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상 어딘가를 쑤시고, 파고 돌아다니는 성격이 못된다. 더구나 혼자 다니는 건 더더욱.  그렇다고 뜻이 맞아 같이 갈만한 사람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강연회 참석하는 건 강건너 불구경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젠 좀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가급적 내가 관심 가는 강연회는 쫒아 다녀봐야할 것 같다.  그것은 무엇보다 남의 생각을 훔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그 분야의 최고의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훔쳐서 뭘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도 올해 몇번의 강연회를 다녀왔다. 그에 대한 짧은 인상기를 적어본다. 

지난 9월 무렵, 강남의 모 교회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서 예스 24를 통해 이어령 교수의 초청 강연을 다녀왔다. 나로선 이어령 교수의 저작은 굉장히 오랜만인데 책도 책이지만, 그 분의 강연은 상당히 인상 깊다.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여전히 총기는 젊은이의 그것 못지 않게 예리하고, 깊다. 강연을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이 분은 그 안에 우주를 품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사실 신앙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분의 뛰어난 해석과 언변으로 그것을 증명하고 계신데, 가히 탁월하다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한때 안티크리스찬이었다. 비기독교인으로서 당대 기독교 석학들의 모든 논리를 다 받아친 분이기도 했다. 그런 분이 기독교인이 되어서 그것을 외려 증명해 내는데는 실제적은 부침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따님 때문이었다. 역시 신앙은 관념이 아니며 몸으로 부딪혀 하나님 앞에서 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분은 단순한 학자를 넘어서 가히 사상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어령 교수의 강연회에 앞서, 지난 5월 예스 24 박범신 작가의 <은교> 강연회를 다녀왔다.  그때가 나로선 박범신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감전되는 것 같았고, 나중엔 울기까지 했다. 그리고 왜 이 분을 영원한 청년 작가라고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분의 겉모습은 60대 노교수다. 하지만 그분이 가지고 계신 폭발할 것만 같은 열정은 젊은이 바로 그것이었다. 실제로 그분은 자신을 표현하기를 '내 안에 늙지 않은 짐승이 살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분은 그날 모인  그날 모인 청중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아는 분 같았다. 얼마나 그 자리가 신나고 즐거웠던지 시간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정말 잘 놀다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홍신 작가는 박범신 작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청중들과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를 안다는 점에서 박범신 작가만큼이나 그 느낌이 좋았다.  물론 그의 풍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단아하고 여성적인 섬세함을 느끼게도 하는데, 그가 얼마나 외유내강의 사람인지는 그의 정치활동이나 매스컴에서 이미 알려졌으니 따로 말하지는 않겠다.   그의 강연회는 동서식품이 주최했고, 9월에 광화문의 어느 카페에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작가의 어느 작품인지 모르겠는데 불편한 몸으로 작가의 작품을 필사해 강연회에 참석한 어느 열혈 독자가 생각이 났다. 지금은 건강이 어떤지 모르겠다. 건강해야 할 텐데...     
  

12월초에 작가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얼마나 명쾌하고 활기찬 강연회였는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강연회 전에 한 분의 인문학자와 한 분의 소설가의 강연회를 다녀는데, 그 두 사람은 실제로 자신이 인문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라고 그것은 그다지 권할만한 것도, 권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말해서 몹시 혼란스러웠다. 매스컴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인문학을 선택한 사람의 몫처럼 얘기했다. 과연 그게 맞는 말인가? 그런 식으로 자신이 인문학자로서 또는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 것은 아닌가? 의문스러웠다.  그런 중에 만난 이지성 작가는 확실히 반전의 저자였다.    


