 시신내줘
원정나선 그리스배 1000척

●일리아드

여신 도움으로 헬레네 빼앗아
어머니, 아킬레스 참전 말려
헥토르 시신 몸값주고 찾아가
트로이 인구 4000∼8000명



 

 

 

 

 

 

 

 

 

 

 

 

 

 

 

문학과 영화는 단짝일망정 일란성 쌍둥이는 아니다. 영화적 속성과 매력(각색·상상·압축·영상미)을 저버린 순도 100% 원작 필름은 있을 리 만무함에도, 영화 ‘트로이’는 “호메로스(영화 원작 ‘일리아드’ 저자)가 생존했다면 소송을 낼 만한 엉성한 개작(改作)”이란 비판을 받는다.



 

 

 

 

 

 

 

 

 

 

 

 

 

 

 

기원전 1250년경 발발한 ‘트로이 전쟁’, 기원전 750년쯤 구전(口傳)에 문학적 상상을 얹어 쓴 서사시 ‘일리아드’, 제작비 2억달러를 들인 2004년 할리우드 대작 ‘트로이’는 어떻게 맺어져 있을까? 역사·신화·고고학·문학이 뒤섞인 ‘트로이’의 실제와 허구는 무엇인가?

10년 전쟁에 대한 속기록


▲ 영화 트로이의 목마장면.
트로이 전쟁은 ‘장기(10년) 전쟁의 원조’로 기록됐지만, 영화는 단 며칠 사이 전투로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미케네 왕 아가멤논은 동생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우스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빼앗아가자 동맹군을 결성해 복수의 진격에 나선다. 연합군은 10년 전쟁 중 9년을 트로이성(城) 밖에 머물며 고전했는데, 장기전 병사에게 당연한 탈진과 권태는 영화에서 찾기 힘들다. 전쟁 내내 돌림병 때문에 희생자가 속출했던 사실도 영화 말미 흑사병 사망자들이 널브러져 있는 장면에나 잠깐 나온다. 원정 나선 그리스 배 1000척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가득 메우고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트로이 병사들이 성곽에 도열한 영화 장면은 장관이지만 이는 당시 트로이 도시 인구를 4000~8000명으로 추산하는 고고학자들 설명에 비춰볼 때 과장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이 전쟁의 씨앗?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원전.
영화는 신(神)을 버렸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을 인간 대 인간의 대결로 끌어내렸다. ‘일리아드’에선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드리는 선물’이란 문구가 적힌 황금사과를 향한 세 여신 헤라·아프로디테·아테나의 질투가 전쟁의 원인(遠因)이 된다. 판관을 맡은 파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건네게 되며 결국 여신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엔 신들의 자리가 없다. 파리스와 헬레네는 그냥 ‘눈이 맞아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반면 학자들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사랑·복수·명예의 전쟁’ 이면에, 아시아·유럽 양 대륙을 잇는 해상무역의 요지를 획득하려는 미케네 왕국의 ‘경제적 확장욕’이 트로이 전쟁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우상화된 아킬레스

제우스·헤라·아프로디테 같은 신(神)이 없는, ‘바다(지진) 신’ 포세이돈의 전공(戰功)에 대한 언급도 없는 스크린을, 분노에 찬 아킬레스가 주도한다. 영화 속 아킬레스는 애초에 참전을 망설이다가 모친 테티스의 설득을 받아들여 ‘영원한 명예’를 얻기 위해 장도에 오르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모정은 아들의 참전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징집을 피하려고 아들을 여장(女裝)하도록 했다가 시장에서 오디세우스의 꾀에 말려 남자임을 들키는 바람에 전투에 나서게 됐다고 기록한 그리스 비극작가들도 있다.

영화 속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적장(敵將) 아킬레스의 침소로 불쑥 찾아온다. 두건을 쓰고 변장을 했다지만 적진의 심장부에 그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을까. ‘일리아드’ 원전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프리아모스는 신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아킬레스를 방문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아킬레스는 왕의 용기에 감동해 헥토르의 시신을 내주는 데 반해, 일리아드에 의하면 프리아모스는 많은 몸값을 치른 뒤에야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일편단심 헬레네?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가 죽음과 파괴를 몰고 올 경국지색(傾國之色)인 건 맞지만, 파리스와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닌 모양이다. “전 저의 남편(메넬라오스)이 당신을 죽였기를 바랐죠. 다시 한 번 그와 정면 대결을 신청하는 건 어때요.” ‘일리아드’는 파리스를 향한 헬레네의 냉소와 혐오를 부각해, 부부간 정이 돈독했던 헥토르(파리스의 형) 커플과 대비시킨다. 영화에서 헬레네는 어쩔 수 없이 정략결혼을 했다가 뒤늦게 사랑에 눈 뜬 비련의 여인으로 끝까지 파리스에게 충실한 것으로 그려진다.

역사의 무대는 터키 북서부지만, 촬영은 런던·몰타·모로코·멕시코에서 진행됐다. 아킬레스 근육이 유일한 약점인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촬영 중 아킬레스건을 실제 다친 것은 아이러니다.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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