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氣學으로 말한다!
철학자 4인 '기학의 모험' 1부 펴내


▲ 김교빈 교수
그들은 각기 나름의 생각을 품고 있다. 같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단 하나의 합의’를 꿈꾸지 않는다. 그런 합의는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출구가 막혀버린 우리 철학계를 위한 작은 통로라도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서다.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김교빈 교수(호서대·51), 서강대 교수를 내던지고 재야의 길을 걸으며 활발한 철학저술 활동을 펴고 있는 이정우(45) 박사, 김교빈 교수와 함께 쓴 ‘동양철학에세이’를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린 이현구(47) 박사 그리고 막내 격인 노자철학 전공자 김시천(37) 박사. 이들 4명의 소장 철학자들이 1년 반 동안의 탐색을 모아 ‘기학의 모험’(들녘)을 펴냈다.

 


▲ 이정우 박사
기학(氣學)은, 기(氣)철학도 아니고 기론(氣論)도 아닌, 조선후기 동서양사상의 통합을 꿈꿨던 혜강 최한기(1803~1877)의 용어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우리 고유의 개념이다. 김시천 박사는 “모든 것을 기로 설명하겠다는 무모한 시도를 경계한다”고 했다. 제목에 ‘모험’이라고 붙인 데는 그만큼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정우 박사는 “기 자체에 대한 탐구가 이번 기획의 목적이지만 실은 기학을 통해 한국적인 사유 특징들을 잡아내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최한기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목표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기(氣)란 말은 우리 일상에서도 숱하게 쓰이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그만큼 어려운 용어이기도 하다. 대기(大氣), 기운(氣運), 감기(感氣), 영기(靈氣), 기체(氣體), 기세(氣勢)란 말에서 기는 모두 조금씩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만물을 이루는 실질(實質)’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통한다. 김시천 박사는 “과학에 맞서거나 과학을 대체하겠다는 시도보다는 미학이나 예술론 그리고 문화론에서 동양이나 우리 고유의 이론체계를 정립하는 데 기학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이현구 박사
이 책에서 김교빈 교수는 기라는 개념의 역사를 정리했고, 이정우 박사는 서양철학과 기의 개념을 비교했다. 최한기의 기학을 이현구 박사가 현대적으로 해석했고 김시천 박사는 기학의 다양한 응용가능성들을 점검한다.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조동일 교수나 도올 김용옥씨 정도가 기철학을 자신들의 방법론이라고 밝혔고, 한의학 등에서 기와 한의학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작업이 일부 있었지만 기 혹은 기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한 시도는 이번에 나온 ‘기학의 모험’이 첫머리에 속한다. 이번 작업에서도 저자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기를 단순히 정신이나 물질 어느 하나로 보려는 서양철학적인 시각은 곤란하며 오히려 양자를 통합하는 개념”이라는 데는 일정한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또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면 기의 개념으로부터 길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영역은 무궁무진하다는 데 참여자들의 의견이 모인 것도 의미 있는 성과이다.


 


▲ 김시천 박사

‘기학의 모험’은 3부작으로 기획됐다. 이번에 나온 것은 1부. 6월 말이면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서울대)를 비롯한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해 문학 음악 회화 서예 음식 등 개별분야에서 기학의 전개양상을 살피는 2부가 나올 예정이다. 3부에서는 한의학, 천문학 등 기학이 본격적으로 특장을 발휘해온 과학분야에서 기학의 가능성을 찾아온 시도들을 소개한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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