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노예… 그들의 정체성을 찾는다
솔로몬의 노래/토니 모리슨지음/김선형 옮김/들녘

▲ 솔로몬의 노래
노스캐롤라이나 머시(Mercy)에 사는 흑인 부부의 이야기가 도입부다. 남편 메이컨 데드는 부동산 임대업자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사업수완을 갖고 있다. 아내 루스 포스터는 딸 둘을 낳고, 결혼 15년 만에 막내아들 밀크맨을 낳았다. 밀크맨(Milkman)은 오랫동안 엄마 젖을 빨아먹었다고 해서 동네 건달이 붙인 별명이다.

당시 데드 집안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눈을 가리고 성경에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이름을 무조건 선택했다. 둘째 딸의 이름인 퍼스트 코린시언즈(고린도전서)도 그렇게 지었다. 메이컨 데드의 누이동생이 파일러트(빌라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도 같다. 파일러트는 포도주 밀주로 근근이 삶을 꾸려나간다.

시간적 배경은 1930년대로부터 시작한다. 그 도시에서 유일무이하던 흑인 의사가 살았던 거리를 ‘닥터 스트리트’라고 불렀으나, 시 의회가 어떤 경우에도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못박자 그들은 그 거리를 ‘낫 닥터 스트리트’(Not Doctor Street·닥터 스트리트가 아닌 거리)라고 불렀다. 그런 시대였다. 아직도 완강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유색인들의 처지가 그랬다. 거리 북쪽 끝에 있는 자선병원을 ‘노 머시 종합병원’(No Mercy Hospital·자비가 없는 병원)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때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흑인 임신부가 병원 계단이 아닌 병동에서 출산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임신부가 루스 포스터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유일무이하던 흑인 의사’였다.

이 작품은 미국의 흑인 여성소설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1977년에 발표한 장편으로 원제는 ‘Song of Solomon’이다. 궁극적으로는 메이컨 데드 3세(이 소설에서 ‘밀크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청년)라는 인물을 통해 흑인의 정체성 회복 스토리를 일종의 성장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담아내고 있다. 과거 노예로 생활했던 조상들의 기억을 되찾는 방식이다.


▲ 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진정한 흑인문학을 세우는 것을 문학적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199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리슨에게는 ‘아주 푸른 눈’(The Bluest Eye·1970), ‘슐라’(Sula·1974)에 이은 세 번째 장편이었다. 모리슨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흑인 문제, 특히 흑인 여성들의 삶과 고통을 다루고 있다. 1930년대 초 경제 대공황 당시 미국 흑인들의 비참했던 상황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메이컨 데드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미 상당한 재산가가 돼 있었다. 메이컨은 누이동생 파일러트가 남편도 없이 딸(레바)을 낳았고, 그 딸 역시 남편도 없이 딸(헤이가)을 낳았다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남매의 정을 끊고 왕래가 없이 살아간다. 누이동생은 어릴 때부터 솔잎 씹기를 좋아했고, 숲 냄새가 났다. 소설에서 파일러트는 마치 조연처럼 등장하고 있으나 조카이자 소설 속 주인공인 밀크맨을 자아인식으로 이끈 뒤 그를 대신해서 죽는 역할을 맡고 있다.

모리슨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흑인문학’의 창조를 필생의 작가적 소명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흑인들의 구전 민담과 신화가 끊임없이 텍스트에 들어온다. 노래, 이야기, 속담, 격언, 농담같이 다양한 형태를 띤다.

백인들의 편견과 박해 속에서 흑인들은 밀주업자, 고리대금업자, 암살단원, 도박꾼, 알코올 중독자, 창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현실 속에 신(新)중산층이었던 주인공 밀크맨은 ‘기만적인 안락’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가시밭 여정을 택한다. 이것 역시 아프리카로 날아간 선대 남자에 관한 구전 신화가 중심틀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출간되던 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받았다. 90년대 후반 오프라 윈프리 북 클럽에 소개되면서 다시 한번 서점가에서 화제가 됐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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