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반 라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예술가의 초상을 보는 것은 나에겐 그다지 편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전에 에밀 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었는데 결국 읽다 읽다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세잔을 너무나 비참하고 처절하게 그려놔 책에서 자양분을 얻기 보다 오히려내 안의 기운을 뺏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글쎄...지금쯤 그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때 보단 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려나?

렘브란트 역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가의 삶이란 게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평전으로든 소설로든 이미 접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예술가들이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빚진 돈을 갚기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됐고, 우리의 부유한 톨스토이 할아버지도 끝내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졋다고 하지 않은가? 모짜르트나 베토벤은 어떤가? 내가 읽은 렘브란트도 말년이 그다지 행복해 끝난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던 건, 저자의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표현 때문이었다. 저자는 소설적 문체만을 구사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렘브란트를 묘사하고 있다. 거기엔 주로 희곡적 방법을 차용하고 있는데 그게 참 이채롭게 느껴진다. 그런 것으로 보아 작가는 희곡에 대해 아주 조예가 깊거나 아주 관심이 많아 보인다. 또한 이밖에도 서간체도 사용하고 있고, 시도 들어가 있으면 한 인물에 대한 다양한 조명, 이를테면 '나'라고 하는 1인칭과 그를 보는 또 다른 시선 3인칭을 적절히 대비한 것 또한 작가가 렘브란트를 얼마나 신중히 다루고 싶어했는지를 볼 수가 있다. 더구나 문체는 상당히 지적이다. 그래서 지적 욕구를 채워 주기에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보다 보면, 또 다른 점에서 이 책을 생각하게 만든다. 즉 이를테면 개인적 신앙을 작품 속에 표현하는 주인공의 노력이다. 알겠지만 렘브란트가 살았던 시기는 바로크 시대로서 신의 세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렘브란트 자신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그 시대는 예술 작품 속에 자신이 믿는 신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길 즐겨했고 그래야 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렘브란트를 비롯해 당대의 서양 예술가들은 성서를 토대로한 예술 작품을 그리기 좋아했으며 그것은 상당히 사실적이며 오늘 날까지도 명화로서 칭송을 받는다.     

그런데 렘브란트도 인간이었던 만큼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 자신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만큼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금욕적으로 살았던 것도 아니었고, 인간적 실수나 없었던 것도 아니다. 때론 비난 받아 마땅할 일도 행하였으며 그런 자기 자신을 변호하느라 고뇌하는 것들을 본다. 특히 돈과 여자의 문제에 있어서 말이다.

돈과 여자라. 독실한 신앙이든 아니든지간에 이것으로부터 자유롭고 깨끗해지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거기에 여자가 끼었다는 것이 같은 여자로서 껄쩍지근하긴 하지만 어차피 여자와 남자는 서로 끌리는 존재임에 틀림없으니 그냥 이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란 말로 돌려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리고 여자가 사회적 약자인 것도 사실이니까. 렘브란트도 남자가 아니던가.

이 책을 읽고 있어서였을까? 요즘 부쩍 신앙과 인간의 위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하기야 이런 생각이 어디 한때뿐이었겠는가? 작년에 기독교에 대한 맹비난과 철퇴를 맞은 후로 나는 부쩍 왜 그들은 기독교인을 비난할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문제는 신앙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문제점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신앙은 순결함 그 하나만으로 지켜질 수 없다는 것에 비극이 있는 것 같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려 먹고 살았고, 일가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것이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했겠지만, 그는 그렇게 그려야 자신의 몸값이 올라가고 칭송을 받았다. 이것은 확실히 그에겐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십자가였을 것이고 딜레마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러지 않던가? 저가 만일 신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예수님은 기꺼이 그것을 거부하시고 온전히 고난을 받으셨지만, 이후의 많은 신앙인들은 기꺼이 십자가를 지다가 그 자신 스스로가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온다. 그 이유는 그 십자가가 너무 극악스러워서일 수도 있고, 그 스스로가 신적 권위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십자가는 여전히 지고 쓸쓸히 죽어간다. 이 책에서도 렘브란트의 말로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일 것이다. 렘브란트는 실제로는 더 평안하게 죽어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더 비참하게 죽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그것으로 인해 심판을 받고, 그것으로인해 구원도 받으며, 그것으로인해 위해를 가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인해 남에게 도움도 주는 법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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