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영화에서 보려고 했던 것은 우리나라 미혼모의 현실과 미국의 미혼모의 현실이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성년의 미혼모의 현실 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제는 무겁지만 영화의 분위기나 편집은 놀라우리만치 좋고 재치가 넘쳐 보인다. 그래서 이 저예산 영화가 빛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미성년의 미혼모 문제를 아주 현실적으로 다뤘다고 생각한다. 내가 듣기론 미국은 하도 그런 일들이 빈번해서 아예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안에 탁아 시설을 갖춰놓고 있다고 들었다.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무조건 학교부터 그만 둬야한다. 적어도 그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대문 밖 출입도 못할 것이다. 본인도 창피하고 부모들도 창피하다고 어디 내 보이기도 심히 꺼려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개인의 태도나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 자체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남 얘기하는 걸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민족 아닌가? 그것은 미국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국가적인 지원도하고 개방적 사회 분위기라도 해도 한창 예민한 사춘기라 서로 수군거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그래도 임신을 한 학생이나 임신을 시킨 학생이나 조금 민망해서 그렇지 학교 자체를 못 다니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쪽 나라 동네는 워낙에 개인주의가 팽배한 나라라 우리나라 같이 임신시킨 학생에게 칼 들고 설치지는 않는다. 서로 합의만 하면 쿨하게 친구하며 잘 지낸다. 물론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여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그 나라는 얼마나 합리적인 나라인가? 불임부부들은 지역 신문에 입양할 아이를 구한다고 광고를 낸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요즘엔 불임이 칠거지악이라고 매도하진 않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니 가슴앓이 하는 건 매한가지다. 하긴 우리나라가 핏줄 연연하는게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니 불임 스트레스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을거라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이 반드시 좋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미국은 이런 문제를 입양으로 쉽게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물론 그들에 입장에선 쉽지 않겠지만) 우리나라는 임신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처음에만 죽일 놈 살릴 놈하지만 가족주의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자기 자식이 낳은 자식은 거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비록 자기 아이를 임신시킨 남자 놈이 도망가건 버젓이 주위를 배회하건 책임을 지겠다고 해도 어린 아이가 무슨 책임을 지겠냐고 하며 어쨌든 자기 씨는 자기가 거둘려고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미국은 어떤가? 주인공 주노의 부모가 충분히 아이를 대신 키워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주노의 의견을 존중해서 입양 보낼 마땅한 사람들을 함께 찾아보고 그 아기가 태어나면 그 집에 잘 양도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찌보면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는 면에선 나름 좋은 부모 같기도 하지만 또 어찌보면 인정 머리가 없어보이기도 하다. 웬만하면 키워주지. 그 나이에 할아버지 할머니 되기 싫다고 손주를 입양 보내냐?
그래도 우리나라의 가족주의를 좋아만 할 수 없는 건 물론 극히 일부이긴 하겠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 시설에 맡기는 것도 몰라 종이에 싸서 화장실에 버렸다는 둥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버렸다는 둥 하지 않는가? 그런 거 보면 차라리 미국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입양을 약속한 젊은 부부가 주노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합의 이혼을 한다. 주노는 꼭 엄마 아빠가 다 같이 있는 집으로 아기를 입양 보내길 바랐고 마침 그에 합당한 부부가 나타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노가 막달이 되자 남자가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것은 주노에게 실망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도 일견 이해할 수도 있겠다. 늦은 감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솔직해졌으니 혼란은 생각보다 덜 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결혼 생활도 현재를 사는 것이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란 말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냥 하루하루 살다보니 해로하게 됐다 뭐 이 정도는 가능해도 영원을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안 그랬다가 영원한 영어(囹圄)의 삶을 사는 건 얼마나 비참 하겠는가?
결국 주노가 낳은 아기는 여자 혼자 기르기로 하는데 여자 혼자 기른다고 해서 그 아이가 꼭 불행할 것은 아닐 것이다. 넓고 길게 생각해야지. 여자가 재혼을 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데 인정 머리 없기론 이들의 부모 보단 당사자들이 더 한 것 같다. 나중에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하는데 아기를 입양보내 놓고 저렇게 대놓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저건 어디까지나 영화다. 그냥 감독이 해피 엔딩스러우며 쿨한 열린 결말을 위해 그렇게 설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저들을 섣불리 저주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은 분명하다. 저들은 저들로선 최선의 선택을 했을 테니까. 나중에 후회를 하던 뭐하던 그건 나중일이고...
오늘도 주노는 새롭게 생겨난다. 이 영화는 오늘의 주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것으로서 영화의 역할은 다한 거 아닌가?
덧) 이 영화는 작년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작년에 시나리오 공부하면서 이 영화를 볼거라고 같은 수강생들에게 광고했다가 간판을 일찍 내리는 바람에 못보고 이제야 봤다. 당시 나의 사부는 영화 볼꺼라고 광고할 생각말고 빨리 아기나 낳으라고 알밤을 맞았다. 어찌나 웃기고 민망하던지. 그러면 뭐하겠는가?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