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시인 출신의 출판사 대표 추진력 탁월

파격적인 편집위원과 과감한 신인작가 발굴

전투적인 홍보와 마케팅으로 독자층 만들어

권태현·출판평론가



어느 자리에서 대책 없이 한국소설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느닷없는 발언 하나가 분위기를 바꿔놓은 적이 있다.

“만일 ‘문학동네’가 없었다면 한국소설의 위기는 훨씬 더 빨리 찾아왔을 거야.”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저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다투어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자연스러운 질문 하나가 공동의 화제가 되었다. ‘문학동네가 왜 성공할 수 있었을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한국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던 독자들에게는 이 질문에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의 독자들은 한국소설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지성사(문지)와 창작과비평(창비)의 책을 주로 읽었다. 뒤늦게 민음사가 그 대열에 뛰어들었지만 두 산맥의 아성은 굳건했다. 문지와 창비에서 발간되는 책들을 빼놓지 않고 구입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열성 독자들도 많았다. 독자들만 두 출판사에 경도된 것이 아니었다.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도 그 두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서 은근히 청탁을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문지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오자 다른 출판사와 체결했던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문지와 창비가 주축이 된 그 균형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갑자기 새로운 출판사가 하나 생기더니 한국소설판의 지도를 바꿔 버렸다. 그 출판사가 바로 ‘문학동네’였다. 문학동네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그렇게 큰 변화가 올 줄은 몰랐다. 기껏 잘해 봐야 문지와 창비에서 내지 못한 책들을 받아서 내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문학동네는 그 예상을 깨고 새로운 기대를 넘어섰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문학동네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혹시 그 출판사 대표가 복서 출신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 말은 웃어넘길 농담이었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눈치 보지 않고 그렇게 탱크처럼 밀어붙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문학동네의 강태형 대표는 복서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기질이 출판 일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출신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많고, 그 열정의 발산이 출판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석에서 한 말을 빌리면, 남들이 말하는 추진력이 생긴 것은, 그가 자유실천문인협회에서 일할 때 김정환 시인에게 배운 것이라고 한다.

원인이 어떤 것이든, 강태형 대표에게는 추진력이 있다. 그렇지 않고는 기라성 같은 양대산맥이 버티고 있고, 그 주변에 문학작품을 펴내는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포진해 있는데, 그 사이에 뛰어들어 도전장을 내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추진력만으로는 신생 출판사를 그렇게 빠른 기간 안에 그렇게 크게 성공시킬 수는 없다. 출판사 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학동네가 출범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굴지의 문학전문 출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전체 ‘매출’ 면에서 경쟁 출판사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는 것이다.

문학동네가 한국소설 출판의 지형을 바꾼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혁신적인 편집위원의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감한 신인발굴이다. 문학동네에서 구성한 편집위원들은 다른 출판사 편집위원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특정 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모이지도 않았고, 나이도 젊었고, 무엇보다도 작품을 보는 시각이 무척 다양했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내는 필자들은 이미 중요한 문학적 위치를 차지한 작가들도 있었지만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낯선 작가들도 있었다. 무겁고 진중한 내용을 다루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발랄하고 경쾌한 상상력을 뽐내는 작가들도 있었다. 특히 문학동네 계간지를 통해서 배출되는 신인들의 경우에는 파격의 정도가 아주 심했다. 실제로 문학동네를 통해서 등단한 작가들 중에는 문학동네가 없었으면 영영 문단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소설가들도 있다. 말하자면 문학동네는 이 두 가지 카드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고 나간 것이다.

그 무렵 문학동네가 다양한 작품세계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작가들의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의 다른 출판사들이 폐쇄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들 눈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비쳤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지만 기존의 큰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외면당한 작가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거의 빼놓지 않고 받은 어떤 작가는 소설이 완성되면 제일 먼저 작품을 들고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마치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이 바뀐 것처럼 문학동네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모이고 또 모였다.

새로운 작가들이 모이고 다양한 작품들이 출간되자 폭넓은 독자군이 형성됐다.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문학동네의 성공을 부채질한 것은 전투적인 홍보와 마케팅이었다. 예전에 문학작품을 펴내는 출판사들 중에는 이른바 양반 출판을 하는 곳이 있었다. “문학작품을 어떻게 광고까지 해서 파느냐”는 편집자도 있었고, 자기네 출판사 책은 독자들이 다 알아서 찾아 읽는다고 믿는 관리자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동네는 한 권이라도 더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고 발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광고에서든 이벤트에서든 두드러지게 표가 났다. 일선에서 영업을 하는 마케터들이 다른 출판사의 몇 배가 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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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이름으로 신뢰가 되는 곳들이 있죠. 기쁜 일이에요. 문학동네는 정군님 아니어도 참 기분 좋은 곳이에요^^

stella.K 2007-11-11 18:4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군님이 아니어도...! 가끔은 이벤트를 너무 많이 벌이는 것 같아 괜찮을까 싶기도 했어요. 흐흐

가시장미 2007-11-1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문학동네 책...서평단으로 뽑혀서 서평써야 하는데. 아직도 못 쓰고있어요. 너무 찔리는군요. 아흐... 서평 하나 쓰는게.. 요즘은 왜이리 힘든지. ㅠ_ㅠ

stella.K 2007-11-16 10:38   좋아요 0 | URL
내가 써 줄까? 흐흐