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 April Snow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허진호
주연 : 배용준, 손예진

오랫만에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내가 그의 영화를 본 처음 본 건 <8월의 크리스마스>다. 그땐 영화를 잘 몰랐던 때였던 것 같다. 이를테면 영화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한다는 그냥 평범한 관객으로서, 내가 본 <8월의 크리스마스>는 너무 잔잔하고 밋밋하기까지 했던 그런 영화로 기억 된다. 그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고 다들 감동했으며, 허진호 감독이야말로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런 반응이 나는 띄아 했었다. 뭐 그렇게 까지야... 단지 나쁘지 않다면 한석규와 심은하가 나와줬다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새겨볼만한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도 나름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별 재미를 못봤던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욘사마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일본에서는 인기가 많았다지?   

사실 이 영화는 좀 위험하긴 하다. 어떤 사람은 스와핑이라고 얘기하더만, 그건 너무 단순하게 얘기하는 것이고(그건 네 사람의 합의하에 하는 거 아닌가?) 문제는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면 섹스에 시들해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몰래 먹는 떡이 맛있는 법이라고, 연애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레어서 좋은 것이고(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불륜이라는 것도 도덕적으로 금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짠한 뭔가가 있어 사람을 자극한다. 이 영화도 영화 자체로나 내용으로 보다 그런 것들을 부추기고 자극해서 위험하다고 하는 것이다. 뭐 이 영화뿐이겠는가? 여타의 멜로 영화들이 인간의 내밀한 것을 보여줄 때 합법적인 부부관계에서는 보여주지 않고 꼭 연애나 불륜의 관계에서 보여준다.  

합법적인 부부관계에선 보여줄 것이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영화 문법이라면 이걸 좀 깨주는 영화도 나와줘도 되지 않을까? 합법적이고도 건전한 부부관계에서도 인간의 내밀한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이것 또한 영화가 아니겠는가? 영화가 하지 못하는 게 어디 있으며 도전하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이 어디있겠는가? 영화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반발짝 내지는 한발짝 앞선 뭔가를 보여주기도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위험하지만 또한 범작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허진호 감독을 뭐라 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이 영화까지는. 난 이 영화를 나름 좋아라 하면서 봤다. 그것은 대사를 그다지 많이 쓰지 않으면서(이건 작가의 몫이겠지만 내가 알기론 감독이 각본도 감당했을 것이다) 주인공의 내면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많이 줬다는 것이다(난 어느 새 이런 영화가 좋아졌다.) 

이를테면, 주인공 인수(배용준 분)와 서영(손예진 분)이 배우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다.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더구나 서로의 배우자와 불륜관계라는 걸 알았다. 배신감에 치를 떤다. 둘은 그런 점에서 서로의 입장이 닮아있고 동병상련일게다. 물론 처음엔 서로를 바라보는 것 조차 민망하고 화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둘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를 위로한다. 그들의 절제된 감정 흐름과 대사들이 관객을 절저하게 분리시켜 놓는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들을 느껴보라고 열어 보이는 것이다. 영화속 주인공들은 그런 불행 속에서도 아주 잠깐 잠깐씩 상대 때문에 웃는다.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웃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조금만 행복하면 불행을 생각하고, 불행하다 싶으면 어떻게든지 행복을 모색하는 존재. 모순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보여진다.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즉 죽음을 생각할 때 삶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럴 때 그의 죽음이 또는 그의 부재가 꼭 불행하게만 보여지지는 않았다. 감독은 이러한 면들을 잘 포착한다. 

암튼 이렇게 서로에게서 자신의 위로를 모색하다 보면(아마도 이 표현이 맞을 것이라고 본다. 서로는 서로에게 위로를 주려고 처음부터 애쓰지 않았으니), 남녀상열지사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던가? 더구나 상대는 배용준과 손예진이다. 어떻게 이들이 영화에서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이해 못할 상황도 아니다. 이것은 조금 다르긴 <어 웨이 프롬 허>란 영화와도 약간은 닮아 있다. 

