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소설가로 산다는 것


어느 직업에나 어려움이 없지 않겠으나 대한민국에서 소설가로 사는 일은 참으로 지난하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금전적인 부분일 터. 후배 소설가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면 이렇다. 30대이고 미혼인 후배가 어느 날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냥 끊을까 하다 자신이 대체 몇 점짜리 신랑일까 궁금해지더란다. 키는? 체중은? 출신 학교는? 부모님은? 사는 지역은? 자가인가, 전세인가? 세세한 질문이 이어졌다.

결혼정보회사가 매긴 점수는

신체 건강하고 외모로 보자면 남에게 빠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던 후배는 178cm, 72kg, K대학, 교수, 청담동, 자가의 순으로 차례로 답을 했는데 다음 질문이 직업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소설가라고 정직하게 답을 한 순간 저편의 상대는 아,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고는 죄송하다, 실례가 많았다 하고 전화를 끊더라는 얘기였다. “당연하지. 소설가는 그런 직업 순위 20위 밖이다”라고 다른 소설가 한 사람이 지적하자마자 평론하는 후배가 자탄을 뱉었다. “평론가는 아예 항목에도 없어요.” 좌중에 왁자한 웃음이 터졌지만 모두의 표정은 씁쓸했다.

소설가의 수입은 대체 얼마나 될까. 단편소설 한 편을 쓰면 100만 원 내외의 고료를 받고 연평균 4편쯤의 소설을 발표하니 400만 원, 2년 정도 모은 소설을 묶어 출간하고 받는 인세가 초판 3000부이면 300만 원, 그러니 연평균 550만 원가량? 월평균 45만 원이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 기준인 월 43만 원을 가까스로, 그야말로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니 결혼정보회사 직원이 “실례가 많았다”고 전화를 끊은 것도 결코 무리라고 할 수 없다.

소설을 쓰면, 책을 내면 엄청난 인세를 받고 부자 대열에 끼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키스 더 걸(Kiss the girl)’로 잘 알려진 미국 스릴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은 1년간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고 저 유명한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매일 10억 원(!!)의 인세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작가, 억대의 세금을 걱정하는 작가가 없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소설가는 밥 벌어먹기 어려운 직업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최인호, 안티가 있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화제의 책을 써내는 이문열이 있고 후일담 설화 귀신,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종횡으로 오가며 베스트셀러 소설을 양산하는 황석영이 있다.

내는 책마다 수십만 부, 심지어 백만에 육박하는 판매부수를 올리는 공지영 같은 작가도 있고 결혼 상대에게 최고급 외제차를 선물했다는 모 작가의 이야기도 있다. 이뿐이랴, 인세 수익만으로 고환율 시대에 아이의 유학비용을 거뜬히 감당하는 여성 작가의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어느 행사장에서 황모, 김모, 후배 작가 김모와 합석한 일이 있었다. 소득이 미미한 해가 있는가 하면 책이 많이 팔려 최고 세율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 때가 있으니 작가에게는 좀 다른 방식의 세금 부과 기준이 필요하지 않나, 라는 황모 선생님의 말씀에 다른 두 작가가 열렬히 호응을 보내는 거였다. 소설가의 모임에서는 처음 만나는 화제여서 귀를 쫑긋 세우는 나를 누군가가 슬쩍 잡아당겼다. “너는 거기 왜 끼어 있니”하면서.

“왜, 나도 억대 고료 작가야. 10년 단위로”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사실 등단 15년 동안 10여 권의 책을 냈고 출판사에 미안하지는 않을 정도의 판매액을 올렸으니 수익으로만 따지자면 나는 평균 이하의 작가는 아니다. 꾸준히 청탁을 받고 열심히 원고를 쓰는 작가의 경우가 이러하니 대부분 소설가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열악하다. 잡문을 쓰지 말라는 스승의 말씀은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서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고 얄팍한 봉투를 위해 경향 각지의 강연장을 돌아다닌다. 어쩌다 ‘이달의 우수 도서’에 선정되는 행운이 생기면 판매액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예술위원회에서 분기별로 우수 발표작에 주는 300만 원을 짐짓 태연한 척, 속으로는 황감해하며 받고 어느 단체, 어느 기관의 후원금을 행여 놓칠세라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혹 눈먼 상 하나가 떨어지지 않나 목을 매고 기다린다.

작가들의 상황 너무 절박하다

물론 누구를 탓할 바가 아니다.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 책임을 돌릴 수는 더구나 없다. 하지만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뭐”라고 버려두기에는 우리 작가들의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 안 팔린다, 안 읽는다, 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사고 읽는다. 그러니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듯이 보인다. 재미있게 쓸 것. 판타지와 공포와 연애와 스릴러를 버무릴 것, 재주가 있다면 코믹을 채택할 것, 무엇보다도 엄숙주의를 과감하고 냉정하게 버릴 것. 그리하여 기필코 ‘무릎팍 도사’에게 부름을 받을 것…. 지금 한국의 소설은, 한국의 소설가는 체질개선의 절대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다.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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