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서

사실 난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반까지만 해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었다. 그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드라마라곤 최수종과 이미연인지 최수지가 앳된 모습으로 나왔던 <사랑이 꽃 피는 나무>나 요즘엔 TV에서 영영 사라진건지 정준이 중학교 때 토토리 머리하고 나왔던 <나>란 청소년 드라마 정도라고나 할까? 그때만 하더라도 드라마란 하릴없는 한량들이나 또는 가정주부들이 보는 전유물쯤으로 여겼더랬다.

그런 내가 20대 말을 맞아 급격히 드라마를 보는 횟수가 늘었다. 그것은 모처에서 교육용(?)연극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마땅한 텍스트가 없으니 드라마만 줄창 보는 수 밖에. (사실 드라마 보단 영화를 더 많이 본 것 같긴하다.) 그때부터 나름 우리나라 드라마도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로써 드라마를 보는 것이니 더 이상 드라마를 하릴없는 한량들이나 가정주부만 보는 거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워졌다.

최근에 내가 보는 드라마와 욕하면서 봤던 드라마에 관하여

물론 그렇다고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보는 건 아니다. 나름 꽤 볼만한 몇 개를 찜해 놓고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내가 드라마를 보는 패턴이다. 요즘 내가 보는 드라마라면 <이산>,<왕과나(이건 재방송으로 주로 본다)>, <로비스트>, <옥션 하우스> 정도다. <인순이는 예쁘다>를 김민준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뭐 때문인지 점점 끌리지 않아 안 본다.

최근 욕하면서 봤던 드러마가 있다.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 이 여자가 쓴 드라마는 이제 보지 말아야지 하고 몇 년째 보지 않고 있다가 완전히 낚였다. 드라마가 등장인물 간의 감정의 극대화와 언어의 유희라면 김수현의 드라마는 그 도를 지나쳐 거부감이 느껴졌던 것. 그런데 내가 <내 남자의 여자>를 욕을 하면서 보다니. 하긴 김수현씨도 욕하면서 김희애분을 썼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언어의 마술사답다. 내가 그 드라마에 낚인 건 순전히 그 대사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들어도 대사가 연극적이다. 기존의 TV 드라마는 물 흐르듯 일상적인데 반해 김수현의 대사는 입에서 톡톡  터지는 것이 가히 무슨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는 후배가 그랬다. "김수현표 드라마는 빤한대도 보게 만들어요."  그때 난 묘한 열패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아직도 김수현에게 '드라마의 여왕', '언어의 마술사'란 수식어를 줘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김수현 신화가 깨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TV드라마의 문학화, 문학의 드라마화에 관하여

KBS의 <TV 문학관>이라는 드라마가 오래 전서부터 있어 왔었다. 요즘도 가끔 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심윤경의<달의 제단>과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란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둘 다 문학성도 뛰어나고 드라마의 완성도도 뛰어났던 것 같다. 이렇게 문학작품을 형상화한 드라마는 TV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에 반해 문학작품처럼 만드는 드라마도 있다. 나는 주로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중 결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작가로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녀의 응축된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뿐이겠는가? 그녀의 최근작중 하나인 <굿바이 솔로>에서 나문희를 말 못하는 노인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많은 말을 하게 만들었다. 굉장한 내공인 것 같다.

사극에 관하여

우리나라 사극은 참 재밌다. 하지만 매번 내가 사극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옛날에 과연 궁중생활이란 정말로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정말 상황전개는 고사하고, 과연 저렇게 언제까지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저렇게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다면 보기는 좋다만 화장실에선 어떻게 할까? 세손의 어머니가 흉한 꿈을 꾸다가 상궁을 찾으니 상궁이 곧장 뛰어 들어 온다.(이산에서) 그야말로 야심한 시각에. 그렇다면 상궁은 잠도 안 잔단 말인가? 더 의문스러운 건, 상궁이나 나인이나 늘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아래로 떨군채 걸어 다닌다. 저러다가 허리가 굽을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동방예의지국이겠구나 싶은 건 그들이 쓰는 언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어체의 언어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따라 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얼마나 점잖고 울림이 있는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대도 격식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좀 배웠으면 한다. 싸우면 너무 비열하고 야비하게 싸우지 않는가? 정숙해야할 국회에서 멱살잡이 하는 꼬락서니를 한 두번 보는가?

