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영화보다 더한 삶 ‘슬럼독…’ 아이들 그 후 
 김향미기자 sokhm@kyunghyang.com경향신문  



영국 영화감독 대닐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는 지난해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제33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탄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모두 88개의 상을 받았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호주, 영국,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줄지어 개봉해 인기를 모았고,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등 8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 개봉해 관객 100만명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 출신인 18살의 자말이 2000만루피(약 6억1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에 출연해 어려운 퀴즈 문제를 맞혀 백만장자가 된다는 줄거리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자말이지만 퀴즈쇼에서 그가 살아온 빈민가의 삶의 기억들 하나 하나가 문제를 푸는 실마리로 연결된다. 자말은 백만장자가 됐을 뿐 아니라 잃어버렸던 사랑도 되찾아 인도 빈민가의 영웅이 됐다. 이를 지켜보는 영화속 빈민가 사람들은 자말의 승리에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그렇다면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실제 주인공들은 그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들




루비나 알리
이 영화는 3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냈다. 많은 수익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인도 빈민가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세계적인 스타가 됐음은 물론이다. 주인공이었던 자말 역의 데브 파텔(18)과 라티카 역의 프리다 핀토(24)는 실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지난달 23일 보도했다. 외신들은 앞다퉈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각국 팬들에게 알렸다. 두 배우는 최근 2009 MTV 영화상 신인연기자상 후보에도 나란히 올랐다. 프리다 핀토는 지난 13일 개막한 제62회 칸국제영화제를 후원하는 메이크업 브랜드인 ‘로레알 파리’가 뽑은 3명의 브랜드 모델 중 한 명으로 선정됐으며, 미국 주간지 피플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100인’에도 7위로 이름을 올렸다.

성인 주인공들이 명성을 얻으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이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아역 배우들은 여전히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유명세로 인해 오히려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아역 스타는 주인공이었던 자말, 라티카, 살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유시 마헤시 케데카(8), 루비나 알리(9), 아자루딘 이스마일(10)이다. 이들은 대닐 보일 감독이 실제 빈민가에서 발품을 팔아 찾아낸 아이들이다.

팔려갈 뻔한 여자 아역배우, 그 진실은?

지난달 20일 ‘힌두스탄 타임스’ 등 인도 현지 언론들은 어린 라티카 역을 맡았던 루비나 알리의 아버지가 알리를 팔아넘기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루비나 알리의 아버지 라피크 쿠레시(36)가 두바이에 살고 있는 아랍인 부자 부부를 사칭해 알리를 입양시키겠다는 영국 기자의 말에 속아 20만파운드(약 4억원)를 받고 딸을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 쿠레시는 딸을 팔려고 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으며 인도 경찰은 보도가 나가자 알리의 아버지를 불러 조사했으나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뭄바이에서 목수 일을 하는 쿠레시는 “그들이 우리를 속였지만 다행히 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가난을 조롱했다”고 반박했다. 영국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자사의 한 기자가 알리의 아버지와 만났으며 그가 딸을 입양하길 원하는 부유한 아랍인에게 넘기길 원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쿠레시가 처음엔 5만파운드 정도의 보상을 요구했다가 나중에는 20만파운드를 요구했다”면서 “그가 슬럼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했다”고 보도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어린 여주인공 역을 맡은 루비나 알리가 지난달 27일 집안에 넘친 물을 바라보고 있다. 알리의 아버지 라티크 쿠레시(오른쪽)는 지난달 알리를 팔아넘기려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뭄바이 | AP연합뉴스>
이 신문은 알리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기자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쿠레시는 영국 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강력한 유혹’이 일었지만 딸을 팔려고 하지는 않았다”면서 “아랍의 부호가 알 자지라 TV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알리를 돕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그들과 만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뭄바이에 있는 2곳의 호텔에서 영국 기자와 세 번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그들은 우리를 대상으로 더러운 행각을 벌였다. 나는 그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고 딸을 팔지도 않았다”면서 의혹을 일축했다.

이웃인 모하마드 사킬도 이 같은 보도에 놀라면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우리 스스로 존중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아무리 큰 유혹이 다가와도 우리의 아이들을 팔지 않는다”고 알리의 부모를 두둔했다.

