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영화는 도덕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어떤 영화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버젓이 썩소를 날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것이 현실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이란 말인가? 그래도 그건 영화려니하고 보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뭐란 말인가? 사실 도덕의 잣대로 보지 않는 것이 영화라면, 모든 영화는 마음을 비우고 봐야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킬링타임용 영화라면 모를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주, '이거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가능하냔 말이다.
아무리 능력있고, 세련된 직업을 가졌으며, 남다른 가치와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남편을 두고 또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지금의 남편이 싫어져서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을 하는 거라면 이해를 할 수가 있다. 또 가끔, 이혼할 자신이 없으니까 바람을 피우거나, 배우자 몰래 동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결혼을 또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뭐 그냥 우스개 소리로, "거 누군지 참 남자 복도 많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제 3자니까 그렇지, 이것을 선듯 찬성할 배우자는 없다. 이것에 대해 이 영화의 여주인공 주인아(손예진 분)는 당당하게 맞선다. "내가 뭐 하늘의 별을 따 달래? 달을 따 달래? 그저 남편 하나 더 갖겠다는 것 뿐인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워?" 꼭 사춘기 여자아이가 스마트폰 사 달라고 아버지에게 징징거리는 것 같다. 결혼이 그렇게 어느 대리점에서 스마트폰 사는 거처럼 쉬운 거라면 누군들 못할까? 이쯤되면 좀 정신에 문제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징징거리면 아무리 쇠고집이어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들어주고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뭐 잘못했나? 자신을 의심하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영화는 이렇게 여주인공의 도발적이고 엉뚱한 언동에 점점 갈등하고, 타협하고, 그러다가도 뭔지모를 미로속을 헤메는 것 같은 남자주인공 노덕훈(김주혁 분)의 심리를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통속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혼도 하지 못하면서 아내의 새로운 결혼을 지켜 봐야하는 덕훈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짐작이 간다. 그건 단순히 질투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결혼의 순결성에 대한 도전이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덕훈에겐 세상을 넓게 보는 시야가 열리는 것이기도 하다. 원래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경험은 좋은 것에서 얻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은 쓰디 쓴 경험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자신은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의 바람기는 참아내지 못하는 친구의 푸념은 자신이 느끼는 이 황당한 상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가 잘못해서 아내가 바람이 난 것을 누굴 나무라냐며 용서해 주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영화는 이렇게 기존의 결혼에 대한 도덕 관념 내지는 사람들의 인식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한다. 또한 아내가 그렇게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며느리 노릇을 완벽 잘하는 것을 보면서, 덕훈은 어머니에게 묻기도 한다. 아버지랑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의외로 돌아오는 답변은 간단하다. 악착같이 살았다고. 누구 좋으라고 이혼하냐며. 그게 결국 결혼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혼하면 지는 것이다.
사실 덕훈도 덕훈이지만 주인아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두 집 살림하는 것이 영화에서처럼 쉬운 일인가? 지구상에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가 유지되는 종족은 극히 드물다. 영화속 인아는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통의 능력이 아니면 두 시어른의 눈을 완벽히 속여 가면서 두 집 살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여자가!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현재의 배우자와 이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한 가지만 잘할 수 있지 두 가지 이상을 잘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언제나 가정을 잘하는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예로부터 두 집 살림은 남자가 잘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알고보면 영역 표시하기를 좋아하고, 사냥을 좋아하는 수컷의 본능일뿐 문화적으로 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역할은 주인아처럼 여자가 더 잘할지도 모른다. 여자의 뇌는 멀티 플레이를 잘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남자는 그럴 수 있어도 여자는 그럴 수 없다는 건 사회적 인습이 그렇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도덕이란 건 남자들에게 유리한 인습을 둔갑시킨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화속 덕훈은 그 말도 안되는 결혼 생활을 꾸역꾸역 해 나가고 있었고, 한 여자를 두고 두 남편이 공유할 수도 있다는 걸 새롭게 인식해 갈 무렵, 인아는 아기를 낳고 이들의 결혼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는, 그 아이가 누구의 핏줄이냐는 것이다. 덕훈 자신의 것이냐, 아니면 아내의 남편의 것이냐. 즉 핏줄의 문제. 현대에 있어서 일부일처제의 결혼이 유지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핏줄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씨냐는 것은 오랜 가부장제를 관통해 온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에 TV를 통해 소개된 아프리카 원시 부족인 '조에족'이 생각이 났다. 그 부족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가 허용된 사회인데, 특별히 일처다부제인 경우 여자가 낳은 아이가 정확히 누구의 핏줄인지를 모른다고 한다. 단지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남편들이 공동으로 육아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래야 그 부족은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종족 보존의 나름의 합리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도 보면,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나고 병원에 급히 데려가 봐야하는 상황이 생기고 만다. 하지만 하필 덕훈은 다리를 다쳐 병원에 데려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아내의 남편이 그야말로 바람 같이 나타나 아기를 안고 병원엘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보면서 아이의 건강뿐만 아니라 이렇게 범죄가 많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아이를 지켜줄 존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핏줄을 보존하는데 유리하면 유리했지 결코 불리할 것은 없어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단지 그 아이의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것뿐이지.
이렇게 이 영화는 기존의 결혼을 헤집어 놓는다. 무겁지 않고 상큼하게. 그리고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란 이 짜증도 알고보면 그동안 내가 영화를 얼마나 도덕적 관념과 기존의 인식의 틀을 가지고 볼려고 했는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미래 사회에 결혼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초반의 인아의 덕훈에 대한 요구는 얼마나 황당한가? 중혼이라니? 하지만 일부일처의 결혼제도에서 음성적으로 파생되는 결혼의 모순과 상처를 생각할 때 차라리 인아의 요구는 오히려 정당성을 얻을만 하다. 앞으로 이런 결혼 형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벌써 부성을 거부하고 모성에 의한 자녀 양육의 형태나 동성부부간의 자녀 양육의 형태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는 결혼의 새로운 논리를 펴고자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결혼에서 여자가 얼마나 상처 받을 수 있는지를 남자에게 고스란히 덮어 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한 남자가 조강지처를 두고 딴 여자를 얻는 경우 그 여자들은 형님, 아우의 존칭을 나눠 갖는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는 고스란히 두 남자의 몫이 됐다. 그것에 대해 덕훈은 얼마나 낮간지러워 하던지. 웃긴다. 상대를 이해하는데 역시사지의 논리만큼 좋은 것도 없으리라. 그러면서 동시에 영화는 결혼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위로까지 해 주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대사가 좋은데, 엔딩 때 김주혁이 나레이션으로 읊조리는 대사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미운 사람이 사라진다고 하여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 주는 환상을 가지고 결혼하지만, 그렇게 결혼은 핑크빛 사랑 보단 수없이 반복하는 애증속에서 미워하지 않는 방법 아니 미움을 끌어 안는 법을 깨달아 나가는 과정은 아닐까? 결혼은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라지만 그건 확실히 결혼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싸우더라도 혼자인 것 보단 같이가 나은 법이니까.
감독의 세련된 연출과 완급 조절 능력이 좋은 것 같다. 덕훈 역의 김주혁이 왠지 차갑고 묵직한 이미지 때문에 찌질한 역이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 의외로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는 생각이 든다. 여우 같은 이미지와 청아한 이미지를 함께 갖춘 손예진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조금 야하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