드라마의 문제점에관하여

한때 드라마 편성을 가지고 시비가 붙었던 책이 있었다. 골든 타임엔 무조건 드라마다. 우리나라는 드라마 제작편수가 너무 많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앗다. 요즘 드라마 봐라. 해외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예전엔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드라마를 팔았다면 이젠 아예 팔릴 드라마를 만들지 않은가? <태왕사신기>가 일본에 얼마에 팔렸는지 아는가?

그런데 문제점이 없는 게 아니다. 그중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드라마에 흡연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 그것을 부추기고 조장한다고 하여 아예 삭제했다. 그러다 담배만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 마는 장면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다. 근데 웃기는 건 그렇게 흡연 장면을 없애고나니 술 퍼 마시는 장면으로 대치가 되었다. 배우들이 흥청망청 대는 꼬락서니하군. 꼭 없어도 되는 장면에서 조차 꼭 그런 장면을 넣는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 술이다.

그래도 여우술을 먹는 사람이 있다. 지난주 <로비스트>에서 장진영이 황태자랑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나 예쁘게 마시던지, 술이라곤 백세주 한 잔 밖에 못 마시는 나도 갑자기 저 여자처럼 마셔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드라마의 희망에 관하여

그래도 드라마는 희망이다. 그래서 예쁘게 멋있게 못 만들어 안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일회성이긴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드라마는 비록 그 드라마가 끝나면 재투성이의 비루한 현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어도 좋다. 그나마 드라마에서 위로 받지 못하면 어디서 위로 받겠는가?

근데 이런 드라마는 만들지 말아줬으면 한다. 부자집 도령이 가난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거.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가져가는 거. 너무 웃긴다. 물론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만 동류의식을 갖는구나 하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자가 후자 보다 더 식상하다. 드라마가 아무리 환상이어도 진실은 담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랑 때문에 질질거리는 드라마 또는 치정을 다룬 드라마도 좀 만들지 말기를! 그런 의미에서 <옥션 하우스>나 <하얀거탑>은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올해 나의 완소 드라마


이 드라마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게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너무 잘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울게 만들었다.


또한 <쩐의 전쟁>이다.

누구는 그랬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면 드라마는 배우의 것이라고.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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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12-1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때문에 질질거리는 드라마... 난 좋던데 으흐흐 그런 드라마가 뭐가 있었떠라?
제목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런 드라마에서 여성은 사랑없이는 못 살것 같은..
그런 존재로 표현되기도 하죠.

그거이~~ 마음이 안 드시는건가요? ^^

stella.K 2007-12-14 10:23   좋아요 0 | URL
ㅎㅎ 글쎄, 그것도 어떻게 표현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긴해. 근데 아침드라마 보면 좀 그렇지 않나? 근데 저기엔 안 썼지만, 왜 인간사슬 만드는 거 있잖아. 알고 봤더니 자기집 사돈의 팔촌이고, 겹사돈이고, 알고 봤더니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애인이 연적이고 뭐 그런 게 더 짜증 나는 것 같다.ㅜ.ㅜ

마노아 2007-12-1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논문을 보는 것 같았어요. TV드라마의 문학화, 노희경... 아, 아찔해요^^

stella.K 2007-12-17 10: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무 잘난 척 했죠? 어제 <스페이스 공감> 이승환 공연 보셨겠어요. 저도 봤어요. 마노아님 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이승환은 꽤 좋아한답니다. 개구장이 같으면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참 좋아하는 아티스트 같더라구요. 마노아님이 좋아할만 하죠? 저도 보면서 마노아님 생각 많이 했어요. 흐흐

털짱 2007-12-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리뷰를 작성하시는 동지를 만나니, 새삼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