이들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고 마음을 조금씩 열 때 나눴던 대사들이 좋다. 이를테면, 서로의 하는 일을 묻는 장면. 인수가 상대의 물음에 대답하고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할 때, 서영은 그냥 살림을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인수는 "그거 어려운 건데..."한다. 별것 아니지만 뭔가의 울림이 있다. 이런 별것 아닌 대사 한마디의 울림을 위해 절제하고 또 절제하는 것. 이것이 허진호 영화의 특징일 것이다. 물론 그가 처음 고안해 낸 영화 문법은 아닐테지만. 

인수와 서영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그들 각자의 배우자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도 뭐라 원망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묻게 되는 말. 사랑 앞에 윤리가 먼저일까? 이해가 먼저일까? 이건 확실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란 복수의 논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자신도 불륜을 해 봤더니 배우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됐더라는 식의 윤리를 배반함으로 이해를 구하고자 함도 아닌 것 같다. 결국 도덕이나 윤리 보다 앞서는 건 이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인수와 서영의 사랑이 인정 받는 꼴이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또 얼마나 깨어지기 쉽고 불완전한가?  

영화에선 인수의 배우자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만, 서영의 배우자는 끝내 죽었다. 영화에서는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인수의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수는 끝내 자신의 아내와 헤어지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모르긴 해도 인수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아내가 했을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결론이라 생각하고 서로의 합의하게 헤어진 것일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에게로부터 보호받고 의지하길 원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호받지도 의지하지도 못하는 인간의 교차된 운명과 고독을 이 영화는 잘 표현해 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난 배용준이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잘 생겼다는 것 외에 무엇이 좋은 지를 모르겠다. 무엇보다 난 배우가 배우로서 열심히 스크린이나 카메라에 서야하는데 얼마만 한 번씩 서는 배우는  진정한 배우는 못된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오랜만에 봐서일까? 이 영화에선 꽤 괜찮게 나온다 싶다.  

손예진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것 같긴 하지만 난 열심히 배우로써 활동하는 그녀가 나쁘지 않다. 인수와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을 때 삼척 어느 횟집에서 울먹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서영으로서의 그녀가 참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김형경의 동명소설이 있다는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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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2-0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용준하고 손예진을 기용하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당시 평들이 안좋았지요.겨울연가 비스무리하게 만들어 일본에 내다판다고 많은 비판이 있었던 영화더군요.

stella.K 2010-02-09 10:36   좋아요 0 | URL
아니 이런 영화가 뭐 어때서요?
물론 배용준이 일본에 너무 경도되고 있다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가 가진 부가가치를 생각하면 뭐 팔 수 있을 때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의 인기가 평생 갈 것도 아니잖습니까?
일본에 내다팔거라고 해서 영화를 너무 얕게 보는 것도 좀 우습네요.
그런 거라면 더 잘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보통 보면 보지도 않은 것들이 입소문만 가지고 뭐라고 그런 다니까요.
아니면 일본에 대해 괜히 악감정이 있거나...ㅉㅉ

프레이야 2010-02-1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리뷰 당선 축하해요~~
전 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어요. 물론 영화의 느낌이 좋아서였고
뭔가 아쉬움 또한 남아서였어요. 책의 문장들이 지금은 잊혔지만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배우로서의 배용준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서의 느낌은 그런대로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스텔라님 말씀대로 서로 마음을 열어가던
과정과 특히 결미가 마음에 들더군요. 희망적으로요.
좋지않나요? 왜 그러면 안 되기라도 하냐구요? ㅎㅎ

stella.K 2010-02-10 20:5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댓글 보고 알았어요.
저 리뷰 왤케 잘 쓰는 걸까요? 아무래도 알라딘 영화팀이
저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켈켈켈.

왜 사람들은 이 영화의 진가를 모르나 보고 안타깝더라구요.
프레이야님 계셔서 너무 반가운 거 있죠?
배용준에 대한 생각까지도 저하고 일치하시네요.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