그는 인문고전 교육을 강조했고, 역사적으로 인문고전이 융성했던 때와 그렇지 못한 때, 인문고전 교육을 하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에 대해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명확하게 비교하며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영 리더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며 중국 원정도 다녀 온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의 아이들을 여전히 교실 책상에 앉히고 주입식 교육만 시켜서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난감한 느낌이었다. 사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기도 했다는데, 그의 학교 학생들에게 인문고전 교육을 가르치려고 했을 때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그는 인문고전은 날 것 그대로를 공부하라고 한다.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워밍업으로 다른 책을 본다던지, 해석본을 읽으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옛날에 공부를 막 시작한 학동(學童)들이 언제 천자문이니, 소학, 논어, 맹자를 주해본 놓고 공부했냐며 무조건 외우고 썼던 것처럼 그렇게 덤벼 보라고 조언한다.   
 

특히 저자는 상당히 잘 생겼다. 얼핏 개그맨 김국진을 연상하게도 되는데, 그쯤되면 잘 생긴 김국진이라고나 할까?ㅋ 아무튼 유익한 시간이었다.  
  

올해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던 강연회다. 

사실 김훈 선생의 강연회는 3년 전인가? 강남 교보에서 했을 때 참석한 바가 있어 낮설지는 않았다. 선생은 강연회를 하면 혼자 서지 않는다.  꼭 사회자로 문학평론가 한 분과 함께 앉아서 한다. 3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이분을 뵈면 참 만감이 교차한다. 눈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 그러면서 여간해서는 말을 섞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말을 아끼고, 말투 또한 어눌하다.  그래서 일까? 선생은 여간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대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것이 있다.  또한, 사람이 글을 잘 쓰면 언변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도 하는데, 매번 그렇게 문학평론가와 함께 강단에 오르는 것을 보면 그것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도 하다.  그래도 선생에게 무한 존경과 애정을 보내는 열혈 독자들이 있어 강연회는 나름 후끈했다.  말을 아끼는 선생의 성정처럼 선생에겐 처음부터 강연회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따로 준비된 강연 내용없이 바로 독자와 질의응답식으로 그 한 시간을 마쳤다.  

그래도 강연회를 마치고 사인회 때 선생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사인을 하셨다. 나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불려졌을 때 나의 선입견은 말 그대로 선입견은 아닐까? 그와 반대되는 묘한 기대를 잠깐 갖게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선생의 나이가 60대 초반이신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이 좋다고 하신 말씀이다. 인생을 다시 살아도 실수가 많고 방황이 많았던 젊은 시절로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은 젊어지지 못해 또는 자신의 젊음이 지나가고 있음을 아쉬워 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셔서 묘한 위로를 받는다. 그렇지. 나이 든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닌데 왜들 겁을 내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며칠 안 있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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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은 올해 강연회 같은데 많이 가보셨군요. 저는 올해 처음으로
딱 한 번 강연회 가봤거든요.^^;; 실제로 눈 앞에서 책의 저자를 만나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페이퍼를 읽으면서
스텔라님이 참석하신 <리딩으로 리딩하라> 강연회에 가보지 못한게 아쉽기도 하네요.
하지만, 스텔라님의 페이퍼를 읽고나니 실제로 강연회에 갔다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게 힘들지만, 시간만 된다면 내년에도 강연회 같은 곳에
많이 참석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0-12-27 10:34   좋아요 0 | URL
그게 좀 안타까워요. 강연회가 서울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게.
이지성 작가 여기 저기서 사인회다 강연회다 바쁘게 지내는 것 같던데
지방은 못 가는가 봅니다. 아쉽죠. 가서 시루스님 만나면 좋을텐데...ㅋ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힘을 얻나 봅니다.
저도 읽고 싶은데 여간해서 짬이 없네요.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시루스님도 한 번 도전을...!^^

saint236 2010-12-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강연회를 다녀오셨군요. 전 애들때문에 꼼짝도. 굳이 가려면 갈 수 있겠지만 혼자서 연년생을 키우는 아내 눈치를 보느라...

stella.K 2010-12-27 10:35   좋아요 0 | URL
아기 키우는 게 더 보람되고 좋은 일이어요. 세인트님.
아이가 제 앞가림 하는 정도되면 님도 슬슬 다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