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마다 서정적 인간애 가득
투쟁당시 尹의사 심경도 비쳐



▲ 1932년 거사 직후 일본군 헌병대에 처포됐을 당시의 윤봉길 의사. 검거보고서에 붙어있던 사진이다. / 조선일보DB사진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일왕 생일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 의거가 29일로 72주년을 맞는다. 윤 의사가 의거 이틀 전인 1932년 4월 27일 의거 장소를 사전답사하고 지은 한글시 ‘훙커우 공원을 답청(踏靑)하며’는 그 같은 대사를 앞둔 스물네살 청년의 놀랍도록 침착한 모습에 더해 서정이 가득하다.

“처처(凄凄)한 방초(芳草)여/ 명년에 춘색(春色)이 이르거든 왕손(王孫)으로 더불어 같이 오세// 청청(靑靑)한 방초여/ 명년에 춘색이 이르거든 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다정한 방초여/ 금년 4월 29일에/ 방포일성(放砲一聲)으로 맹세하세.”

서정 시인으로서의 윤 의사의 면모를 드러내는 ‘시인 윤봉길과 지인(知人)의 서정시 340수’(역사공간)가 의거 기념일을 맞아 출간된다. 보물 568호로 지정돼 충남 예산의 윤 의사 생가인 충의사에 전시 중인 시문집 다섯 편 중 ‘명추(鳴椎)’ ‘임추(壬椎)’ ‘옥타(玉唾)’ ‘한시집(漢詩集)’에 수록된 한문 시들을 처음 우리 말로 번역한 책이다.

 

“어진 사람 덕 베풀어 길이 향년을 누리는데/ 감미로운 맛 마음 기르도록 옥연(玉延)을 바치네/ 보수(불교에서 말하는 칠보의 나무)라 바람 따뜻한 절에서 새가 머금듯/ 방년이라 물 맑은 연못에서 거북이 늙어가듯/ 백발 육순 오래지 않아 이르는데/ 노란 국화 구월 보름에 달 둥글도다….” 한시 ‘강혜정의 장수한 날에 공경히 바치며, 우의(禹儀·윤 의사의 본명) 쓰다’ 중의 일부다. 스승 성주록(成周錄)의 벗인 혜정 강치헌(姜致憲)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시로, 20대 초반의 청년으로서는 매우 성숙하고 노련한 표현과 인생과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역자 진영미씨는 “당초 수록된 시 모두가 윤 의사의 작품이라고 알려졌지만 생존연대가 맞지 않고 필체가 다른 작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주록·강치헌 등이 지은 시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윤 의사의 인격 형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국민대 국사학과 장석흥 교수는 “많은 시들이 서정적인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윤 의사가 펼친 의열투쟁의 본질이 테러리즘이 아닌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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