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 Last Presen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의 백미는 아무래도 용기(이정재)와 철수가 '개그천왕'이란 프로에서 천왕에 등극하게되는 마지막 공연을 펼쳤을 때가 아닐까? 그것은 마치 채플린의 그것을 연상케도 한다. 

그런데 용기의 병든 아내 정연(이여애)이 마지막 공연장에서 남편의 공연을 보다 조용히 죽어가고, 이를 알리없는 방청객들은 오로지 용기와 철수의 공연을 보며 웃기만할 뿐이다. 

용기는 그 공연에 자신의 아내가 왔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아내가 그 관객석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의 몸은 공연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은 울고 있으며 감독은 이 부분에서 일부러 용기의 목소리를 빼고 음악을 삽입하므로 소통이 안 되고 있음을 극대화시킨다. 용기와 정연이 소통이 안 되고 있고, 용기와 관객이 소통이 안되고 있으며, 정연과 같이 온 관객들 또한 소통이 안되고 있다. 그 순간 오로지 용기와 정연만이 무언의 텔레파시를 교환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용기는 정연에로 갈 수가 없다.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아내에게로 갈수없는 용기에게는 무대와 아내가 앉아 있는 거리가 너무 멀다. 무엇보다도 그는 희극배우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희극배우는 슬프다. 슬플 때 웃을 수 없으며 슬플 때도 웃겨야 하니. 

이 영화에 또 하나의 울림은 용기가 아들의 나무에 대고 하는 말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를 생각하며 자조하듯이 "엄마가 네가 보고 싶어서 너에게로 갈 거래." 하는 것이다. 죽은 아들에겐 기쁜 일이겠지만 아내가 죽고도 몇 십년은 족히 더 살아야하는 용기에겐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조차도 가슴이 짠했다. 이 대사 한마디의 울림이 이토록이나 클 줄이야. 

조금은 비껴 나가는 얘기가 되겠지만, 너무 건강, 건강하는 요즘의 세태가 나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건강해서 아웅다웅 싸우는 것 보다 건강을 잃었을 때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건강할 땐 아니 적어도 이 영화에선 용기가 아내 정연의 병을 몰랐을 땐 둘은 사는 것 때문에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마져 식어 한 방, 한 침대에서 같이 잠도 자질 않는다. 그러나 아내 정연의 병을 알았을 때야 비로소 용기는 짐짓 모른척하며 건강 보조제도 출연료 대신 받아왔다고 속이며, 밤무대도 서며 그때까지 잠자고 있던 아내에 대한 애정을 다시 일깨운다. 

그렇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건강할 땐 그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미련하고도 얄팍한 존재.  

용기는 또 생각한다. 자신이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또 뭐가 있을까를. 우연히 아내가 초등학교적 사진을 들춰보는 흔적에서 그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용기는 마침 우연한 기회에 얼렁뚱땅하게 생긴 사기꾼 형제를 알게되고 그들에게 아내의 친구들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것이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진짜 좋은 선물이 되길 바라면서.  

하지만 이 얼렁뚱땅 사기꾼들은 아내의 친구들을 찾는데는 성공하나 그들을 데려오는데는 실패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내 정연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안 만난지 오래인데다가 정연을 만날만큼 자신이 그렇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사기꾼들은 아내가 첫사랑이 있었음을 용기에게 가르쳐 준다. 그때까지 자신이 아내의 첫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내에게 진짜 첫사랑이 있었다니?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정연이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었던 친구가 홀연히 정연을 만나러 와 줬다는 것이다. 이럴 때 인정을 발휘하는 건 역시 같은 여자다. 건강할 때는 모른척 할 사이일텐데도 말이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나라면 죽음을 앞에 놓고 어떤 선물을 바라게될까? 궁금해졌다. 유감스럽게도 난 정연처럼 친구를 다시 만나 보는 것을 바라게될 것 같지 않다. 나 역시 아픈 신센데 누구에게 이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겠는가? 난 그저 남겨진 가족들만이 마음 아플 것 같다. 그래도 뭐 하나는 바래야 할 것도 같다. 그래야 나 떠날 때 섭섭치 않을 것이며,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이것만이라도 이루어 주고 떠나보냈다고 위안 삼을 것이 아닌가?  

결국 아내를 그렇게 떠나 보내고 장례식도 끝나 집으로 돌아온 용기는 아내가 죽으면서 보낸 소포를 받게되고 거기서 아내의 첫사랑은 다름아닌 자신이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아내의 선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건 홀로남겨진 용기에겐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언젠가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한다. 그렇다면 난 누구의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역시 나를 위해 있는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해야겠다. 저 말 한마디 듣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은 그저 내가 아플 때 곁에 있어주는 그 사람이 선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가슴 뭉클하고도 따뜻한 영화다. 무엇보다 각본이 영리하다. 도입 부분이 오헨리의 단편 '선물'을 연상하게도 한다. 부부인데도 서로 모르는 척 속이려고 할 때말이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연기를 하는 이영애의 연기가 안정적이다. 

이 영화는 참 좋은 영화다. 한 없이 이생에서의 삶과 물질만능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삶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잔잔하고도 예쁜 영화다. 너무 늦게 봐버린 내가 오히려 감독에게 미안할 정도다. 2001년도 작이라니 말이다. 혹시 아직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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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05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더러 생의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물론 진심이래야하지만요.
이 영화 오래전 봤던 기억이 나요.
웃으면서 울어야하는, 뭉클한 영화였어요.
이영애와 이정재, 저때만해도 지금보다 더 풋풋하네요.

stella.K 2009-09-06 12:45   좋아요 0 | URL
여기서 저의 선물은 프레이야님이십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리뷰에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해 주시고,
좋은 페이퍼 올리시고, 오랜 인연으로 지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09-09-07 21:18   좋아요 0 | URL
제가 더 위로받게 되네요.
요즘 마음이 무척 좋지 않은데 몇줄의 글로 마음을 토닥이게 되다니요.
고맙습니다.^^

stella.K 2009-09-08 10:38   좋아요 0 | URL
앗, 이런...민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