아동복지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프리티 파트커는 “언론에서 다루는 루비나 알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비윤리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루비나 알리는 친모와 계모 간 양육권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알리는 현재 계모와 살고 있는데 친모인 쿠르시다가 양육권을 주장하면서 분쟁이 생긴 것이다. 쿠르시다는 지난달 26일 법원에 양육권을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했으며 “전 남편과 새 부인이 알리를 팔아넘기려 했다. 가난 때문에 알리를 두고 왔지만 세상에서 딸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인 나다”라며 딸을 팔아넘기려 한 혐의로 경찰에 전 남편을 고소했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남자 아역배우




아자루딘 이스마일
자말의 형 살림의 어린 시절 역을 맡았던 아자루딘 이스마일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뒤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폭행당했다. 이스마일이 취재진에게 피곤하다며 쉬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스마일은 “너무 피곤해 인터뷰를 하기 싫어 못되게 굴었다. 아버지가 나를 때렸지만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도 “언론과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는데 그게 깨지자 화가 나 때렸지만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폭행은 이 가족에게는 작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이스마일은 자신이 살던 집이 강제철거당해 노숙자 신세가 됐다. 14일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 뭄바이시 당국은 이날 시 외곽 반드라 동쪽에 위치한 무허가 주택들에 대해 강제철거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이스마일의 집도 포함돼 있었다. 이 지역의 철거를 담당한 우마샨카르 미스트리는 “매년 우기 때면 일어나는 홍수를 막기 위해 수로 주변에 있는 정부 소유 토지에 있는 무허가 건물을 모두 철거했다”고 말했다. 이스마일의 가족은 길거리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스마일은 “잠을 자고 있는데 사람들이 들이닥쳐 소리치며 우리를 내쫓았다. 그 사람들은 우리 천막을 찢고 건물을 부쉈다”고 말했다. 이스마일 가족은 당국이 철거 사실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스마일은 “우리 가족은 이제 노숙자가 됐다.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이 새로 이주할 집을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나무와 플라스틱 조각으로 얼기설기 만든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젠 그마저도 잃고 임시 수용소와 같은 대체 보금자리도 기대할 수 없다. 뭄바이 당국은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이들이 빈민가에 살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이스마일과 알리에게 새집을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은 몇 달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인도 빈민가에 남긴 것

<슬럼독 밀리어네어> 제작진은 빈민가에서 살아온 이들 아역배우의 교육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하고,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맡아줄 관리인도 고용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의 형 살림 역을 맡은 아자루딘 이스마일이 14일 철거당한 자신의 집에서 닭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인도 뭄바이시 당국이 이날 이스마일의 집을 포함, 무허가 주택들에 대해 강제철거에 들어가면서 이스마일은 노숙자 신세가 됐다. <뭄바이 | AFP연합뉴스>

지난달 16일 대닐 보일 감독은 50만파운드(약 9억6000만원)를 아역배우들이 살고 있는 빈민가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보일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은 이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의 반복을 깨뜨리는 일이 이 영화가 이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5년간 기금을 조성해 이 도시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또 이 자선단체는 모은 기금으로 50개국에서 위생 상태와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BBC가 전했다.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 중 한 명은 “수십억 인구가 빈민가에 살고 있으며, 매일 10만명의 빈민이 생기고 있다”면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지구상 6명 중 한 명이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한 장의 스냅사진을 보여준 것과 같다”고 말했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카타르에 거주하는 인도인 사업가인 압둘 레만 바누는 루비나 알리의 집을 수리해주고 알리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인디아 투데이’ 등 인도 현지 언론들은 인도의 빈민가 생활로 서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시킨 것이라거나 ‘슬럼독’(빈민가 개)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인도인을 폄훼한 것이라며 현지인들의 불쾌감을 전했다. 루비나 알리 매매 의혹 사건으로 시끄럽던 지난달 20일 알리의 언니인 사나(13)는 힌두스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스카상이 우리 가족을 파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향미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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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5-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프네요

프레이야 2009-05-2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살림 역의 그 아역배우도 그렇고요.
오스카상이 우리가족을 파괴했다, 이 글귀가 참 마음 아프군요.

stella.K 2009-05-22 12: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이 기사보면서 전에 쓰셨던 프레이야님 영화 리뷰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