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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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내가 이 책을 읽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나 자신 그럴수 있었는지 웃음이 나온다). 처음엔 이것을 책으로 읽을 생각은 그리 많지 않았다. TV 드라마로 나오는데 굳이 이 작품을 책으로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사실, 책을 쓴 작가에게나 출판에 관련된 분들은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다시피 이 작품은 드라마가 있기 전에 먼저 책으로 나왔고, 읽어본 독자들은 드라마화 될  것을 예상했거나, 리뷰를 통해 드라마로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독자들의 예상(또는 희망사항)은 적중했고, 드라마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방영되고 있다(다음 주면 아쉬운 종영이지만).  덕분에 책은 더더욱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앞서 말했던 '억울하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느낌이다. 그건 여전히 책이 드라마에 엎혀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책이 더 유명해져서 드라마화한 거지만 결과적으로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한 관행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책(또는 작가)의 입장에선 억울하고 아쉽다고 할 밖에. 

책과 드라마가 다른점   

아무리 책이 좋아도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그것 때문에 책을 더 볼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드라마로 나오면 독서에 대한 욕구는 슬그머니 꺽이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편이다. 그만큼 문자가 영상 이미지를 쫓아가지 못한다. 물론 이미지가 인간의 상상력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21세기는 영상테크놀로지 시대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 졌다. 분명 영상테크놀로지도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를들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조선의 저잣거리, 반궁, 성균관 내부, 위폐가 모셔졌다는 사당, 복식 등은 전문가가 아니면 그것을 재현에 낼 수 없고, 따라서 우리 일반인으로선 상상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영상만을 의지할 수는 없다. 반드시 영상이 추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황금시간에 배치된만큼 영상 등급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래서 책에서 나오는 질펀하고도 농도 짙은 성적 농담 같은 것은 드라마에선 방영불가다. 당장 "나 구용하다."라고 했던 그의 호 '여림'의 뜻이 책과 드라마에서 얼마나 다르게 나오는지 아는 사람은 알지 않는가?ㅎ 이걸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가 무슨 경을 칠지 안 봐도 비디오다. 19금이라면 가능하지만.  그러니까 한마디로 드라마는 인물이 갖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미스테리한 면을 부각시켰고, 동시에 없어서는 안될 무술을 뽐내는 쪽이었다면, 책은 인간의 심리와 역사적 배경에 촛점을 맞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보자면 드라마가 훨씬 인물의 생생함과 박진감을 높혔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정조와 정약용을 살렸다는 점은, 그들이 실제로 그랬을런지, 안 그랬을지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어차피 역사나 전기물이 아니라 역사를 차용한 드라마니까. 그냥 그 인물이 갖는 아우라를 살려 상상력을 극대화했다는 측면에선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장르문학? 그게 뭔데? 

하지만 난 이 '정은궐'이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작가 프로필을 보면 과거에 그가 썼던 작품 몇 개와 그의 존재를 각인시켜준 본 작품(그리고 규장각 각신의 나날들)외엔 그 어떠한 정보도 알 수가 없다. 하다못해 그가 남잔지, 여잔지도 불분명하다. 하나 아는 것이 있다면, 처음 작가가 정은궐이란 이름이 아닌 본명으로 보이는 이름을 썼다가 필명을 그렇게 정한 것으로 안다.  이건 작가 나름의 연막작전은 아닌가 싶은데, 나 개인적으론 이런 취향은 그다지 좋은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작가가 너무 나대도 그렇긴 하지만, 너무 신비주의 작전을 쓰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한 가지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B급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이 B급이면, 작가 역시도 B급 작가라는 소린데, 과연 그것에 대해서 정작 작가는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허리우드 영화 감독들 중엔 스스로를 B급으로 칭하는 사람도 많다. 하긴, 어설픈 A 보단 확실한(또는 고품격) B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B급이라면, A에서 보여지는 작품성이나 화려한 수사없지만, 통속적이고, 마이너적 감성을 뜻하지 않는가? 어설픈 작품성과 어설픈 수사로 치장하느니, 확실한 B가 A를 눌러버리는 그런 구도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작품에 B를 부여하느냐는 말이지. 

이만한 작품을 구사하려면 시대를 관통하는 나름의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드라마야 어쩔 수 없어서 특정 인물을 부각시켰다지만(화려해야 하니까), 책에선 잘금 4인방 외 어떤 인물도 크게 부각되는 인물은 없었다. 하다못해 정조도 정약용도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왜 , 이제까지 역사 소설은 그렇게 잘 난 사람이 나와야 하는 건데? 이렇게 역사적인 배경이나 맥락을 유지하면서 허구의 인물이 이끌어 가는 역사물이 나와주면 안 되는 건가?    

