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쑤퉁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짼데 내가 읽은 '나, 제왕의 생애'에서는 환상적 우화를 선보였다면 이 작품은 뭐랄까 인간의 원초적이면서도 원시적인 욕망을 여지없이 까발렸다고나 할까? 유독 쌀에 집착하는 우릉과 그 가족의 내면 풍경을 흡입력있게 묘사한 수작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나, 제왕의 생애'처럼 그의 글은 이미지적이어서 영화적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그것은 작가가 지닌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릉과 그 가족의 내면 풍경을 읽는 건 썩 유쾌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콩가루에 난장판이 어디 있겠는가? 작품은 교활함에, 변태에, 피 범벅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가족이요 가정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더구나 작품에서는 이런 가족관계가 우릉 1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읽다보면 처참하다는 느낌이 들고 읽다보면 그들이 차라리 측은하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아무리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가족만큼은 서로를 보듬고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고아로 태어나서 한 번도 타인의 사랑 아니야 친절을 받아보지 못한 우릉은 그저 세상에 대한 원한과 복수로 산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유일한 위로요 소망이었던 건 '쌀'이었다. 아니 그것은 '욕망의 대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작가는 왜 다른 하고 많은 것 중에 주인공의 욕망의 대상을 '쌀'로 정한 것일까?  

작품의 배경은 20세기 초 중국 사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그 무렵이면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이다. 그 시절엔 누구나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시대이고, 살기 위해 먹기보단 먹기 위해 살아야 했던 시대이다. 그러므로 쌀에 유독 많은 집착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면에선 저 유명한 펄벅의 <대지>에서의 왕룽을 떠올리게도 한다. 물론 그 작품에서 주인공 왕룽은 땅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는 게 다르다는 것이고, 이 작품에서는 언급한 '대지'보다 더 극악스럽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일 것이다.('대지'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 보자면, 그 작품은 여성 작가가 썼기 때문에 아무래도 뭔가 여성적 정서가 있어 보인다. 또한 서양인으로서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중국적 작품은 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작품이 갖는 문학적 가치는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다는 건 자명하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얘기했을 때 '원초적'이란 표현을 썼다. 그것은 주인공의 욕망을 가감없이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원시적'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것은 우릉의 가정이 전혀 교육받지 못하고 전혀 문화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교육 받지 못하고 문화적이지 않은 면들은 또한 2대에 걸쳐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 향유를 누렸더라면 그처럼 극악스러스럽고 비참한 최후를 맞지도 않아 보인다. 게다가 그 비참한 최후란 게 우릉의 최후일뿐 그것은 여전히 계속될 것만 같다.  

인간은 원래 악하다. 그 악한 면을 깨우치지 못하면 무엇이 선이며 악한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적 환경은 그것을 어느 만치는 깨우치고 완화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하는 건 교육과 문화적 환경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다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리 없는 그들은 나의 불행 전부가 남 탓인 양 전가하며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악만이 남아있을 것 같지 읺은 관계의 흐름 속에서도 아주 희미하게 남아 인간의 연민과 정을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것은 치윈이 언니 쯔윈이 자신의 팔찌를 훔쳐 갔을 때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것처럼 만나러 가지만 언니의 처량한 신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돌려 받기를 포기했을 때나, 사고로  언니가 죽었을 때 울었다는 점 들은 인간이 마냥 악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남자여서 일까?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지극히 마초적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은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반면교사라고, 앞서 언급한 교육적이고 도덕적이며 문화적인 측면은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끝까지 시종일관 인간의 악한 면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작품은 그래서 괜히 내 영혼까지 악하게 물들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어쩌면 그것을 표현하되 위트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읽다보면 그래서 사랑이 중요하며, 도덕이 중요하고, 교육이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을 작가가 교훈적으로 보여줄려고 했다면 이 작품은 자칫 지루하고 빤한 것을 보여준다고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쑤퉁은 이야기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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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7-3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전 한권도 못 읽어보았는데

진달래 2009-08-0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쑤퉁... 이름만 들어봤어요.
이 작품도 꼭 기억해둬야겠네요. ^^

stella.K 2009-08-05 10:34   좋아요 0 | URL
이 사람 좋아요. 이 사람의 작품은 읽는대로 모아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