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이상으로 순혈을 고집하는 바람에 한국말을 오히려 빈혈에 걸리게 하는 국수주의자들이 많다. 말도 인간처럼 혼혈아를 낳게도 하고 때로는 귀화하여 시민권을 획득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외래어를 많이 쓰는 것도 병이지만 무조건 말의 변화와 개방성에 말뚝을 박으려 하는 결벽증도 병이다. "그것은 일본식 말이다"라고 꾸짖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기 자신이 쓴 무슨 무슨 식이라는 표현이 바로 일본의 '시기(式)'에서 온 일본 투의 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애용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말 역시 일본 사람들이 그나마 잘못 번역한 말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데모크라시democracy의 번역인데 잘 알다시피 '.....크라시'는 제도이지 주의ims가 아니다. 민주제라 해야 할 것을 개화기 일본 지식인들이 민주주의라고 하는 바람에 덩달아 우리까지 그 말을 그냥 쓰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에서 금과옥조로 내세우고 있는 주체사상, 그래서 한국의 학생들까지 주사파가 생겨난 그 주체사상이라는 말까지도 일본 말의 역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주체사상이라는 말 자체에 주체성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보통 익살맞은 모순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는 굳은 말이 되어버린 것을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이라하여 버리고 새 말을 만들어 쓰자는 말이 아니다. 말끝마다 왜색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처럼 신경질적인 언어 국수주의를 따르자면 한이 없다는 본보기로 하는 소리이다.

                                                                        .     .    .(중략)

그런데 예사로 넘어갈 말까지 트집 잡고 들어지는 언어 국수주의자들이 웬일인지 국민학교라는 왜색 중의 왜색 말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고 있으니 놀랍다. 국민학교라는 말은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 교육을 상징하는 '폴크스 슐레'를 그대로 일본 말로 옮긴 것이다. '폴크스 슐레(국민학교)는 '폴크스바겐(국민차)'과 같은 전체주의적 이념의 산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한쪽 공장에서는 규격화한 자동차 폴크스바겐이, 또 한쪽 공장(학교)에서는 규격화한 폴크스 슐레의 아이들이 다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인간의 개성과 다양성을 철저하게 배제한, 끔찍한 나치의 획일 사회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동맹국인 나치의 교육 정책을 부럽게 생각하여 그대로 직수입하고 그 명칭도 그대로 따다 붙여놓은 것이 바로 그 국민학교라는 명칭인 것이다. 그들 연호로 소화 16년에 국민학교령이라는 것이 일본에서 내려졌는데, 그것은 바로 전체주의적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 취해진 정책이었다. 능력의 차라고 하는 것은 상급학교에 가는 단계에서 나누면 되므로 소학교, 중학교의 단계에서는 모두 같은 내용을 공부해야 된다는 것이다. 즉 각 학교에서 모두 다 같은 내용으로 교육을 해서 같은 사상을 불어넣자고 주장하는 교육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은 나라의 손 안에 들어와 모든 학교의 교육 내용을 동일하게 규격화할 수 있고 나라에서 허가하지 않은 학교는 인정하지 않게 된다. 물론 국민학교의 신설도 제한하게 된다. 그 결과로 학교 교육의 내용과 수준이 똑같기 때문에 굳이 학교를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국민학교는 자연히 거주 지역에서 가장 편리한 곳으로 보내는 통학구 제도가 생겨나게 된다.

이름만이 아니다. 통학 구역제 실시까지 똑같다. 사립 학교의 특성까지 죽인 것도 똑같다. 일제에서 해방이 되고 자유 민주주의를 국시로 삼고 있으며 미국식 민주 교유글 본받았다고 하면서도 국민학교는 황국신민의 그 국민학교와 이름도 제도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일본도 민주화하자마자 제일 먼저 버린 것이 국민학교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일본 요리 이름인 오뎅까지도 꼬치라고 고쳐놓으면서도 막상 나치와 일본의 유물인 '국민학교(폴크스 슐레)'라는 말은 마르고 닳도록 지켜가고 있는 것일까.

이념어라는 시각이 아니더라도 중. 대학교라는 명칭이 있으면 당연히 언어 체계로 보아서도 소학교라고 해야 마땅하다. '소 . 중 . 대'이지 '국 . 중 . 대'가 어디 있는가. 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의 기보늘 가르치는 학교 명칭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남기고 간 낡은 부대라면 그 안에 어떻게 새 교육을 담을 수 있겠는가. ... ...(중략) 여러 사람이 다니면 길이 나듯이 틀린 말도 자꾸 쓰면 우리말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가치나 이념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공공 기관의 명칭이나 교육 언어는 그 뿌리를 제대로 찾아주어야 정신도 변한다. .....(중략)

어린애들을 이렇게 획일하하여 공장에서 국민차 뽑아내듯 뽑아내는 국민학교에서 과연 미래의 개성 있는 한국인들, 국제인들이 길러 낼 수 있을런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일리치 같은 학자는 우리 눈으로는 지나치게 자유방임하는 듯한 미국의 개성이 넘쳐나는 학교 교육 제도를 두고서도 야만한 획일주의라며 탈학교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판인데 우리 국민학교를 보면 무엇이라고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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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와 같은 글들로 인해 1996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글은 1993년에 씌어진 것이고, 현 시대에 맞게 다른 부분의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꾸었습니다.

                                                                                                    (176p~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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