그리고 설혹 나왔다 하더라도 '장르 문학'에 국한시켜 폄한다. 반드시 소설은 유명한 필력있는 작가가 써야하며, 문체가 좋아야 하고, 그것이 역사 소설일 경우엔 역사적으로 인정 받은 인물을 형상화해야 한다는 규칙은 어디서 나온 발상인가? 그것 역시 사대주의가 아닌가? 문학이면 문학이지 장르문학, 순수문학 가르는 이 행태는 언제까지 계속될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래봐야 내 입만 아플뿐 순수문학하는 어르신은 꿈쩍도 안할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읽어본 결과, 작가의 그것이 그냥 B급 작가라고 하긴엔 작품에 드린 공력이나 필력이 여느 프로 작가 못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 문학 작가라고 하기엔 꽤 억울한 무엇이 있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불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 장정이 그게 뭔가? (솔직히 선물로 받아 선물하신 분께 누가 될까 말을 아끼고 싶긴 한데) 받아보고 약간은 식겁했다. 솔직히 책 장정이 그야말로 B급이다. 이러니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난 솔직히 이 표현이 탐탁지 않지만)이 대접 받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책 장정이 그 책을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반은 먹어주고 들어가는데, 내가 작가였다면 '억울'해서 책 못 내겠다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개정판이 이 정도라면 초판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아무튼 이런 쪽에서의 작품은 더 나와줘도 좋지 않을까? 

이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무엇보다 이 작품을(책이나 드라마나)  두고 동성애 코드라고 한다. 물론 조선 시대 실제로 남장을 한 여자 성균관 유생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장을하고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동성애 코드라고 보는 시각도 고려해 봐야할 것 같다.  실제 동성애자들이 봐도 이 작품은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조건 여자가 남장하고 나온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다 동성애 코드라고 보는 우리의 시각도 점검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문학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에는 작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작가가 보는 사회적 욕망을 녹여낼 수도 있다. 난 아무리 봐도 이 작품은 조선 시대 당시 억압된 여성의 사회적 신분과 상승을 대리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정말 윤희 같은 인물이 이런 활약상을 보였다면 당시의 여인들이 얼마나 통쾌했을까? 그러나 이런 일은 있을 법하지 않고 허구였던만큼 대리 만족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의 독자들이 윤희를 보고 대리 만족을 해야할만큼 이 나라의 여권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는가?고 묻는다면 그건 좀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이건 감상적 차원에서의 로맨스 소설이지, 페미니즘을 표방하기 위해 쓴 작품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니만큼 동성애옹호를 위한 것으로 보기에도 미흡해 보인다. 설혹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래야 세련되고 앞서가는 뭐라도 되는 양하는 것이 미덥지 않다.  

독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보내는 아낌없는 찬사에 동감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조금은 늘어지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건 내가 이 작품을 보고 열광하리만큼 젊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이건 드라마를 볼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가 이 작품이 드렸을 공력은 높이 사고 싶다. 읽으면서, 미국에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가 있다면 이건 감히 한국판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지적이면서도 대중의 인기도 어느 정도 확보한 소설이 반가웠다.  앞서 A급이나 B급이니 하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독자가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독자는 그저 책을 읽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의 후편에 속한다는 <규장각 각신의 나날>도 계속 읽고 봐야겠지만, 그 질펀하고 농 짙은 성농담 때문에라도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문학동네)란 책도 읽고 싶어졌고, 성균관 생활기라는 <성균관의 공부벌레들>(수막새)도 읽고 싶어졌다. 약간 흉내낸 느낌이 나긴 하지만, 소설이 주는 구라 때문에 '정말 그럴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면 그건 일단 성공한 독서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작가에게 바라는 건 독서의 즐거움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어렵지만, 또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작가다.  작가 정은궐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쓰고 있을지 사알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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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ㅇㅇ, 좋은 리뷰예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정도로. ^^

언니, 장르 문학은여, 대여점과 일부 고정팬을 타겟으로 했다는 의미예요.
무협이나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 그런 편인데,
한달에 엄청난 숫자가 쏟아져 나와요.
왜냐하면, 하루에 몇권씩 동일 장르만 읽는 골수 팬이 있어서 그래요.
<성균관->은 장르 소설 중 수작으로 성공한 경우구여,
어떤 장르 소설들은 으아,, 미치게따 할 정도인 경우도 종종 있대요.

그래도 소설, 꽤 잼나셨죠?
저는 규장각이 더 맘에 들어요, 윤희가 당당하거든요.

stella.K 2010-10-29 18:5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제야 그대 땜에 확실히 알았네.
그러니까 장르문학 하는 사람들 열심히 분발해야 한다구요.
그대가 선물해 준 규장각 빨리 읽어야 할 텐데...
읽어줘서 고마워요.^^

다이조부 2010-10-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니까 드라마가 급 땡기네요~

스텔라님이 김태훈 이야기한거 보면서 가슴이 넓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stella.K 2010-10-30 12:2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어요. 김태훈이 결혼도 안하고 잘난 척하는 거야
좀 거시기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웃긴데가 있어요. 그래서 좋아해요.

드라마가 제가 기대한 것만큼 시원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기대 안하고 보면 볼만하죠. 무엇보다 출연진들이 잘 생겼잖아요.
괜히 잘금 4인방이겠습니까?ㅎㅎ

자하(紫霞) 2010-10-30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들을 밤을 새워서 읽었다는거 아닙니까?
덕분에 이틀동안 눈에 핏줄이 서서 많이 아픈 애로 알았을거예요.
드라마도 본방사수한다는...^^;

stella.K 2010-10-31 18:1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그 정도는 아니던데...
그래도 이 작품은 참 영리하게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10-31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31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