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엊그제, 나는 친구와 함께 두 번째로 부암동엘 갔었다. 

비록 처음 갔을 때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겨울이 보여주는 그곳과, 봄이 보여주는 그곳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좀 더 화사해졌다고나 할까? 같이 간 친구도, 서울에 이런 숨은 곳이 있는 줄 랐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바로 이것이 부암동을 가면 첫번째 느끼는 것이고, 두번째로 느끼는 건 프랑스의 어느 마을이 꼭 이렇지는 않을까? 하는 착각이다.  

마침 그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이쯤되면 상상을 더 확대 해, 프로방스와 부암동을 함께 생각해 본다. 말하자면, 부암동은 한국의 프로방스. 프로방스는 한국의 부암동쯤은 되지 않을까? 시쳇말로, 상상하는데 세금 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프랑스, 그것도 프로방스를 아직 한번도 가 보지 않은 나는 어찌보면 부암동에서 그곳을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은, 실제로 프로방스에 가 보면 더 많이 감탄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말처럼 들릴수도 있겠는데, 사실 사진이나 책만 보고 그곳엘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니와, 이 책이 굳이 단점이라면 단점은, 사진은 저리 예쁘고 낭만적인데 비해 저자의 글이 (때론 지나치리만큼) 차분하고 사색적여서 하는 말이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을 했지만, 우리나라의 숨막히게 돌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이 맞지 않아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 저자의 선택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며 공감한다. 아마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저자를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었을까? 프로방스의 풍광과 정취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상당 부분 고흐를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어쩌면 고흐를 잊지 못해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짐작도 해 보게 된다. 그만큼 프로방스 아를은 고흐가 살았던 동네고, 뒤에 가면 아예 <반 고흐의 '장소'들을 찾아서>란 쳅터를 따로 할애할 정도로, 저자는 반 고흐 애호가고, 또는 '고흐니스트'라 불러 줄만했다.  

책을 읽으면서, 고흐는 과연 그가 누구이길래 이토록 지식인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저자와 프로방스, 반 고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도 전염이라도 된듯 예전에 읽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 우울하고 을씨년스러운 반 고흐의 그림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고흐의 그림은 뭔가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한때는 우울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이 싫어 외면했던 그림을 나이 들어서야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것은 또 어쩌면 고흐의 그림 자체보단 그의 그림을 칭송해마지않는 사람들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글과 말을 통해 고흐를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하긴, 꼭 고흐가 아니어도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뭐 하나에는 정통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난 이 얘기를 들으면 이게 솔깃하고, 저 얘기를 들으면 저것이 솔깃한, 아직도 사춘기적 감수성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가 않다.  

저자는 프로방스가 시간이 정지된 곳 같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보통의 한국 사람이 정서라면 꽤 따분하고 심심한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글쎄... 사람 사는 것은 어디든 같지 않을까? 30대 때까지는 도시가 좋다가도 40이 넘어가면 그런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한 곳이 좋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내가 부암동에 매료된 것도  알고 보면 저자가 프로방스를 두고 얘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 때문인 것 같다. 재밌는 건, 저자가 자신의 일상을 써 놓은 대목이 있어 소개해 볼까 한다. 

미란이 8월1일 아침에 발목을 다친 지 벌써 6일째다. 요즘음 나의 일상생활은 일하는 주부의 처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침 8시경에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해 미란과 함께 먹고 난 다음 12시경까지 글을 쓰다가 다시 점심식사를 준비해서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 아를 시내의 유적과 박물관을 다니다가 (중략)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저녁식사를 준비해 먹고 치우고, ...... 텔레비전을 조금보다가 저녁 산책을 나갔다 들어온 다음,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살림을 하는 주부이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작가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집안일과 직장일이라는 이중의 노동에 시달리는 취업주부들의 처지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211p)  

뭐 저자가 아내가 발목을 다친 후 비로소 취업주부를 이해하게 됐다니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도 그것을 깨달았다면, 서울에서 취업주부를 이해하려면 이것의 두 배, 세 배는 더 해야 체험이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오히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참 목가적으로 산다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추구하고 싶은 삶이 이런 거 아닌가? 배우자가 다친 건 차치하고라도, 밥 먹고, 글 쓰고, 박물관 나들이나 산책 다녀오고, 다시 오붓하게 둘만의 저녁을 만들어 먹고 책 읽다 자는 것. 이 얘기가 프로방스니까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다.  

읽으면서 느꼈던 건, 선진국의 조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진국에 진입하려고 하는 나라는 그것에 진입하지 못해 휴식도 반납하고 안달복달하면서 산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산책로가 발달이 되어있다. 그 길을 산책하면서 많은 것들을 사색하고 힘을 키웠다. 우리도 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책이 참 지적이란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반 고흐는 물론이고, 까뮈와 페트라르카를 알게 되고, 크리스티앙 가이란 작가도 알게 된 건 의외의 수확이었다. 나는 이런 지적인 에세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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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4-20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나오자마자 보관함에 담아두고 있어요. 표지의 저 초록색은 정확하게 무슨 색이라고 부르는지 그것도 찾아본다고 하고 아직 못찾아보고 있네요.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프로방스와 그 반대의 한국, 두 곳을 동시에 좋아하기란 가능성이 참 희박할 것 같아요.
지적인 에세이를 좋아하시는군요 ^^

stella.K 2011-04-20 11:41   좋아요 0 | URL
전에 신영복 교수의 <더불어 숲>이란 여행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참 좋더라구요. 그책 생각이 났어요.
좋기도 그책이 더 좋았구요. 이책도 나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oren 2011-04-2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은근히 '완전한 휴식'을 꿈꾸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듯싶네요.
stella님의 글을 읽어보니 '부암동'도 궁금하고 프로방스에도 가보고 싶네요.

stella.K 2011-04-20 11:42   좋아요 0 | URL
ㅎㅎ 당장 가능성있는 것부터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부암동에 한번 가 보십시오.
제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