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날씨가 더우니 무엇을 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특히 더운 날 글쓰기란... 물론 습작이긴 하지만. 덥다는 핑계, 아니 핑계가 아니다. 정말 이 젖은 솜처럼 축축 늘어지는 이(빌어먹을 놈의) 여름이 나에겐 또 다른 계절병임을 실감케 한다.
영화배우 강수연이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기는 4계절을 다 탄다고. 봄은 봄이라서 아프고, 여름은 여름이라 아프며, 가을은 가을이라서 아프고, 겨울을 겨울이라서 아프단다. 그럼 건강할 때란 언제란 말인가?
아무튼 난 이렇게 여름병을 앓는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작파한체 오직 책읽기와 영화 보기로 소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이 입추고, 다음 날이 말복이니 여름도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다. 적어도 아침 저녁으로만이라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고, 습도만 조금 내려가줘도 나의 이 젖은 솜뭉치병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더울 때 <렛미인> 보게 됐다. 누구 말에 의하면 영화 개봉 당시 다 보고 기립 박수를 쳤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나라 이야기 같진 않다. 스웨덴 자기 나라 얘긴가?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들은 미국에서 재생산 된 반면, 이 영화는 유럽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특이하고 주목할만 하다고 할까? 영화가 참 쓸쓸하다. 왕따와 사람이 될 수 없는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과 우정이기에 쓸쓸하고도 우울한 뭔가가 있다.
신학자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란 책에서, 이성 보다 어리석음이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한다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질 수 없어서일까? 뱀파이어 소녀가 사람을 죽여 피를 빨아 먹을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돕고 방조한 소년 오스칼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그래서 어린 아이고, 그래서 오스칼의 사랑이 순수한 것이겠지만.
허리우드는 허리우드 나름의 방법으로 뱀파이어 영화의 섬짓함과 괴기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유럽식 뱀파이어도 만만치 않지만 또 다른 식으로 그것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채롭다.
그런데 내가 딴지 걸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공간이다.
유럽이 잘 사는 것 같아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간은 그다지 넓거나 낭만스럽지가 않다. 그냥 조그만 아파트에 실용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30년 전이라 복고를 해서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들 보면 지나치게 화려하고 넓은 것이 불만이었다. 다른 외국 영화들을 보라. 일본 영화만 해도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작고 단출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들은 시청자들의 환타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공간도 넓고, 사람도 특이하고 잘 나가는 캐릭터로 만든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거의 현실성이 없는 탁상공론 같다.
영화는 꼭 그래야 한다는 강박은 아마도 허리우드의 영향 같기도 한데, 난 좀 하루 빨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허리우드에서 벗어나 자국의 힘과 정서를 가지고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도 봐라. 허리우드 냄새가 하나나 나나? 얼마든지 뱀파이어 영화도 자국의 특징을 잘 살려 만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이걸 봐서 그럴까, 뱀파이어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 어떻게 재탄생될까? 궁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도 허리우드 주메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뱀파이어 영화가 유럽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나는 환영한다. 그리고 유럽식 뱀파이어 영화의 칙칙함도 나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